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에 생명경시 풍조가 만연해 있어 매우 안타깝고 앞날이 걱정스럽다. 요즈음 신문이나 방송 TV뉴스를 보면 생명경시 기사들이 넘쳐나고 있다. 대낮 도시의 묻지마 사건, 농촌 마을에서의 농약 독극물 사건 등이 그러한 예들이다. 그 중에서도 가장 안타까운 것은 스스로 아까운 자신의 목숨을 끊어버리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언제부터 생명경시 풍조가 이토록 만연하게 된 것인지 정말 안타까울 뿐이다. 인간 생명의 기본권은 태어나서부터 죽는 날까지 모든 인간이 평등하게 갖고 보호받아야 할 권리다. 저마다의 자기 생명을 안정적으로 지킬 수 있도록 기본적 생활이 사회에서 보장되어야 한다.우리나라는 아직도 ‘자살 공화국’이라는 불미스러운 오명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고 ‘생명존중’ 사상이 날로 희박해져 간다는 것은 과연 누구의 책임인지 사회 전반적인 각성과 깊은 성찰이 필요하다.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방법으로 억울함을 호소할 게 아니라, 악착같이 살아서 법과 정의로 이겨 낼 수 있도록 ‘자살공화국’의 오명에서 벗어날 수 있다.왜 우리는 그들을 살리지 못했을까? 그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말 한마디는 엄청난 큰 힘이 된다. 특히 위기 청소년에게 필요한 것은 ‘많이 힘들겠구나.’ ‘너는 혼자가 아니다.’ ‘네 잘못이 아니다.’ ‘내가 옆에 있을게.’라는 말일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 그들은 이런 말을 들어보지 못한다. 왜냐하면 그들의 위기는 어른들의 잣대에서 별거 아닌 일 것이고,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해야 하니 참아야 된다고 말할 것이다. 하지만 청소년들에게 그 일은 너무 힘든 일이다. 순간순간 작은 위로와 격려가 필요하다.인간의 생명이란 그 자체로 고귀하다. 슈바이처는 모든 살아있는 생명체를 거룩하고 신성한 것이라 주장하며 각각의 생명 가치의 동등성을 역설하였다. 우리가 모두 곱씹어 봐야 할 말이다. 선(善)이란 생명을 유지하고 촉진하는 것이며, 생명체의 목적은 성장, 발전, 생존, 번식이다. 생명은 이러한 목적을 향해 나간다는 의미에서 목표지향적이다.우리 사회에 만연한 생명경시 풍조는 생명존중 정신으로 바뀌어야 한다. 근본적으로 매스컴에서 적나라하게 보도하는 상세보도나 자살을 흥밋거리로 부각시키거나 동정심만을 지나치게 유발하는 분별력 없는 기사들을 자제할 수 있는 법적 대책이 필요하다. 우선적으로 초중고교와 대학 과정에서 효의 중요성과 생명존중 사상, 타인 사랑에 대한 인성교육이 강화되어야 하겠다. 또 인터넷상의 구체적인 자살유해 정보를 원천 차단하고 처벌도 강화하는 대책도 강구해야 한다. 보다 나은 미래와 밝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영천시, 영천 초중고교, 그리고 영천시 정신건강복지센터 역할과 기능에 관해 심각하게 고민해 봐야 할 시점이다. 생명은 동물의 본능으로 지키고 방어해야 하는 것이지 선택되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생명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오늘도 번뇌하고 고민한다. 생명을 지키기 위해 우리는 매일 본능의 옷을 입어야하는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