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만 후손들이 그 옆으로 선영先塋을 오고 가는 길을 만들어 놓아 그 길을 따라가면 고암에 이를 수 있다. 가는 길이 제법 가팔라 고암까지 가는 시간이 생각보다 많이 걸린다. 현재 고암, 즉 고산사는 남아 있지 않고 그 터만 있다. 고암이 있었던 자리는 20여 평 정도인데 주위로 여러가지 나무들이 둘러 있고 터에는 풀들이 자라고 있다. 고암 바로 오른쪽에 계곡이 있는데 이 계곡을 흘러가는 물이 횡계로 흘러든다. 지수는 대전리大田里에서 횡계리橫溪里로 거처를 옮긴 지 6년 후에 이 굽이에다 고산사를 창건하고 후진을 양성하였다. 이러한 자취가 남아 있는 굽이를 횡계구곡 제9곡으로 설정한 것은 의미가 있다. 제9곡은 시내가 시작하는 지점을 의미하고 도가 솟아나는 지점에 비유한다. 훈수와 지수가 고암을 제9곡으로 설정한 것은 이러한 두 가지 의미를 모두 갖추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고암은 횡계의 가장 상류이니 시내가 시작되는 지점이다. 아울러 고산사가 있었으니 도가 강론되는 공간이었다. 이 굽이에서 시작되는 횡계 물은 횡계의 굽이를 적시고 있고, 공부했던 유생들은 횡계의 각 굽이에 거처하며 도를 전하였으니 횡계구곡은 성리가 전개되는 공간이었다. 九曲高菴望鬱然 구곡이라 고암에서 아득히 바라보니 林端懸瀑走前川 숲 끝의 폭포 물이 앞 내를 달려가네 應知此去深深洞 응당 이것은 깊고 깊은 동천으로 가니 三十天中第一天 삼십 동천 중에 제일 동천이라네45) 훈수와 지수는 횡계구곡 제9곡인 고암에 이르렀다. 고암, 즉 고산사는 자하산 중턱에 자리하고 있기 때문에 앞이 확 트여 멀리까지 볼 수 있다. 그들은 고산사에 서서 앞에 전개되는 아득한 경관을 바라보니 자하산 숲 끝 부분에 폭포가 있고 그 폭포에서 떨어지는 물이 흘러가서 횡계로 들어갔다. 훈수와 지수는 이 굽이가 삼십 동천 중에 제일가는 동천이라 하였다. 그것은 가장 깊고 깊은 동천이고 경치가 아름다운 동천이기 때문만이 아니다. 이 굽이에 고산사가 있고 고산사에서 많은 인재를 길러냈기 때문이다. <끝> 각주) 45) 『塤篪兩先生文集』 卷6 詩<橫溪九曲敢用晦菴先生武夷櫂歌十首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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