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歷史)는 흐른다. 흘러가고 있는 역사의 길 위에서 옳고 그름을 논하기는 쉽지 않다. 사서(史書)는 늘 승자의 편에서 기록하기 마련이다. 우둔한 머리로 지금까지의 역사를 이해해보면 그렇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어릴 적부터 소위 자랑스런 한민족(韓民族)의 후손으로서 중화사상(中華思想)에 거부감을 가지도록 가르침을 받아왔다. 그러기에 항렬로 나의 고조부(高祖父)이신 조성목 선생이 쓴 <참동계 소서>를 읽으면서 이 어른들은 참 벨도 없이 중화에 젖어계신 것을 느낀다. 그러나 다시 역사의 흐름을 살펴보면 그 당시 유학을 접한 입장에서는 너무도 당연한 것이기도 하려니 한다. 중국 고사의 기록이 많이 인용되어진 것도 같은 맥락이라 하겠다.참동계 소서(小序) <산남창의지 33p>대장부가 천지간에서 관례를 올리고도[관구(冠屨)]1) 의(義)로움이 화이(華夷)2)의 분수를 엄하게 구별하지 못하면 춘추(春秋)3)의 죄인됨을 면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므로 노연(魯連)의 도해(蹈海)4)와 문산(文山)의 누송(樓宋)5)이 모두 그 빛을 일월과 다투고 이름이 우주의 상하에 떨쳤던 것이다. 천백 세를 지나도 지사(志士)와 영웅(英雄)의 의기는 한결같이 탄식할 일이라 할 것이다.그런데 을사(乙已)년 겨울에 이르러 섬나라 왜놈의 악행이 하늘을 덮어 5백년 종사(宗社)가 잡아맨 깃발같이 위태롭고 삼천리강토가 적의 경계로 들어가게 되었으니 이보다 더한 위기가 없을 것이다. 마침내 하늘과 땅이 뒤집히는 큰 변을 만나 형세를 어찌할 수 없는지라 주상은 욕되고 신하는 죽어야 할 지경에 이르렀다.소위 세신(世臣)들은 창귀(倀鬼)6)가 되어 집으로 범을 달게 끌어들이고, 다만 이 몇몇 선비들이 우후(牛後)7)의 부끄러움을 근근히 면하고자 하였다. 제공(諸公)이 장차 몸을 죽을 땅에 던지고 계책을 백가지 어려움의 끝에 세워 밀조를 받고 의군(義軍)을 일으켰다. 긴 막대나무를 베어 깃발을 걸고 옷을 찢어 발을 싸매고 산과 들을 두루 돌아 적의 총탄을 무릅쓰면서 가시덤풀을 베어 국운을 붙잡으려 하였으나, 불행하게도 석양의 노을이 차츰 다가오니 애석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이것이 천지의 운이며 우리나라의 운명이다. 그 마음을 찾고 그 의리를 의논하면 노연(魯連)·문산(文山)에 부끄러움이 어찌 없을 것이나 창상(滄桑)8)이 세 번 변하고 세대가 한 번 무너졌다. 조정에는 충의를 포상·권장하는 법전이 무너지고 재야에는 의를 장려하는 평(評)이 없으니, 이것이 인인(仁人)과 지사(智士)가 한가지로 한탄하며 물러나고 충혼의백(忠魂義魄)이 필시 저승길에 눈물을 머금을 일이 아니겠는가? 우리나라 사람들이 지금까지 수령(首領)을 보유하고 있는 것은 누구의 힘이겠는가? 이에 정도(正道)를 지키는 여러 군자에게 고하는 바니, 다행히 동참을 허락하여 대의를 돈독하게 하고 장렬을 표하면 천만 다행한 일이라 할 것이다.병인(丙寅)9) 3月 日에 조성목(趙性穆) 삼가 씀.각주) 1) 관구(冠屨) - 갓 관, 신 구. 관례를 올릴 때 쓰는 갓과 신는 신발 2) 화이(華夷) - 중국 한민족(漢民族)은 예로부터 자기 민족이 세계의 중심이 되는 가장 문명한 민족이라는 의미에서 `중화(中華)`라는 말을 썼는데, 이민족을 천시하여 이(夷:오랑캐)라고 하였다. 춘추전국시대부터 진(秦)·한(漢) 시대에 걸쳐 한민족의 생활·문화 향상, 유학(儒學)의 발달과 함께 중화사상은 예교의 유무에 의해 화이(華夷)를 구분했다. 3) 춘추(春秋) - 인류 사회가 오랜 세월에 걸쳐 겪어 온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 변천이나 흥망의 과정, 곧 역사를 말한다. 4) 노연(魯連)의 도해(蹈海) - 노중련은 전국시대 제(齊)나라 사람. 진(秦)이 조(趙)나라 수도를 포위하자 위(魏)왕이 신원연을 조나라에 보내어 진왕을 황제로 추대하도록 조나라 왕을 설득하라고 시켰는데, 마침 조나라에 와 있던 노중련이 신원연을 만나 그 잘못을 지적하여 저지하면서 “만일 진나라가 황제가 된다면 우리 선비와 인민들을 종으로 부릴 것이니 나는 차라리 동해바다에 빠져 죽겠다”라 하였다. 5) 문산(文山)의 누송(樓宋) - 문산은 문천상의 호. 남송 말의 대표적 시인이면서 관리로 원나라에 죽음으로 항전한 충신. 누송은 송나라를 향한 충절을 이르는 말인 듯하다. 6) 창귀(倀鬼) - 먹을 것이 있는 곳으로 범을 인도한다는 못된 귀신 7) 우후(牛後) - 소의 궁둥이라는 뜻으로, 세력이 있는 사람의 아래에 붙어 있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8) 창상(滄桑) - 창해상전(滄海桑田), 세상이 크게 변하는 것을 이르는 말. 9) 병인(丙寅) - 1926년, 순종의 국장을 계기로 6.10만세 운동이 일어난 해이다.
즐겨찾기+ 최종편집: 2025-05-02 08:21:50 회원가입 전체기사보기 원격
트위터페이스북밴드카카오톡네이버블로그URL복사
동정
이 사람
데스크 칼럼
가장 많이 본 뉴스
상호: 경북동부신문 / 주소: 경상북도 영천시 최무선로 280 / 정기간행물 등록번호 : 경북, 다-01264 / 등록일 : 2003-06-10
발행인: 김형산 / 편집인: 양보운 / 청소년보호책임자 : 양보운 / 편집국장: 최병식 / 논설주간 조충래
mail: d3388100@hanmail.net / Tel: 054-338-8100 / Fax : 054-338-8130
본지는 신문 윤리강령 및 그 실요강을 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