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신축(辛丑)년 하얀 소의 해라고 한다. 새해의 소망이 담겨있는 덕담으로 SNS에 분주히 올라오던 말들이 하나같이 ‘~소’로 끝나는 글들이었다.대표적인 것 몇 개 꼽자면 ‘새해엔 건강하소’, ‘가족과 친해지소’로 시작해 마지막엔 ‘코로나19 이기소’에 이어 ‘부디 살아 남으소’로 마무리하는데 참 의미심장하다.살아 남는다는 말, 요즘같이 힘겨운 시대에 소시민들의 가슴을 울리는 절절한 표현이다.대한민국의 절반에 해당하는 사람들, 특히 코로나19로 오랜 기간동안 어쨌든 살아남으려 발버둥치는 소상공인들과 자영업자들한테는 억울함과 울부짖음의 소리다.이제까지 묵묵히 따르던 시민들도 오죽 죽을맛이어야 참는 것이지 코로나 걸려 죽으나 굶어 죽으나 매 한가지라며 정부 방침에 불복하려는 태도가 나오기 시작하는 마당이다. 버티다 버티다 화살은 정부를 향한다.취업준비생들은 취직 못해 죽을 맛, 취직해 일하는 사람들은 구조조정의 칼바람 때문에 죽을 맛, 학생들은 절친 못만나 죽을 맛, 운동 좋아하는 사람들은 마음놓고 운동못해 죽을 맛이다.이런 사람들이 어떻게든 살아 남으려 몸부림을 친다. 여러달 수입은 끊기고 임대료는 꼬박꼬박 내고있는 자영업자들한테 집합금지 명령 내리고 연장만 해대고, 같이 고통분담하던 유사업종에는 덜컥 규제 완화 해주니 분노에 상대적 박탈감을 느낄 수밖에 더 있겠나.방역의 성공을 말하면 ‘웃기네’라며 ‘K 방역’이 ‘킬방역’이냐며 조롱까지 한다. 당사자들은 핀셋방역이라고 자랑하지만 방문 열어놓고 군불 때듯 곳곳에 구멍이 뚫려있다.사회적거리두기를 2단계로 하든 2.5단계로 하든, 연장을 하든 상관없다. 일부에는 긴장이 풀린 모습도 보이는데 벼랑끝까지 몰린 사람이 무슨 짓을 못할까.쉽사리 안심하고 긴장의 끈을 놓으면 언제 다시 타오를지 모르는 상황인데도 1년 가까운 세월을 지나오는 동안 ‘확진자 1명 발생’이라는 안전문자가 와도 눈도 끔벅하지 않는다. 매너리즘에 빠져 그러려니 할뿐이다.위기를 헤쳐 나가기 위해 어려움을 참으라고 하지만 언제까지라고 기간이 정해진 것도 아니요, 그렇다고 희망이 보이면 몰라도 내내 갈길 먼 깜깜한 터널 안이다.사람마다 개인차가 있으니 벌써부터 임계점을 넘어버렸는지 여러사람의 희생을 한순간에 헛되게 만드는 이들이 자꾸 생겨나는 이유인지도 모른다.높은 국민성을 앞세워 나보다는 우리를 먼저 생각해 일상을 양보하던 이들이 허물어지고 있다.이 모든 것이 정부 책임일진대 정부가 하는 일에 협조하라는 말조차 이제는 미안하고 두렵다.깊이있는 검토나 업종별 종사자들 의견 수렴도 없이 부족한 상황인식과, 갈팡질팡에, 형평성에도 맞지도 않는 무능한 민낯의 정책을 내놓으니 이제는 ‘미친놈들’이라는 소리가 헛거같이 나온다.멀쩡한 서민들의 ‘죽겠다’는 신음소리는 들리는지 마는지 그들을 상대로 과태료니 뭐니 협박이나 하고 엄포만 놓아댄다.이런 협박이나 엄포에 마음약한 소시민들은 좌절감과 불신을 토로하지만 뾰족한 수가 없으니 한번은 슬그머니 주저 앉지만 그 내려놓음이 오래갈 수는 없다. 살아야 하니까. 시민 불복종이 충분히 나올만 하다.진정으로 시민의 삶을 돌본다면 방향도 중요하지만 방법 역시 매우 중하다. 부랴부랴 형평성 문제에 대한 보완책을 내놓긴 했지만 긍정적이고 환영하기 보다는 우려를 나타내며 반발세는 진정되지 않는다.너무나 긴 시간의 갑갑함과 절박함이 작용한 탓이다. 여러 지표상 희망을 품게 하는 측면은 안보이고 불안요인만 가득하다.이해한다, 1년이라는 세월동안 견디기 힘든 고충이 그 얼만데 불만이 왜 생겨나지 않겠는가.불복이라는 대응이 초래할 여파조차 모를 사람들이 아니지만 그보다 사람 죽겠다는데 어쩌란 말인가.제발 부탁이다. 정부의 거리두기 규제와 영업제한 조치를 무턱대고 일괄적용이 아니라 업종별 특성에 맞게 좀더 디테일하게 마련해야 한다. 그래야 형평성이니 불합리란 말을 하지 않을 것이다.물론 대놓고 정부정책에 불복종하는 방식의 항의는 우리 사회에 혼란만 초래한다는 걸 모르지 않는다.그런데도 정책이 다분히 즉흥적이라는 의문을 품게되고, 분야별 특성 구별없이 도맷금으로 적용해 버리니 선의의 피해자가 마구잡이로 생기면서 그들을 벼랑끝으로 내몰고 있다.불복종 운동까지 하고 나서는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들의 사정을 눈꼽만큼이라도 헤아린다면 억울해 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일 수 있도록 거리두기와 영업제한의 세부수칙을 한단계 더 정교하게 가다듬기를 바란다.우리사회 다수는 지난 한해동안 어쨌든 살아보려고 쉬지않고 무던히도 노력했지만 결과는 패배였다는데서 속상해 하고 있다.이미 충분히 힘든 상황에서 주는 재난지원금의 경우도 오뉴월 땡볕에 찔끔 소나기 스치듯 통장에 들어오자마자 나가 버리니 이 상황엔 없는것보다야 낫지만 실효적인가라는 물음을 던지게 된다.우리가 가진 사회보장제도 혹은 복지제도의 부실로 현금지원을 할 수밖에 없다해도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을 보면 위기의 본질이 들어난다.집합제한으로 피해를 본 사람들한테 코로나가 주는 고통의 무게는 고통이고 ‘코로나 양극화’ 이야기까지 나온다.모두가 함께 잘 살아야 건강한 사회다. 그런데 불안하다. 언제쯤 이 답답한 마스크 벗어 던질까. 그때까지 쇠심줄로 ‘부디 살아 남으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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