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출근길에 회사 대표로부터 점심시간을 비워두라는 말을 들었다. 무슨 일인가 자세히 물어보지도 못한 채 혼자 이생각 저생각하며 반나절을 보내고 약속장소로 갔다. 가는 차안에서 점심시간이 제법 남았는데 뭐하러 이렇게 일찍 가느냐고 물었드니 연세 높으신 분이라 미리 가 있는게 예의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런데 식당문을 들어서는데 그분은 벌써 와계셨다. 1차 실례를 저지르고 만 셈이 됐다. 우리 사무실에 가끔씩 들리시는 존경하고 인품 높으신 분으로 여기서 누구라고 말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알 것이다. 꼿꼿한 몸가짐과 걸음걸이로 노익장을 보여주시고 뿜어져 나오는 예지와 경륜이 그득하신 분이라 평소 존경스러운 눈으로 쳐다보던 분이시다. 식사와 곁들여 반주 한잔을 하며 이런저런 이야기 도중에 얼핏 고등학교 시절에 배운 한 구절이 생각나 말씀드렸드니 그 글을 쓰신 분이 바로 이 분의 장인어른이시란다. 그 구절은 공자가 말한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朝聞道夕死可矣) 라는 말이다. 참된 이치를 깨달으면 죽어도 여한이 없다는 것을 비유하는 말인데 공부를 하든, 일을 하든 ‘조문도 석사가의’라는 생각으로 최선을 다 해 열심히 하라는 것이다. 그러면 큰 성취를 얻지 못한다 하더라도 최선을 다했으므로 그 결과에 만족할 것이다. 이 분을 만나고 가까이서 뵈면서 늘 평정심을 가지고 침착하고도 담대하게 대응하는 것을 보고 배운다. 천년이 지나도 아름다운 노래를 간직하는 오동나무 같이 자연과 더불어 정말 곱게 익어가는 노년이구나를 직접 체험하고 있다. 우리가 누리는 자연속에는 많은 우리 삶의 원리가 담겨있다. 아니 모든 것이 담겨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연에서 많은 삶의 지혜를 배우게 된다. 움직이지 않은 듯 살아있는 삶의 지혜를 배우고 시간을 기다리는 여유로움을 배우고, 버리면 새로이 얻는 비움의 지혜를 깨닫는 것이다. 사람은 태어나서 20대 중반까지 성장하고 그 이후부터 죽을 때까지 늙는다고 한다. 노년의 삶이란 대체로 상실의 삶이다. 건강과 돈, 일과 친구들, 꿈 등 여러 가지를 잃고 만다. 그 상실감으로 인하여 생기는 게 외로움과 병이고 가난과 무기력이다. 따라서 오래 사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사느냐를 생각해야 하는 것이다. 우리는 무엇 때문에 태어났는 지 모르고 우리가 가서 닿아야 할 목적지가 어디인지도 알지 못한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뜻있고 보람되게 사는 것이 삶의 의미이고 큰 가치임을 배워서 알고 있다. 자연을 똑닮은 이 분 같으면 그 정도의 진리는 알고 계실 듯도한데 연세드심이 너무 아깝다.우리가 아무 생각없이 다니는 길가의 잎 떨군 나무를 보라. 사람도 늙으면 나무처럼 자신의 것을 비우고 내려놓아야 한다. 하지만 탐욕스러운 인간들은 끝까지 그 무엇인가에 집착한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이런 욕심 하나로 자기자신의 명성에 치명적인 상처를 남긴다.가진 사람이 조금만 양보한다면 더 많은 사람이 혜택을 받게 되고, 그 이웃들은 그를 더없이 존경하게 될 것이다. 나를 낮추고 끝없이 나누다 보면 역설적이게도 더 많은 채움과 충만함이 나를 감싸게 되는 것이다. 지금의 시대를 디지털 시대라고 부른다. 하지만 넉넉한 인간미가 없는 과학기술, 첨단산업에만 의존하는 인류문명이란 껍데기에 불과하다. 나무들이 길고 긴 겨울의 한파를 이길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 또한 자신의 것을 미련 없이 떨어뜨리고 버릴 때 가능하다. 늙은 감나무가 분신 같은 마지막 잎을 떨어내는 까닭도 그 같은 이치가 아닐까. 자연에 순응하며 조금 느린 듯 겸손하게 살고 조금은 단촐하고 소박하게 살아야 한다. 분초를 다투는 현대를 살면서 그것이 가당키나 한 말인가 반문할 수도 있지만 인생도 삶의 과정이지 결과는 아니라고 본다.이제 이 긴 것같은 겨울이 지나면 또 봄이 온다. 그때가 되면 세상은 다시 새싹을 밀어올리고 연초록 가득한 산천이 될 것이다. 자연에서 배운 질서에 대한 깨우침은 사물을 바로보고 옳고 그름을 판단하라고 한다. 이 깨우침은 가치있는 새로운 무엇을 창조하는 원동력이 되어 행복한 삶으로 인도하는 스승으로 가꾸어야겠다. 필자도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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