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귀애 조극승(曺克承) 문집 고현의 백학산은 금계 황공이 후학들을 지도하고 가르치던 곳이다. 절벽이 천 길이나 높이 서 있고 아래에는 긴 개울이 세차게 흘러가면서 백학산 아래에 이르러 물결이 출렁이며 깊고 넓게 괴어있어 깊이가 가히 배가 다닐 만하며, 금빛 모래와 흰 자갈이 맑고도 차가우니 곧 이른바 양강이다. 또한 백학산의 이름은 우연히 옛 현인이 도의를 강학한 곳과도 합치된다. 그러므로 황공께서 이 땅을 지킴에 드디어 띄 풀을 걷어내고 땅을 넓혀 몇 칸의 집을 짓고 사문을 왕복함에 퇴계 이선생께서 손수 백학서당이라는 넉자의 글을 써 주시고, 또한 시로써 권면하시니, 이로부터 스승은 가르침을 더욱 힘쓰고 선비들은 마음을 일으켜 (백학서원의)문은 추로(鄒魯)를 이루었고 교화는 청아(菁莪)에 협흡하였다. 임진왜란에 불에 타고 만력 년간에 한 고을의 선비들이 개탄하여 두 분 선생의 향사 드리는 논의가 있었지만, 옛터는 곧 산은 높고 길은 험하여 가히 영원한 계책이 되지 못하여 지금의 장소로 터를 잡아 옮겼지만, 지금에 이르러 유적은 영원히 땅에 묻혀지고 선비들은 돌아가 의지 할 곳이 없었으니, 주위 한 경내의 유식한 선비들이 더욱 (선현들을)사모하고 그리워하는 생각을 금치 못하여 늦은 봄날 뜻을 같이하는 몇 사람이 약속하여 양강에서 목욕하고 백학산에 올라서 종일 시를 읊고 노래함이 약간의 글이 됨은 모두 옛사람의 뜻을 잊지 못함이었다. 그리하여 현명한 고을 수령의 도움을 입어 서문을 붙이고 아울러 칠언율시를 주었으니, 어찌 바로 당일 논 선비들의 흥이 옛사람보다 더욱 빛남이 아니겠는가? 이에 졸고를 드려 감히 밝은 가르침을 바라노라. 산은 절로 아득하고 물은 절로 밝으니 백년의 옛 자취는 사라져 소리가 없어라 풍광은 당시의 정취를 덜어내지 못하고 사모하는 마음은 두루 오늘 술잔에 넘쳐난다 사라지고 자라나는 금단에도 계수나무는 늙어가고 많고 성한 옥패엔 고운향기 맑구나 오늘의 놂 어찌 한가함을 훔쳤으리 고개 들었다 숙이는 사이에도 정감이기지 못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