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강조하는 말이지만 사람은 혼자서 살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특정한 사회적 공간과 범위 안에서 공통의 가치와 유사한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사는데, 그런 집단을 우리는 공동체라고 부른다.
가장 기본적인 공동체가 혈연공동체인데,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대표되고, 개인의 생존과 집단 재생산을 위한 중요한 단위 조직이다.
지역을 근거로 한 ‘마을’로 대표되는 지연공동체는 협동과 공감의 집단으로 전통사회에서는 혈연공동체와 지연공동체가 상당히 중첩이 돼 있었다.
오랫동안 한국사회를 떠받치던 이 둘의 공동체는 급속한 산업화 등을 경험하면서 ‘발전’이라는 명목으로 범주가 확장되고 공동체의 유형이나 규모도 다양해졌다.
근대화, 산업화가 시작된 이후 지금까지 우리 지역 같은 공동체는 사실 산업단지(공단) 유치에 커다란 기대를 걸었고, 그것 말고는 발전, 즉 ‘부자’ 될 일은 거의 없다.
산업단지니 뭐니 하며 도시계획 선하나 잘 그어주면 로또처럼 졸지에 부자가 되는 경험을 농촌은 잘 알고 있다. 그런 개발환상이 또다른 단지를 유치하는 개발 정책에 기대를 걸며 투기를 하도록 만들고 정치인들은 이런 점을 자주 이용한다.
오늘의 지역을 말하자면 막힘없는 대구선 복선전철에 동대구역에서 영천까지 17분이면 도착한다고 자랑하며 교통망이 여유롭고 쾌적한 생활인프라라고 자랑한다.
거기다 경마공원에, 산업단지, 하이테크파크까지 가치가 기대되는 미래비전까지 탑재하고 있으니 막말로 유토피아 같은 곳처럼 보인다. 그런 기대감에 목하 도시인들이 물밀듯 몰려오는 막연한 상상을 하고 있는 중이다.
하지만 기대와 흥분을 가라앉히고 조금만 깊이 들여다보면 날마다 줄어드는 인구와 지역, 농업, 농촌이 계속해서 쪼그라드는 것이 눈에 보이는데 장밋빛 미래와 순진한 상상만 하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어떤 이들은 17분이면 도착하는 대구선 복선전철이 호재만은 아니라는 이야기를 한다. 지역의 경제, 문화를 비롯한 모든 생활이 대구쪽으로 더 강하게 예속되는 ‘블랙홀’같은 역할을 할 것이란 예측을 내놓는다.
그렇게 되면 지역 상권이 무너지는 것은 시간문제다. 이웃동네 가듯 대구로 나가면 더 값싸고 다양한 종류의 쇼핑을 즐기는데 뭐하러 불편하고 경쟁력 없는 전통시장에 가느냐고 조롱한다.
영천에서 소비할 이유가 약하듯 교육 또한 별반 다르지 않으니 지역공동체가 약화되거나 무너지리란 것은 쉽게 예측 가능해진다.
냉정하게 생각해보자. 우리는 정말 어떤 영천을 바라고 있는가. 우리 스스로 깊이 생각하지 않고, 우리 힘으로 우리의 삶을 건사하지 못하면 남에게 의존하려는 성향이 일상화 되거나 시키는대로만 하면 되는 법을 배운다.
구성원의 한사람으로 부정적이거나 우울한 이야기는 가급적 하기도 싫지만 현실을 직시하는 것 또한 중요한 일임에 틀림없다. 지역에 많은 변화를 예상했던 대구선 복선전철 개통도 마찬가지다.
그냥 넋 놓고 바라보는 방법과, 지속적으로 정치권과 행정, 주민들 사이에서 치열한 논의를 하고 대책과 대안을 모색하는 방법이 있다면, 지금이 그 시점이라면 우리는 어느 쪽을 택할 일인가.
깊은 고민이나 문제의식을 지니지 않아도 선택은 뻔하다. 무엇보다 본질적인 것은 ‘나만’이 아니라 ‘다함께 더불어’ 살아감에 대한 우리의 진지한 성찰과 공동체를 유지하고 회복하는 지혜와 노력이 필요하다.
그 속에서 우리의 잠재력과 저력을 바탕으로 공동체 고유의 기질을 살리고 다양한 사업을 통해 경쟁력을 키워 나가야 한다. 공동체를 회복하고 유지하는 데는 구성원들의 결집된 힘과 뜻이면 못 이룰 일이 없다.
반대로 갈등이 만연하면 공동체는 침체되고 그 안의 구성원들의 상처만 깊이 패이며 종내는 공멸의 길을 택할 것이다. 건강한 공동체 정신을 살리고 역량을 모아 살아 꿈틀거리는 지역을 만들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