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심주경(存心主敬)이라는 말씀을 외우면, 어슴푸레함이 마치 얼굴을 대하여 가르침을 받는듯하며, 옥간풍대(玉澗風臺)의 시 귀를 완상하면 흡사 시를 읊으며 돌아오심을 눈으로 보는 듯하다. 제사를 드리는 예에는 마땅히 수호(守護)의 길이 넓어야겠지만, 그러나 국내(局內)가 좁은데다 하물며 산허리의 토질이 좋지 않아 묘우(廟宇)를 세우고 재사(齋舍)만들기에 불편하며 위토(位土)와 우물은 바라지도 못 함에랴. 이에 좋은 곳에 옮겨 세우니, 구서(龜筮)마저 도와 따르고, 드디어 옛 재목들을 옮기려니 장정들이 모두 나온다. 목수들의 손을 빌지 않아도 방원평직(方圓平直)이 각기 전의 제도에 꼭 맞으며, 따로 소나무를 베지 않아도 외얼점설(臬店楔)이 모두 그 쓰임에 적의하다. 마나 귀신이 아끼고 감추었던가? 하루아침에 아름다운 집을 지었네. 옛 터를 우러러 바라보니 가히 황선생의 학교를 세운 꽃다운 발자취를 상상하겠고, 걸려 있는 편액을 바라보니 위료옹(魏了翁)의 강도(講道)가 오히려 남았구나. 산의 이름은 참으로 군자들이 오를 바니, 아니 또한 풍기(風氣)가 모여드는 곳이 아니겠는가? 삼면의 물들인 산들을 마주하고 한줄기 긴 강이 비껴 흐른다. 물산(物産)은 벼와 기장 물고기와 자라의 살찌고 넉넉함이요, 사람들이 사는 것은 선비와 농부 기술자와 장사꾼의 조밀(稠密)함이니, 인사(人事)에 있어서는 아름다움을 다하였으니 다시 옮겨 지음에 무엇이 나쁘리오? 장차 성현을 높이고 받드는 의식(儀式)에는 먼저 배양(培養)의 장소가 되어야 하리. 선비들이 도를 향한 뜻에는 이로부터 더욱 힘쓰게 되리며, 민속과 상현(尙賢)의 풍토는 이로부터 더욱 진작되리라.(하략)) 나. 우중술회(寓中述懷)1) (중략)(1654년12월)28일 저녁 갑자기 스님이 와서 절을 하며 말씀하기를 나의 장인어른이 대차 백학서당에 계신다고 하며, 오늘 정오에 (백학서당의)유사 박씨가 와서 (장인어른께서)나를 청하신고 하기에, 나는 즉시 말을 타고 (장인어른을 뵙기위해 박학서당에)갔더니 기뻐하신다. 그리하여 각기 우거 중의 회포를(하략)다. 백학산(白鶴山)2)강남의 백학산은 또한 우리의 땅에 있네위료옹의 남긴 바람 이 가운데 완연하다천년의 두 어진이 이 곳에 오른 뒤에이름난 곳의 산색은 얼마나 높아졌나?각주)--------------------1) 풍영정일고 41쪽. 서기1654년12월25일에 씌여진 글2) 풍영정일고 5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