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캬~악, 퉷’이 가래침 내뱉는 소리에 그 동안 얼마나 소름칠 정도로 불쾌해 했던가? ‘도대체 언제까지 이 사람들과 함께 공간을 공유하며 살아가야 하나?’며 절망했던 적은 또 얼마나 많았던가?
지금도 여전히 ‘캬~ㄱ’ 소리는 사라지지 않았지만, 언제부턴가 내 마음 속에는 절망감 대신 어떤 연민 같은 것이 깊숙히 자라기 시작했다.
어쩌면 저 소름끼치는 소리가 단지 목에 붙어 있는 가래 때문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이다. 혹시 저 소리는 수 백년 동안 세대를 거쳐 이어져온 분노, 배신감 혹은 체념의 표현이 아닐까? 지금으로부터 427년 전, 1592년 음4월 14일 부산에 상륙한 10만 왜군은 파죽지세로 불과 9일만인 음4월 23일 영천에 도착한다. 군수는 성을 버리고 도망가고 고을의 백성은 성을 점령한 왜군의 노략질 아래 무방비상태에 놓이게 된다. 곡식, 문화재가 수탈당하고 분묘가 도굴당한다. 저항하는 고을민은 죽임을 당하고 부녀자들은 겁탈을 당한다. 코를 베어 가고 귀를 베어 간다. 포로로 잡혀 일본으로 끌려가 포르투갈 상인에게 팔려간다. 이렇게 수 십만이 끌려가고 죽어갔다.
하지만 영천이 어떤 곳인가? 최무선과 정몽주의 고장이 아닌가? 구한말에는 산남의진, 6.25때는 최후보루가 아니었던가? 전 고을민이 농기구를 들고 일어났다. 그래서 성안의 왜놈들을 작살내었다. 분노한 영천골 사람들 앞에 왜놈들의 조총은 얼어붙어 버렸다. 불과 수십 명만이 경주로 도망가고 천여 명의 왜놈들이 거의 전멸했다.
베어낸 왜놈의 대가리만 517개였다. 행주대첩에서 권율의 1만 관군이 죽인 왜군이 불과 300여 명이었던 것이 비하면 이 얼마나 엄청난 성과인가?
이제 다시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겠지만 혹시 또 그렇다면 이 때도 역시 앞서 잘난척하던 놈들은 다 도망가고 백성들이 나라와 고을을 지켜낼 것이다. 그래서 전쟁이 끝나면 그 잘난 놈들이 다시 돌아와 논공행상에 슬며시 끼어들겠지.
에잇 이 더러운 놈들, ‘캬~악, 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