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계는 대부분 암반으로 이루어진 시내인데 보현산에서 흘러오는 이 횡계와 청송에서 흘러오는 옥계玉溪가 다시 만나서 자을천玆乙川이 된다.管領溪山樂性靈 시내 산을 관리하며 성령을 즐기는데 寒流九曲一源淸 아홉 굽이 차갑게 흐르니 원두가 맑아라閒來不奈顚狂興 한가로이 와서 어찌 광흥에 빠지지 않으랴妄續千年櫂下聲 천년의 도가 소리 망령되이 이어가네 16)훈수와 지수는 횡계의 산과 내를 관리하며 성정을 닦았다. 영남 사림으로 벼슬에 나아가는 일이 능력에 관계없이 쉽지 않은 현실에서 훈지 형제가 취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횡계의 산과 내를 경영하며 하늘로부터 받은 맑은 성정을 자연 속에서 청정하게 유지하는 일이었다. 더욱 좋은 것은 횡계의 아홉 굽이에 차가운 물이 흐르니 이 맑은 물에 세속의 티끌을 씻는 것이었다. 훈수와 지수는 횡계의 맑은 물이 지속될 수 있는 이유를 알았으니 이는 원두의 맑은 물이 쉼 없이 흘러오기 때문이었다.훈지 형제는 이 구곡에서 한가롭게 지내며 주체할 수 없는 흥취에 빠졌다. 그 흥취는 천 년 전에 주자가 무이구곡에서 가졌던 흥취와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이것은 외람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성리학을 집대성한 주자가 가졌던 흥취에 함부로 빗댄다는 것은 그를 존숭하는 한 사람으로서 분수에 벗어난 행위일지도 몰랐다. 훈수와 지수에게는 주자의 무이구곡을 모방하여 횡계구곡을 설정하는 행위가 외람된 일일 수도 있었다.그래서 훈지 형제는 ‘「무이도가」를 망령되이 모방하여 「횡계구곡시」를 짓는다’고 고백하였다. 이것은 주자의 고귀한 삶을 횡계에서 그대로 구현하고 싶은 마음을 숨김없이 드러낸 것이다.제1곡 쌍계雙溪횡계구곡 제1곡은 쌍계雙溪이다. 영천에서 청송으로 가는 국도를 달리다가 영천시 화북면 옥계리를 지나면서 우회전하여 보현산 천문대 방향으로 난 길로 가다보면 횡계교를 만나는데 횡계구곡 제1곡 쌍계는 이 횡계교 아래에 있다. 횡계교 아래는 청송에서 흘러오는 옥계玉溪와 보현산에서 흘러오는 횡계橫溪가 만나는데 두 시내가 만나는 지점이 쌍계이다.이 지점에 널따란 바위가 자리하고 있는데 이 바위가 반암盤巖이다. 마치 배가 앞으로 나가려는 형상을 하고 있는 반암은 이 굽이의 상징물이 아닐 수 없다. 횡계구곡을 유람한 배가 이 굽이에 잠시 머물고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구곡을 유람하는 일은 배를 타고 시작한다. 물론 횡계구곡을 배를 타고 유람하는 일은 불가능하다. 시내의 폭이 좁고 수량이 충분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주자가 무이구곡을 유람하며 배를 타고 올랐던 사실은 그 후 조선의 사림에게 구곡의 유람은 배를 타고 오르는 것으로 각인시켰다. 그러므로 실제 배를 타고 유람할 수 없는 구곡에서도 사림은 배를 타고 오른다 하였다.훈수와 지수가 이 지점을 횡계구곡 제1곡으로 설정한 까닭은 배 모양의 반암이 이 굽이에 자리하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훈지 형제는 이 지점에서 구곡을 거슬러 오르며 유람을 시작하였다. 이는 주자가 무이구곡의 가장 아래 지점을 제1곡으로 설정하고 아홉 굽이를 거슬러 올랐던 것과 같다. 훈수와 지수는 천 년 전의 주자의 무이구곡을 횡계에서 이어갈 수 있었다.횡계와 옥계가 만나 자을천玆乙川이 되는데 훈수와 지수는 옥계의 이름을 신계新溪라고 하였다.시내는 두 원두가 있으니 첫째는 횡계橫溪라 하고 둘째는 신계新溪라 하니 공암孔巖의 아래에서 합류한다.17) 언제부터 신계를 옥계라고 하였는지 알 수 없다. 그러나 지금은 청송에서 내려오는 시내를 옥계라 하고 그 위에 놓은 다리를 옥계교라 한다. 이름은 조금 다르지만 횡계와 옥계가 만나는 지점, 그리고 공암의 아래에서 합류하니 이 굽이가 훈수와 지수가 설정한 횡계구곡 제1곡 쌍계가 분명하다. 횡계구곡 제1곡 쌍계의 오른쪽에는 횡계 들판이 펼쳐져 있고 왼쪽에는 옥계 마을이 자리잡고 있다. 그리고 앞을 바라보면 횡계 마을이 보이고 도로를 따라가면 모고헌慕古軒과 옥간정玉磵亭에 이른다. 一曲盤巖坐似船 일곡이라 반암이 배처럼 자리하고 雙溪洄合始成川 쌍계가 돌다 합해 비로소 시내를 이루네桃源政在山高處 도원은 진실로 산의 높은 곳에 있거늘只是林深幕翠烟 다만 숲은 깊고 푸른 안개 덮여 있네 18)훈수와 지수는 횡계구곡 제1곡에 이르러 횡계와 옥계가 합류하여 자을천을 이루는 굽이를 바라보았다. 그 시내 가운데 반암이 자리하고 있는데 배의 형상을 하고 있었다. 훈지 형제는 이 굽이에서 횡계의 아홉 굽이를 거슬러 오르고자 하였다. 배를 타고 오를 수는 없지만 마음만은 배를 타고 거슬러 오르고 싶었다. 그것이 가능했던 것은 배 모양을 하고 있는 반암이 있었기 때문이다.훈수와 지수는 이 굽이에서 산 높은 곳에 있는 도원을 생각하였다. 도연명이 언급한 무릉도원을 말한다. 그러나 이 도원은 단순히 인간의 세상과 단절된 도원이 아니라 횡계의 맑은 물이 끊임없이 흘러오는 원두를 말한다. 그 원두가 횡계가 시작되는 저 산 깊은 곳에 있다는 것을 생각하였다.훈수와 지수는 횡계의 극처를 생각하며 횡계구곡 유람을 시작하였다. 그러나 구곡의 극처는 숲이 깊고 푸른 안개에 덮여 있었다. 이것은 극처에 이르는 일이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암시한다.각주) 16) 󰡔塤篪兩先生文集󰡕 卷6 「詩」 <橫溪九曲敢用晦菴先生武夷櫂歌十首韻> 序詩17) “溪有兩源 一曰橫溪 二曰新溪 合流於孔巖” 󰡔塤篪兩先生文集󰡕 卷23 「記」 <慈川記> 18) 󰡔塤篪兩先生文集󰡕 卷6 「詩」 <橫溪九曲敢用晦菴先生武夷櫂歌十首韻> 一曲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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