움집을 ‘태고’로 일컬은 것은 어째서인가? 뜻이 보잘것없기 때문이다. 움집의 주인은 누구인가? 지금 세상 사람이다.마음이 태고이니 뿔로 건을 만들고 가죽으로 띠를 만들고 큰 베로 옷을 만드니 이 의복이 모두 태고이다. 그 말씨는 어눌하고 그 모습은 좋지 않아 어둔하고 졸렬하여 시속을 따라서 저앙低仰하지 못하니 말씨와 모습이 또한 한 태고이다.날로 반드시 단정히 앉아서 침잠하여 지금 사람들이 음미하지 못하는 것을 음미하니 무회씨의 백성인가? 갈천씨의 백성인가? 이로써 이름하였다.23)지수는 태고인이 되고 싶어하였는데 태고인으로 복희를 들었다. 복희 시대는 세상일이 순리대로 되었다.더 많이 가지기 위해서 더 높이 오르기 위해서 다른 사람을 내치는 사회가 아니었다. 능력이 있는 사람이 능력이 없는 사람을 다스리지만 그들을 착취하여 부귀를 이루려 하지 않은 사회였다.지수는 이러한 사회의 백성이 되고 싶어하였다. 그러나 현실은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당색이 다르다는 이유로 서로 미워하며 다투었다. 한정된 부귀를 더 많이 가지기 위해서 끊임없이 충돌하였다.지수는 현실에서는 이룰 수 없는 세상을 만들고 싶은 마음에서 태고와를 지었다.뿔로 두건을 만들고 가죽으로 띠를 만들고 큰 베로 옷을 만드는 소박한 생활이지만, 말씨는 어눌하고 모습이 좋지 않은 보잘것없는 사람이지만 날마다 단정히 앉아서 지금 세상 사람들이 음미하지 못하는 것을 음미하는 무회씨와 갈천씨의 백성이 되고 싶은 마음을 가졌기 때문에 태고와를 지었다.태고와 앞에는 맑은 물이 흐르고 그 물의 깊이가 제법 깊어 배를 띄울 수 있을 정도였다. 실제로 훈수와 지수는 이곳에 배를 띄웠다.24)태고와 앞의 깊은 못은 홍류담紅流潭이다. 홍류담은 횡계의 물이 태고와 앞에서 굽어 돌며 자연스레 생긴 못이었다. 현재는 수량이 많지 않아 배를 띄울 정도는 아니지만 홍류담에서 바라보는 굽이의 경관은 절경이라 할 수 있다.홍류담의 뱃놀이는 지수가 지은 시를 통해 그 내용을 엿볼 수 있다. 지수가 지은 시의 제목은 당시 어떤 상황에서 뱃놀이가 이루어졌는지 짐작할 수 있게 한다.8월에 작은 배가 비로소 이루어지니 대체로 서당 제군의 힘이다. 16일 밤에 산의 달이 매우 밝아 시험 삼아 제군과 더불어 배를 띄우고 홍류담에서 노닐며 뱃머리에 기대어 거문고를 타니 생각이 초연하여 율시를 읊어서 제군에 사례하였다.25)8월에 작은 배가 비로소 만들어졌다. 그 배는 서당의 여러 유생들이 힘을 합해 만든 것이었다. 작은 배라 하였으니 홍류담에 띄울 정도이고 한두 명이 탈 수 있는 크기가 아닌가 한다.8월 16일 밤에 드디어 산 위로 달이 밝게 떠오르자 여러 유생들과 뱃놀이를 시작하였다. 배가 홍류담에 띄워지고 훈수와 지수는 배에 올랐다.배가 움직이며 뱃놀이의 흥취가 일어나자 훈지 형제는 뱃머리에 기대어 거문고를 탔는데 생각이 초연하였다.훈수와 지수는 감사한 마음에 시를 지어 여러 유생에게 사례를 하였다. 훈지 형제가 지은 시를 살펴보면 그 당시 뱃놀이의 흥겨움을 느낄 수 있다.壁裏埋頭兩絲 벽 속에 묻힌 머리 양쪽 귀밑머리 실 같은데今宵追逐少年兒 오늘 밤에 어린 아이 좇아 가네一江明月蘇仙興 한 강의 밝은 달은 소선의 흥이고兩岸秋聲晦老詩 두 언덕 가을 소리 회로의 시로다垂釣豈爲漁父樂 낚싯대 드리우되 어찌 어부의 즐거움을 가지리오彈琴莫許俗人知 거문고 타며 속인이 알게 하지 말지라諸君意致還多感 제군의 의치는 또한 감흥이 많으니滿艇風流長我癡 배에 가득한 풍류는 나의 어리석음 길게 하네26)훈수와 지수는 그 날 밤에 어린 아이처럼 즐거워하였다. 공부하는 일에 매달리다 보니 이러한 일을 해본 적이 없었다. 마음은 있었으나 이를 실행하는 일이 쉽지 않았다. 그러니 그 날 두 선생의 마음은 어린 아이를 좇아가고 있었다.횡계 위에 떠오른 밝은 달은 소식蘇軾이 가졌던 흥취이고 두 언덕에서 들려오는 가을 소리는 주자朱子가 지은 시이다. 소식이 적벽에서 가졌던 흥취를 지금 훈수와 지수가 누리고 있으며 주자가 가을을 읊은 시를 지금 이 자리에서 듣고 있는 것이다.훈수와 지수에게 이보다 더 흥겨운 일은 없었을 것이다. 여기에다 훈지 형제는 어부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었다. 비록 실제 물고기를 잡으며 가지는 즐거움은 아닐지라도 배를 타고 낚시하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었다.그리고 배 위에서 거문고를 타는 즐거움도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거문고를 타는 데는 전문적 지식이 필요하지 않았다. 마음에 느끼는 흥취를 거문고에 담아내면 되었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의 지식이 필요없다 하였다.태고와 앞에서 벌였던 뱃놀이는 선생을 태고의 사람으로 만들기에 충분하였다. 이 후에도 홍류담의 뱃놀이는 여러 차례 있었고 그 때마다 훈수와 지수는 이를 시로 지어 남겼다.三曲深堤可汎船 삼곡이라 깊은 제방 배를 띄울 만하고窩中太古是何年 움집 중에 태고와는 몇 년이 되었는가進修一事須相勉 진수재의 한 일은 모름지기 서로 힘씀이니多少英才我最憐 수많은 영재를 나는 가장 사랑하네27)횡계구곡 제3곡에 이른 훈수와 지수는 깊은 제방에 배를 띄울 만하다고 하였다. 제방은 홍류담을 말하는데 이 굽이에 이르러 제대로 구곡 유람을 할 수 있게 되었다.구곡 유람은 배를 타고 하는 것이 원칙이다. 그것은 주자의 유람을 모방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제1곡과 제2곡에서는 이런 유람을 할 수 없었다. 그것은 자연적 조건이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이다.그런데 제3곡 태고와에 이르러 이를 실행할 수 있었다. 훈지 형제는 이 점을 가장 먼저 제시하였다. 그리고 홍류담 가에 세워진 태고와를 말하였다. 태고와는 몇 년이나 되었는가 물음으로써 태고와의 의미를 이야기하였다.그리고 진수재를 이야기하였다. 후진 양성에 매진했던 두 선생의 삶은 진수재에 담겨 있었다. 그래서 훈수와 지수는 수많은 영재를 가장 사랑한다는 말로써 진수재의 의미를 말하였다.각주)23) “窩以太古稱何 志樸陋也 主窩者誰 今世人也 心則太古也 角爲巾 皮爲帶 大布爲衣 是被服 皆太古也 其口訥 其形迂迂拙拙 不能隨俗低仰 言與貌 亦一太古也 日必兀坐沈潛 味今人之所不味 無懷氏之民歟 葛天氏之民歟 是以名”『塤篪兩先生文集』卷23 「記」<太古窩記>24) “甲申秋 造小艇 汎于洪流潭 或披蓑於煙雨 或携琴於月夜 鼓上下 以寓閒談之趣”『塤篪兩先生文集』「篪叟先生文集附錄」 「遺事」25)『塤篪兩先生文集』卷1 「詩」 <八月 小艇始成 蓋溪塾諸君之力也 十六夜 山月政明 試與諸君 汎舟遊於紅流之潭 倚舷彈琴 意想超然 吟四聲 以謝諸君> 26)『塤篪兩先生文集』卷1 「詩」 27)『塤篪兩先生文集』卷6 「詩」 <橫溪九曲敢用晦菴先生武夷櫂歌十首韻> 三曲詩
즐겨찾기+ 최종편집: 2025-05-02 08:23:18 회원가입 전체기사보기 원격
트위터페이스북밴드카카오톡네이버블로그URL복사
동정
이 사람
데스크 칼럼
가장 많이 본 뉴스
상호: 경북동부신문 / 주소: 경상북도 영천시 최무선로 280 / 정기간행물 등록번호 : 경북, 다-01264 / 등록일 : 2003-06-10
발행인: 김형산 / 편집인: 양보운 / 청소년보호책임자 : 양보운 / 편집국장: 최병식 / 논설주간 조충래
mail: d3388100@hanmail.net / Tel: 054-338-8100 / Fax : 054-338-8130
본지는 신문 윤리강령 및 그 실요강을 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