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부동, 아니 오수동 이야기를 좀 하고싶다. 영천시민이라면 주지하다시피 오랜동안 ‘오수동’을 이야기 하면 가슴 아픈 사연이 들어있다. 이곳 오수동에 작년 5월인가 오염토반입정화시설을 가동하는 업체가 들어 온다는 소식이 들렸고, 이 사실을 주민들이 알고는 난리가 났다. 주민들은 벌떼같이 일어나 들어오고자 하는 공장앞에서 시위를 했고 행정에서도 궤를 같이해 불허로 가닥을 잡아 처리했다. 그러자 대기업을 모업체로 하는 이 기업이 영천시청을 상대로 행정소송을 제기했고 사실을 모르는 고령의 주민들이 업체측 찬성명부에 싸인을 해준 덕분에 영천시는 깨끗하게 판정패 했다. 시가 다시 항소장을 냈고 이제 2심을 기다리는 상황이지만 살고있는 동네에 공장이 들어서는걸 반대하는 주민들의 하루하루는 불안하다.
자신들만의 힘으로는 불안하다고 판단한 주민들이 급기야 전체 시민들에게 관심 좀 가져 달라고 손을 내밀었고 한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저지대책위가 구성돼 활동에 들어갔다. 하지만 대다수의 영천시민들은 그 일에 그다지 관심이 없는듯하다.
어떤 문제를 두고 ‘그럴수도 있지’라고 생각하는 태도를 우리는 ‘허용적 태도’라 말한다. 대표적인 예로 부모가 자식을 키우면서 문제적 행동을 해도 애 기죽는다고 바로 지적이나 충고를 하지않고 합리화 하는 태도가 있다. 무관심과는 약간 차이가 있는 이런 입장을 현대인들은 병리적일 만큼 지나치게 견지한다. 일이 생기면 관심을 보이거나, 좀 심각하게 받아들일줄 모르고 마냥 ‘그런가보다’라고 생각하는 태도. 조정래의 소설 ‘정글만리’에 나오는 문장처럼 ‘문제 삼지 않으면 아무 문제가 없는데 문제 삼으니까 문제가 된다’는 식의 사고는 함께 사는 시민으로서 맞는 처신인가.
‘인구가 줄면 주는가 보다, 곳곳에 폐기물을 갖다놓고 사라져도 가면 가는가 보다, 시위를 하면 하는가 보다, 사람이 죽으면 죽는가 보다’물가가 올라도 내려도 상관없고, 실업자가 늘어나도, 사회가 갈라져 국론이 분열되고 혼란스러워도, 불공정과 쏠림 현상이 만연해도 그냥 나하고만 관련이 없으면 오불관, 아무런 문제가 안된다. 이처럼 무슨 일에 대한 ‘허용적인 태도’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우선 나만 그 일에 휩쓸리지 않고 변함없이 잘먹고 살면 된다는 생각. 내 밥그릇만 안건드리면 모든 것이 나와는 상관 없다는 의식. 마음이 메말라 내 이웃에 가져야 할 관심과 여유가 없어졌다. 물론 모두가 어렵고 힘들어 앞만 보고 가는데 옆에 무엇이 보일리 있겠나. 하지만 언제나 중요한 것은 따뜻한 마음이고 관심이다. 허용적 태도가 만연한 사회에서 우리가 갖는 의식 하나는 바로 ‘희망없음’이다. 지역 사회에 어떤 한 이슈가 생길때 그 문제가 당사자들 만의 문제라고 생각하는 순간 공동체라는 의미는 사라진다. 더불어 살아가는 구성원들이 이 상황을 얼마나 심각하게 여기고, 어떻게 대응하는지에 따라 사회의 발전 가능성이 좌우된다.
무한경쟁에 내몰린 치열한 삶 속에서 승자독식의 구조는 날이 갈수록 견고해진다. 대기업은 틈만나면 자본을 바탕으로 돈되면 무슨 일에도 뛰어든다. 그것이 자연파괴든 환경오염이든 그것은 차후의 문제다. 단언컨대 그렇지 않다. 이 문제는 세대의 문제일뿐 분명 생존의 문제다. 우리 주변에는 남의 일에 관심을 가지고 애써 도와주려는 사람들 소식도 종종 기분좋은 울림으로 들려온다. 교통사고 현장에서 시민들이 함께 힘을 모아 차를 들어 올리고 사람을 구했다거나, 버스기사가 승객이 갑자기 쓰러지자 심폐소생술로 기적처럼 살려 냈다던가하는...
이제 우리 영천을 사람사는 마을로 제대로 만들자. 시민혼이 살아있고 공동체 정신이 살아 꿈틀거리는 사회, 사람냄새 풍기는 도시로 만들자. 더불어 사는 삶이 곧 상생이다. 영천 사회를 좀더 풍요롭게 만들려면 내가 먼저 남에게 관심을 보이고, 안부를 묻고, 칭찬하고 격려하는 분위기를 만드는데 힘을 써야 한다. 그들의 주장처럼 오수동이 뚫리면 영천이 붕괴된다. 우리야 살다 죽으면 그만이지만 우리의 미래 세대에겐 생존의 문제가 될 수 있다. 이런 상황의 심각함에 비해 대책은 허약하기 짝이없다.
공동체 구성원끼리 서로 갈라져 싸우는 일도 없어야 한다. 또한 다음 세대에게 시혜적 차원이 아니라도 진정 허용적 태도를 내보이는 것보다는 내 이웃에게 관심을 보이는 지역사회 만들기에 시민들 한 사람 한사람이 비타민 역할을 톡톡히 했으면 좋겠다. 그게 곧 나를 위하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