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호에 올린 산남창의지 26p의 ‘호소의 예로써 장례를 거행’한 대목을 보면, 그저 정순기가 흩어진 군대를 소집하여 호소지례(縞素之禮)로 순절한 대장의 장례를 거행한 짧은 문장으로 표현되어 있다. 아들을 먼저 보낸 정환직 선생의 심사나 거동, 중군장 이한구, 참모장 손영각, 좌영장 권규섭 등 장졸들의 전사 이야기는 거론되지 않았다. 산남창의지의 성격을 짐작케 하는 부분이다. 비록 창의지보다 24년이나 늦은 1970년에 편찬되었지만 산남의진유사를 찬찬히 들여다보면서 산남의진의 역사를 되새겨보는 이유이기도 하다. 대장 영천에서 해를 당하다<산남창의지 27p> 이후로는 적의 세력을 분산시키기 위하여 각 진영의 장수로 하여금 각기 한 무리의 군사를 거느리고 각지로 나누어 파견하여, 일면으로는 탄약 등을 구하고 기각지세(掎角之勢)로 적과 대응하였다. 흥해·청하 등지와 청송·진보 등지에서는 매일 큰 접전이 벌어지니 마침내 탄환이 떨어져 싸움을 계속하지 못할 지경에 이르렀다.청하와 진보 양로(兩路)의 부대가 영덕에 모였으나 탄환이 떨어져 싸울 수 없는지라 부득이 별도의 계획을 세워 한 부대씩 따로 출발하는데, 혹은 상인으로 혹은 농부로 변장하여 각지에서 탄약을 구한 뒤 관동 지방에서 다시 회합하기로 약속을 정하였다. 모두 나누어 파견한 뒤에 대장은 민간에 숨어 병을 요양하다가 적에게 잡혀 영덕으로부터 바다를 따라 대구로 가다가 다시 영천으로 돌아와 드디어 적에게 해를 입었다. 의협사(義俠士) 등이 대장의 관을 봉환하다<산남창의지 28p> 정환직 대장이 순사(殉死)한 날에 하늘이 낸 도리가 신령하고 밝아 겨울임에도 큰 우뢰가 일어나며 폭우가 쏟아져 전국이 놀라서 들썩거리고, 엄연한 시신은 밝고 환한 해가 엄호하였다. 이 비보를 들은 고을 사람 이용훈(李容勳) 등이 죽음을 무릅쓰고 관을 모셔 돌아왔다. 대장의 영전에 죽음으로써 맹서하다<산남창의지 28p> 이세기 등은 대장이 잡혔다는 흉보를 듣고 용맹이 있는 자 수십 명을 뽑아 하양(河陽)으로 달려가서 강가에 매복하였다가 대장을 탈환하려 하였으나 시기를 놓쳐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고 진으로 돌아왔다. 설날을 당하여 보현산(普賢山) 거동사(巨洞寺)에서 순절한 여러 장졸의 제사를 거행한 뒤 우리 남은 군사들은 누구나 죽을 때까지 적과 싸우기를 맹서하였다. 대장의 유언으로 최세한(崔世翰)이 대중을 거느리다<산남창의지 27p> 정환직 대장이 일찌기 군중(軍中)에 말하기를, “나는 이미 늙었으니 내일을 기약할 수 없다. 만일 뜻과 같지 않으면 최세한이 나의 책임을 당할 수 있으리라.” 이 말이 군중의 마음속에 새겨져 대장의 제례(祭禮)를 끝낸 뒤에 이세기 등이 추대하니 세한은 사양치 못하고 드디어 대중을 거느리게 되었다. 부군(夫君)의 사식(私食)을 8년간 계속하다<산남창의지 29p> 최세한은 무신(戊申) 이후 각지에서 전투를 벌인 공적이 적지 않은데 그 일기가 세상에 전하지 않는다. 다만 후세의 구전(口傳)에 그의 장남마저 적에게 피살되었다 하며, 세한도 또한 붙잡혀 8년을 옥중에서 고생하다가 순사(殉死)하고 그 미망인 윤씨는 남편의 사식을 8년간이나 계속하였다 한다. 적탄(敵彈) 앞에서 무기를 인도하고 영결하다<산남창의지 29p> 박광(朴匡)은 이세기와 함께 각지에 출몰하며 초행노숙(草行露宿: 풀숲을 헤치고 걷고 한데서 잠)하면서 적과 대항한 역사가 초동목수(樵童牧竪: 땔나무를 하는 아이와 소치는 아이)의 노래로 전하여졌다. 광천(廣川)에서 싸우다가 적탄에 맞고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중에도 최후임을 각오하고 무기를 세기에게 맡기고 뒷일을 부탁하며 죽음을 맞았다. (계속) 각주) 1) 기각지세(掎角之勢) - 사슴을 잡을 때 사슴의 뒷발을 잡고 뿔을 잡는다는 뜻으로, 앞뒤에서 적과 맞서는 형세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2) 최세한(崔世翰) - 3대 대장 최세윤(崔世允)의 다른 이름 3) 무신(戊申) - 1908년. 산남의진 3대 대장으로 추대된 해 4) 최산두(崔山斗) - 최세윤 대장의 장남으로 1908년 21세의 나이로 흥해, 청하군 일대에서 군자금을 모집하는 등 의병활동을 하다 체포되어 종신 징역형을 받고 옥중에서 순절함. 2017년 애국장 추서 5) 광천(廣川) - 경상북도 포항시 송라면을 동류하여 동해로 흘러드는 강과 포항시 죽장면 일광리에 광천마을이 있는데 어느 곳을 지칭하는지는 모르겠다. 두 곳 모두 의진 활동지 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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