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조선통신사에 대해 배우는 여행을 한국 학생들과 함께해서 아주 좋았습니다. 영천시에는 조선통신사와 관련된 많은 유적들이 남아 있었고, 그에 관련된 내용을 한국인 선생님에게서 배울 수 있었습니다. 그 당시의 문화나 조선통신사들이 했던 행사들을 가르쳐 주셔서 너무나 유익한 스터디 투어가 되었습니다. 조선통신사에 대해 전혀 모르는 상태로 스터디 투어가 시작되었는데,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도 알 수 있을 만큼 기초적인 것부터 쉽게 알려주셔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일본인과 한국인 학생이 함께 공부할 기회는 좀처럼 없는 일이라 매우 즐거웠고, 좋은 추억이 되었습니다. 함께 다니며 공부한 한국인 학생들도 고맙고, 쉽고 자세하게 알려주신 선생님과 영천시 관계자들께도 감사합니다.
-무라세 다츠키 저는 조선통신사에 대해 잘 모르고 있었습니다. 한일 우호의 징표라는 것은 알고 있었는데, 영천에서 조선통신사 관련 장소를 직접 가서 보며 자세한 설명을 듣고 한국의 역사를 새롭게 알게 되었습니다. 또, 예전에 번성했던 역참 주위가 지금은 그저 시골이 되어버렸거나 주택가가 되어있는 것을 알고 놀라기도 했습니다. 노계 박인로에 대한 역사를 배우기 위해 간 박물관 근처에서 일본의 하이쿠와 비슷한 한국의 시조가 있는 것을 보고 ‘일본과 한국 문학은 닮아있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소가 미사키
영천시의 조선통신사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지금까지는 몰랐던 것들을 많이 알게 되었습니다. 내용들을 알기 쉽게 설명해 주시는 선생님 덕분에 이해가 잘 되어 너무 좋은 스터디 투어가 되었습니다. 조선통신사가 무엇을 위해 에도까지 갔을까, 어떤 사람들이 에도에 갔는지 등 여러가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서 매우 흥미로웠습니다. 마지막에 방문한 도계서원은 옛날의 학교와 제사를 지내는 두 가지 역할을 하는 곳이었다는 내용과,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문인 ‘박인로’와 관련된 것 등 새로이 알게 된 내용이 많았습니다. 평소 쉽게 갈 수 없는 곳에 가 보거나 알지 못했던 것들을 직접 보고 들으면서 많은 공부가 되었습니다.
-우시오 에나
이번 기회를 통해 조선통신사가 모두 모여 있다고 할 수 있는 땅인 영천과 관련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특히 인터넷에는 검색해도 나오지 않는 조선통신사의 당시 상황을 알 수 있어 좋았습니다. 영천에서 세 곳의 장소를 둘러봤습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장소는 조양각 입니다. 영천에 방문한 날은 굉장히 더운 날이었는데, 조양각 안의 시원한 그늘과 바람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가이드 선생님께 설명을 들으면서 투어를 했는데 영천은 인기 있는 관광지는 아니지만 일본과 조선의 역사에 대해서 배울 수 있는 중요한 곳이라는 것을 느꼈습니다. 마지막으로 “역사는 이름도 없는 사람들에 의해서 만들어져 왔다.” 는 선생님 말씀이 기억에 남습니다.
-아즈마 토모우
조선통신사에 있어서 영천이 아주 중요한 장소라는 것을 알게 되고, 조선통신사와 관련된 영천의 장소들에 직접 방문해 보면서 그 옛날에 그 많은 인원들이 어떻게 왕래하며 다녔을지에 대해 상상해 보는 것이 재미있었습니다. 조양각에서 마상재에 대해 설명을 듣는 동안은 말에 올라 타 재주를 부리는 사람이 말에서 떨어지면 어쩌나 하는 생각과 함께 아찔함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아직까지 마상재 행사가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 정말 대단하게 느껴졌습니다. 또, 조선시대의 무인이면서도 문인이었던 노계 박인로와 관련된 자료, 그리고 그의 일생을 정리해놓은 노계 문학관에서 3D 영상으로 잠시나마 노계 박인로를 살펴본 경험도 신선했습니다. 이번 기회를 통해 한국과 일본의 학생들이 조선통신사에 대해 함께 배우며 교류한다는 값진 경험을 할 수 있었습니다. 또, 김정식 선생님의 쉽고 재치있는 설명 덕분에 조선통신사라는 역사에 더욱 가까이 다가갈 수 있었습니다.
-추민영 조선통신사가 ‘조선과 일본을 우호적인 방향으로 이끌어가던 외교사절단’이라는 점은 알고 있었지만 영천이 그 길에 있어 중요한 곳이었다는 것은 이번 스터디로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또한 영천에 직접 방문한 것도 처음이었습니다. 영천시에서 나오신 선생님께서 조선통신사와 노계 박인로에 대한 이야기들을 유쾌하게 풀어주셔서 이해하기에 어려움이 없었습니다. 특히 ‘박인로’라는 인물에 대해서는 처음 들어봤는데, 무인이었지만 문인의 글 솜씨를 지녀 좋은 작품들을 많이 만들어 냈다는 인물이라는 점과 그와 관련된 자료들을 모아놓은 노계 문학관은 노계 박인로에 대해 갖고있지 않던 흥미도 가지게 해주었습니다. 조선통신사와 관련된 많은 것들을 보존하고 연구하고 홍보하려는 영천시의 모습에 ‘조선통신사가 가지는 의의는 무엇일까, 그 시절 사람들이 많은 시간과 자원, 인력을 써가며 유지하려 했던 관계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어쩌면 일본인 친구들과 함께 역사 스터디를 하는 것도 한일 교류의 일부분이며 이런 활동을 할 수 있는 밑바탕에 조선통신사의 힘이 들어 있지 않을까 합니다.
-신혜영 히로시마 경제대학교의 젊은 여행자들의 프로젝트 학생 5명과 영남대학교 일어일문학과 학생 4명과 함께 조선통신사라는 한일간의 공통된 역사를 갖고 탐방과 교류의 기회를 가졌습니다. 당시 조선통신사의 사행길에 있어 중요한 집결 연회가 열린 영천시의 조양각에서 첫만남을 하였습니다. 우리가 서 있던 곳은 1607년 조선통신사가 국서를 만들고 일본이 왕래한지 400주년을 다짐하며 2007년 4월 세워진 비를 보며 영천이 갖는 역사속의 의미를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어서 잠수도에 들려 조선통신사를 재현하는 듯한 벽화를 보며 당시의 모습을 이미지화해볼 수 있어 즐거웠습니다. 그리고 도계서원 근처에서 노계 박인로의 ‘조홍시가’ 낭송을 듣고 효심이 지극한 그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었으며, 새롭게 건축된 박인로의 문학관도 볼거리가 다양해서 좋았습니다. 현재도 꾸준히 영천에서는 조선통신사와 연관된 행사인 마상재와 다양한 유물과 유적지를 유지하고 알리기 위해 힘 쓰고 계시는 관계자분들께 감사드리며, 특히나 한일학생이 함께 교류회에 참여했다는 점에서 좋은 추억이되었고 살아있는 공부가 되었습니다.
-이현정 일본에서의 역사와 영향을 알뿐 정작 국내(조선)에서의 역사와 영향을 알지 못하였다. 히로시마경제대학과 함께 탐방한 지역은 과거 조선통신사의 행렬이 실제 지나가거나 숙박한 장소였다. 이를 통해 국내(조선)에서의 역사와 영향을 알 수 있게 되었다. 조선 안에서는 신문물을 배우러 가는 명나라행과 신문물을 전해 주려가는 일본행이 있었다. 당시 기술로는 일본까지 가는데 6개월에서 1년 정도 걸렸다고 한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을 거느리고 간다. 1차적으로 영천에서 모이고 최종부산에서 모여 배를 타고 일본으로 갔다고 한다. 영천을 1차 소집지로 정한 이유도 전부 지리적 위치가 좋아서이다. 산으로 둘러싸여 있어 침입을 막으며 중심부에 있어서 지방곳곳에서 모이기가 쉬웠다. 그리고 일본으로 가는 조선통신사들을 일본뿐만이 아닌 조선(국내)에서도 사람들의 대접 속에서 지나갔다고 했다. 배를 타고 일본으로 가니 많은 사상자를 내어서 생존을 보장할 수가 없어 마지막으로 보는 사람이라고 칭하며 엄청난 대접을 받은 반면 명나라로 가는 조선통신사는 출세와 육지로 이동하여 모두의 부러움을 샀다고 한다. 이처럼 이번 히로시마 경제대학 과 공동으로 탐사한 시간에서 조선통신사의 국내에서의 역사적 사건과 영향을 자세히 알았으며 일본과 조선(한국)의 끈끈한 관계를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노계하면. 조선시대 3대 시가답게 작가가 은거하던 경상북도 영천에 있는 노계의 아름다운 경치와 자연에 몰입하는 주관적인 마음을 노래한 것이 주를 이루지만, 임진왜란을 직접 경험한 작자의 평화에 대한 염원 또한 절실하게 드러나 있다. 형식은 ‘4음 4보격 무한연속체’라는 가사의 율격을 대체로 지켰으나, 2음보를 추가하여 6음보로 늘어난 행이 상당수 있다. 있는 노계가(蘆溪) 박인로(朴仁老)가 지은 가사가 매우 유명하다. 그 예로 선상탄, 태평사, 독락당, 입암별곡, 노계가 가 있다. 노계 문학관에서 노계가를 보니 그 당시 상황과 노계가 생각하는 세계를 느낄 수 있었다.
-손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