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하루하루 다르게 삼천리 화려강산에 꽃들이 새로운 모양과 색깔의 옷으로 갈아입으며 봄맞이 릴레이를 하는 것 같다.
겨우내 움츠렸던 몸 또한 피어나는 꽃들처럼 깨고 있다. 그야말로 춘기탱천이다. 3월의 마지막 일요일인 지난 주말도 만발한 벚꽃 명소들은 상춘객들이 몰려 봄 정취를 즐겼다는 소식이다.
코로나 상황을 고려해 주차장을 폐쇄하고 입장을 제한해도 드라이브 스루라도 즐기려는 사람들이 보였다고 했다.
방역당국의 방문 자제 요청에도 봄과 봄꽃을 즐기려는 사람들은 흥을 못 이기고 꽃길을 걸으며 사진을 찍고 즐거움을 누리고 싶을 것이다.
이런 글을 쓰면 고리타분해 하거나 아제성 글이라고 비난을 퍼부을지 몰라도 봄을 노래하는 글로 백미는 조선시대 정극인이 쓴 ‘상춘곡’이다.
‘수풀에 우는 새는 춘기를 못내 겨워 소리마다 교태로다.’ 라고 읊었는데, 그 얄궂은 봄기운에 정신을 못 차리는 것이 어디 ‘수풀에 우는 새’ 뿐이겠는가?
만물의 영장인 사람들은 마음 깊은 곳에서 일어나는 이 몹쓸 봄기운을 시나 노래, 그리고 악기 연주나 몸짓으로 형상화 하였는데, 오랜 세월이 흘러 그 흔적들이 아름다운 예술로 승화되어 전하기도 하지만, 계층 간에 위화감을 느끼게 하는 내용도 더러 있어서, 이후의 꽃놀이는 어떻게 하는 것이 지금이나 미래에도 품격 높은 상춘객의 모습인지를 생각해 본다.
가끔 늦은 추위나 비바람이 봄을 시샘하며 길목을 막아서지만 우주의 시간은 정확하고 결국 대자연의 흐름에는 이길 수가 없는 노릇이다.
연초록 잎들도 앞다퉈 꽃들로부터 차례를 넘겨받고 꽃보다 아름다운 자태로 계절의 한가운데로 마구 내닫고 있으니 말이다.
‘화전놀이’로 대표되는 옛사람들의 풍류를 따라가면 바쁜 일상을 사는 요즘 사람들에게는 여유가 흠씬 느껴진다. 봄날 삼월 삼짇날이면 여자들은 경치 좋은 곳에 가서 꽃지짐을 부쳐먹으며 놀았고, 남자들은 높은 산에 오르거나 들판을 거닐면서 봄노래를 불렀다.
이러한 일반 서민들의 소박한 화전놀이와는 달리, 지체 높으신 분들은 풍광 좋은 누각에 올라 술 마시며 기생들의 노래와 춤을 즐겼고, 양반가 유생들도 산 좋고 물 맑은 곳에 소풍가서 유유자적 어슬렁거리며 시와 부를 읊조리며 즐겼다.
이러한 봄날의 감상을 무색하게 하며 봄을 봄같지 않은 계절로 만드는 것이 있으니 그게 바로 코로나19다. 일상이 정지된지 1년여, 지난해에 이어 우리의 바깥활동을 막으며 전국에서 열릴 봄과 꽃의 축제를 모조리 취소시켰다.
이렇게 코로나19는 우리의 봄날을 두 번씩이나 앗아간 바이러스. 만물이 다시 살아나는 봄이지만 바이러스의 기세에 눌려 꽃구경은 차치하고 계절의 변화조차 느낄 겨를이 없다.
심신이 지친 사람들은 멋모르고 봄나들이 나서지만 만남과 접촉을 자제하라는 사회적 거리두기와 방역지침은 아직 그대로다.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이런 생활이 처음엔 당황스러웠지만 이제는 시름에 지치고 몸부림에 가까운 절규마저 내지를 참이다.
사람이 모이면 확산하는 코로나19 특성상 술집과 음식점을 비롯한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의 영업제한은 방역을 받치는 주요한 축이 되다보니 체감 경기가 오히려 한기를 느낄 지경이다.
최근 이동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공개한 한국신용데이터 분석 결과를 보면, 정부의 집합금지·제한 조처 대상이 된 소상공인·자영업자의 지난해 매출이 업종별로 2019년보다 최대 42%까지 줄어든 것으로 집계됐다.
사회를 유지하기 위해 누군가 희생을 해야 했다면, 그 고통도 공정하게 나눠 가지는 것이 맞다. 정부 재정이 화수분이 아니듯이 자영업자들의 호주머니 또한 화수분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루 속히 코로나19 확산세가 수그러들고 백신 접종이 이뤄져 집단 면역이 형성되면 집콕에서 벗어나 강변에 잘 가꿔놓은 화려한 봄꽃 구경 제대로 좀 하고 싶다.
언제쯤 우리 모두가 일상을 되찾아 아름다운 자연과 소중한 사람들을 만나고, 벚꽃이 물결을 이루는 거리로 나가 봄을 즐길 수 있을까.
꽃피고 새잎 돋는 아름다운 봄 속에 평범한 시민들의 건강한 웃음을 바라볼 수 있을 날이 그립지만 날씨가 이렇게 좋으면 더 서글프다. 고통과 괴로움 속에 놓인 사람들은 이미 와 있는 봄조차 봄같지 않고 오히려 잔인하다.
정세균 국무총리의 말처럼 마스크 벗고 꽃향기 마음껏 들이마시는 봄다운 봄은 잠시 마음속에 담아 두어야 하지만 우리가 함께 누릴 희망의 봄을 간절한 마음으로 손꼽아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