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하기 위해서는 내 안의 모든 것을 채울 것이 아니라 비우라고 말하면 이해하고 공감하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사람이면 기본적으로 돈 많은 부자가 되고 싶고, 권력있는 높은 자리에 앉고 싶을 것이다. 또한 사람은 누구나 자존심이란걸 가슴에 담고 산다. 하지만 무언가를 얻기 위해서 자신을 고집하고, 무언가를 움켜쥐기 위해 애를 쓰면 쓸수록 우리의 몸과 마음은 병이 든다. 원론적이고 철학적인 이야기지만 이럴 때일수록 욕심내는 마음을 돌이켜 그 마음을 가볍게 베푸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욕심이란 무엇인가. 먼저 사전적인 의미부터 한번 살펴보면 어떠한 것을 정도에 넘치게 탐내거나 누리고자 하는 마음이라 되어 있다. 비슷한 말로 욕망이란 말이 있는데 무엇을 가지거나 하고자 간절하게 바라는 뜻이다. 욕망은 그 자체가 나쁘다고 말하기는 어렵겠다. 욕심이란 말 속에는 이미 ‘지나치게’라는 말이 들어있어 부정적이지만 욕망이란 데는 그것이 없다. 다만 욕망도 ‘지나치면’ 문제가 된다는 뜻이다. 인간은 본래 부족함이 많은 존재다. 그래서 무엇이든 하나라도 더 갖기를 바라고 더 원한다. 하지만 한 발만 물러서 생각해 보면 어리석은 일이다. 우리 마음속의 괴로움이란게 대체로 그런 어리석음에서 오고, 그 어리석은 곳 한가운데는 집착이란 놈이 뱀처럼 또아리 틀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가. 지금이라도 바로 꿈에서 깨어나듯 집착을 버리고 일어서야 하는데 그게 안된다.우리는 무엇을 잃어버렸을 때 무언가 모를 상실감과 큰 고통을 느낀다. 사랑하는 사람이 떠났을 때나 아끼며 소유하고 있던 물건을 잃어버리면 오는 느낌이나 감정 말이다. 집착이라는 것은 이런 상실을 느끼지 않으려고 어떤 대상을 계속 소유하려는 마음을 말한다. 상실 중에 가장 큰 상실은 인간관계의 상실이 아닐까. 물론 아깝고 애닲은게 사실이지만 정신적인 건강을 위해서 오랜 집착은 금물이다. 하지만 무엇인가를 잃었을 때 그때 나에게 또다른 문이 열린다고 생각해 보라. 빈 그 자리가 새로운 무엇이 생겨날 수 있는 공간이 된다고 생각해 보자. 우리가 집착을 내려 놓아야 하는 이유이며 결과가 된다. 남과 비교해서도 안된다. 어떤 사람은 남과 자신을 맹목적으로 비교한다. 그래서 자신이 상대보다 좀 낫다 싶으면 금세 자기만족에 도취되고 반대로 남이 자기보다 조금이라도 나으면 스스로 자격지심에 빠진다. 이 얼마나 유치하고 어리석은 일인가. 사람이란 누구나 저마다의 인생목표와 나름의 생활방식이 있기 마련이다.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대부분 정신없이 바쁘게 살아간다. 하지만 앞만 보고 속도내어 사는 인생도 결코 바람직한게 아니다. 바쁘게 돌아가는 세상 속에서 얼마나 분주히 살아가는 지, 잠시 멈춰서서 세상구경이나 자기자신 한번 돌아볼 여유조차 없다. 그래서인가. 사람들의 눈에는 이 세상을 가득 채운 아름다움이 보이질 않는다. 가끔은 멈춰서서 앞과 뒤, 그리고 옆으로의 아름다운 풍경을 돌아보라고 말하고 싶다. 오히려 그러는 속에서 더 빨리, 더 멀리, 더 안정적으로 갈 수 있는 지도 모른다. 삶의 기쁨보다는 걱정거리가 많고, 자주 인생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해 괴로워하고 절망한다면 이런 것의 원인이 바로 우리 안에 불필요한 것들로 가득 차있기 때문이라 생각하자. 만일 행복해지고 싶다면 그것들을 버리겠다는 결심을 한번 해보자. 내일 행복할려고 오늘 불행하다면 그 또한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내일의 희망이란 것도 오늘의 행복한 삶에서 비롯됨을 알아야지.낯선 이야기 같지만 어깨 가벼운 삶을 살면 아마 행복이 그 어깨 위로 내려앉을 것이다.언젠가부터 우리는 ‘힐링’이라는 이름의 치유를 찾고 있다. 치유라는 것도 마음을 다스리고 욕심을 자제해 내면의 공간을 만들 때 자연스럽게 가능한 것이다. 스스로 내려놓을 수 있는 욕심만큼 빈 공간이 생기고 그 공간만큼 치유가 가능함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삶은 영원하지 않다. 그럼에도 우리는 영원히 살 것처럼 너무 멀리 내다본다. 무거운 인생의 짐을 벗어 버리고 가볍게 사는 기쁨과 즐거움에 눈을 떠보자. 세상만사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다. 각자의 삶을 스스로 슬픔이 아닌 기쁨과 행복으로 바꿔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