영천시의 문화정책을 보면 장탄식이 쏟아진다. 한마디로 본연의 임무에는 최대한 몸을 사리면서 아주 나쁜 관행은 몸에 밴듯하다.
최근 영천성 복성전투기념사업추진위원회 발기인회가 프레스룸에서 기자간담회를 가졌다. 영천성 복성전투 승리는 임진왜란 당시 ‘정명가도’를 내세우며 조선의 내륙을 파죽지세로 북진하는 왜군을 물리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을뿐만 아니라 적의 후방 보급로를 차단하여 전선을 사수하고 전라도 지방을 지킬 수 있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아울러 영천성의 탈환이 육지전에서 연전연패하며 초토화됐던 시점에 내륙에서 왜군에게서 거둔 첫 번째 승리라는 큰 의미가 있다면서 학술적인 자료를 바탕으로 복성기념일 제정과 승전의 상징물인 기념탑 건립을 계획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런데 충북의 청주시는 영천성 전투승리의 영향으로 보이는 청주성 탈환이 영천성 승리보다 4일이 늦음에도 그 전투가 첫 승리로 기록됐다며 기념일로 정하고 매년 청주읍성 큰잔치를 열고 있는 실정이다. 사정이 이런데도 ‘호국의 고장’이니 ‘성지’니 떠드는 행정은 손을 놓고 방관하고 있는 사이 시민단체를 중심으로한 민간단체가 어려움 속에서 안간힘을 쓰고있어 지켜보기가 안타깝다. 그러나 문제는 행정의 이러한 아쉬움과 안타까움이라는게 어제오늘의 문제가 아니라는데 있다.
2011년에는 일제 강점기에 ‘황성옛터’란 노랫말로 민족혼을 일깨운 왕평 이응호 선생의 생가터에 시민들의 쏟아지는 반대의견에도 온갖편법을 다 동원해 무인모텔 짓는 것을 허가해줬다. 유서 깊은 영천의 한복판에, 그것도 인근에는 조선 세종때 쓰시마 정벌과 야인토벌에 혁혁한 공을 세운 이순몽 장군의 위패가 모셔져 있는 보물 제521호로 지정된 숭열당이 있고 북쪽에는 한국전쟁 당시 희생된 영령을 추모하는 충혼탑이 있음에도 말이다. 이제 왕평의 기억은 영천문화원 옆 조양공원 내에 건립된 황성옛터 노래비가 전부다. 인근 청송군은 왕평의 아버지가 주지로 근무했던 파천면 송강리 수정사 인근 묘소에 묘비를 세우고, 당시 살았던 집에는 황성옛터 노래비를 세워 기념하고 있다. 귀중한 근대문화유산인 교촌동의 영천극장 건물도 시민들의 열화와 같은 복원 외침이 무색하게 행정의 소극적인 관리로 업자에게 팔려 결국 다가구 주택을 짓는데 이르렀다. 또 있다. 전북 군산에는 진포해양테마공원이 있다. 이 공원에는 진포대첩탑이란 게 있다. 이 탑은 고려시대 우왕 6년(1380년) 왜구가 군함 500여 척을 이끌고 침입했을 때 최무선 장군이 발명한 화약무기를 실은 군함 100여 척으로 적을 물리친 것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탑이다. 최무선이 누군가. 영천시 금호읍 원기리 마단마을에서 태어났고 화약과 화포 화통 등 고려판 ‘미사일’을 개발한 분이다. 그런데 시는 수십억을 들여 최무선과학관만 덩그러니 지어놓고 과학체험 이랍시고 찾는 손님이라고는 어린이집 아이들 뿐인 실정이다. 이 밖에도 조금은 잦아들기는 했으나 포항과 마찰하던 포은 정몽주의 생가문제나 경기도 용인에 있는 포은 선생의 묘소 또한 갈등의 씨앗이다. 경기도 용인은 2003년도에 문화관광부에서 6월의 문화인물로 포은 선생을 선정하자 이를 계기로 포은문화제를 기획하여 열고 있다. 또, 포은문화제를 계기로 용인을 ‘동방성리학의 성지’로 재인식 시킨다며 떠들고 있다. 또한 인근 청도에는 코미디언 한사람으로 대성공을 이루고 있어도 우리는 불세출의 대스타가 신성일씨를 두고도 활용할 줄을 모르고 있다. 아무리 훌륭한 문화유산이 있은들 무엇하랴. 계속 발전시켜 문화관광 사업으로 키우지 못한다면 아무런 의미도 없다 모르면 배워야하고,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없으면 베끼기라도 해야하는데 도대체 팔짱 끼고 하세월만 보내고 있다고 밖에 안보인다. 무사안일도 좋고 복지부동도 좋지만 할 일은 해야 하는게 도리 아닌가. 나쁜 관행은 아주 체질화되어 검증도 옳게 안된 인물을 유학자랍시고 우상화하여 서원을 짓고 그것도 모자라 시민의 혈세로 ‘유림재현관’을 지어준단다. 예산을 낭비하는 일은 절대로 있어선 안된다.
하지만 적절한 시기에 꼭 필요한 곳에 쓴다면 누가 뭐라 하리요. 임진왜란때 최초의 승리인 ‘영천성 복성전투’를 제대로 알리고 국사 교과서에도 수록되는 날을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