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문)於戱 指山河而爲誓 勳業旣煥於凌烟 與國 家而同休 忠貞益獨於異日 及封功臣 策公效忠仗義 宣武元勳 封花山君 進秩資憲大夫工曹判書 都摠管 宣廟薨 公舁疾至京 終于客邸 訃聲轍朝 特遣領議 政李元翼 臨吊 百官會吊盟府 仁廟二年 贈公左贊 成 肅廟十九年賜諡忠毅  공은 군(軍)에 계실 때는 사졸(士卒)들과 같 이 즐거움과 힘듦(甘苦)을 같이하였고 (나라의 운명이)위급함에 임하여 몸을 떨쳐 앞장섰다. 이미 공(功)을 얻으면 기쁘게 미루어 남에게 주었기 때문에 장사(將士)들은 즐겨 그를 위 하여(목숨을 바치기도 하였다). 명나라의 장수 (天將) 제독 이여송은 공이 기병(奇兵)을 잘 쓴 다는 말을 듣고 비단(錦緞)과 벼루(龍硯)를 보 냈고, 총병인 유정과 유격장인 오유충이 공을 보고 치하(致賀)하여 말하기를 ‘바로 지금(當 今)의 여러 장수(들 가운데)병기(兵機)에 밝고 국가를 위해 힘을 다 한 사람은 장군보다 나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라 하였다). 급기야 병장기 를 풀고(釋兵) 한가하게 거처함에 이르러서 귀 천(龜川)의 위에다 정사(精舍)를 짓고 (문미에) 편액하기를 백운재(白雲齋)라하고 경전과 서적 을 구입하여 후생(後生)들을 권유(勸諭)하며, 때로는 (머리에)윤건(綸巾)을 쓰고 산과 물을 (찾아)노닐어 (그)소연(蕭然)함이 마치 속세(俗 世)로 돌아오지 않을 듯 하였음은, 아마도 옛 사람(古人)의 바램(또한) 이 보다 낫지는 않았 을 것이다. (원문)公在軍 與士卒同甘苦 臨危奮躬以先 而旣 得功 喜推而與人 故 將士樂爲之 天將李提督如松 聞公善用奇兵 遺錦緞龍硯 劉摠兵綎 吳游(遊)擊維 忠 見公勞之曰 當今諸將 曉兵機 盡力國家 無出將 軍右者 及釋兵 居閒 築精舍龜川上 而編之曰白雲 齋 購經籍勸諭後生 時以綸巾 出游山水 蕭然若遺 塵不返者 盖竊歡以爲古圖畫不是過也  처음 영남 사람들은 공의 덕을 좆아 사모하여 귀천에다 사당(祠)을 지어 제사를 지내다가, 임진 년으로부터 240년이 지나 사림(士林)의 논의에 따 라 비석을 영천군의 소재지(治所)에 세우기로하고 그의 후손인 치화(致和)가 나로 하여금 기적(紀績) 의 글을 쓰라 청하기에, 나는 또한 여러 가문에서 지은 지(誌)와 장(狀)과 (복재)정담(鄭湛)의 영천복 성기(永川復城記)를 취하여 요점을 추리고 차례를 매겨 가히 믿을만하여 비석글로 삼기에 가히 부끄 러움이 없다 하겠다.  (원문)始嶺之人 追思公功 德立祠龜川以祀之 當 苧壬辰以舊甲之回 因士林議 竪碑于永之郡治 使 其後孫致和 請公輟爲紀績之文 公輟又取諸家所 著誌狀 及鄭湛復城記 撮要撰次 庶幾徵信而爲立 言可無愧 아마도 공의 넉넉한 공적과 위대한 열정은 이 충무공과 더불어 죽백(竹帛)에 나란히 기록하고 종정(鐘鼎)에 새겨 온 나라 사람들이 같이 외울 것 이지만, 그러나 (스스로)공로가 있다고 자처하지 않음에 이르러서는(至其善於居功) 천년의 뒤에도 사람들로 하여금 그의 높은 풍모(高風)을 상상하 고 흥감(興感)하게 함이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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