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바람과 함께 6년 전 홀연히 떠나신 아버지 기일을 맞아 제사 준비를 마치고 시간을 기다리며 차분하게 TV를 보던 순간 옆에 앉은 동생이 “형님, 방금 쟤들이 하는 ‘마상’이란 말이 무슨 뜻인지 아는교?”한다.
그 장면은 보지도 못 했을 뿐더러 ‘마상’이라는 말 뜻을 몰라 고개를 도리도리 했더니 그 뜻이 ‘마음의 상처’라고 설명한다.
이처럼 요즘 젊은이들이 쓰는 말을 들으면 직관적으로는 무슨 소리인지 알 수 없는 말이 대다수다. 그들이 일상생활 속에서 구사하는 말 중에는 별의별 줄임말과 신조어들이 너무 많아서 무슨 소리인지 갸우뚱 할 때가 많다.
청소년들은 그것도 많다고 초성체만 쓰는데 ‘ㅇㅈ’을 ‘이응 지읒’이 아닌 ‘인정’으로 읽는다. ‘ㅁㅊㄷ ㅁㅊㅇ’는 ‘미쳤다 미쳤어’로 읽고, ‘ㄱㅇㄷ’이라 쓰고 ‘개이득’으로 읽는다.
‘개-’와 ‘이득’을 합쳐서 만든 말인데 ‘매우 큰 이득을 봤다’는 뜻이란다. ‘개-’는 보통 접두사로 쓰여 부정적인 뜻을 표현했는데 요즘 청소년들 사이에서는 ‘매우, 정말’이라는 말로 사용되는 모양이다.
문제는 종합편성 채널들만이 아니라 공중파에서도 여과 없이 마구잡이로 쓰고 있으니 세대차를 떠나 외계인으로 전락한 기분마저 드는 게 사실이다.
예전부터 이런 류의 말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때로는 듣고 그 뜻을 알면 당황스러울 때도 있다. 과거 ‘옥떨메’(옥상에서 떨어진 메주), ‘라보때’(라면으로 보통 때운다) 같은 준말이 유행했다.
요새 이런 줄임말 쓰면 꼰대 반열이지만 ‘내로남불’이나 물냉(물 냉면), 비냉(비빔 냉면)은 자연스럽고 젊은 층에도 어느 정도 익숙하다.
이처럼 줄임말이 활개를 치는 이유로 인터넷과 휴대전화를 꼽는다. 빠르게 본인의 뜻을 전달하려는 것과, 문자메시지의 경우 90바이트 내외에 모든 걸 축약해서 전달해야 하기 때문에 거기에 적응하려니 줄임말을 쓸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채팅하는 사람들끼리 쓰다 이젠 관용어처럼 변해버린 ‘즐감’(즐거운 감상), ‘깜놀’(깜짝 놀라다), ‘버정’(버스정류장), ‘조배죽’(조직을 배신하면 죽는다) 같은 말이 이런 예에 속한다.
이런 현상은 외국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omg’(oh my god), ‘4eae’(forever and ever), ‘tnx’(thanks), ‘wo’(without) 같은 인터넷 줄임말은 이제 일반 언어처럼 쓰인단다.
발 빠른 기업에서는 이 같은 현상을 이용해 마케팅용으로 줄임말을 만들기도 한다. ‘한끝’(한 권으로 끝내기), ‘공신’(공부의 신) 같은 이름을 붙인 학습참고서도 있다. 최근 인기있는 스마트폰 앱 ‘당근 마켓’의 ‘당근’도 ‘당신의 근처에 있는’의 줄임말이라고 한다.
간편하고 재치 있어 보이는 작명이다. 이런 잘 줄인 말은 본래 말보다 간편하고 매력적이다. 지금의 젊은이들은 모바일 기기 사용에 익숙해 간단하고 간결한 ‘인스턴트’식 대화를 지향한다.
자고나면 생겨나는 줄임말에 대한 전문가들의 입장은 조금씩 다르다. 언어 파괴라는 견해도 있지만, 말엔 자정능력이 있어 의사소통에 문제가 되는 언어는 어차피 자연 도태되니 크게 우려할 필요가 없다는 견해가 우세하다.
매력적인 준말은 말의 맛을 더해 주고, 표현의 간편함과 효율성은 덤이다. 그리고 특정 집단 내에서 통용되는 준말은 서로 의사소통을 하는 데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다.
하지만 내가 아는 그 준말이 모두가 다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 같은 물냉·비냉도 이 단어를 처음 접하는 사람이 들으면 이해하지 못 할 수도 있다.
대화에는 배려가 필요한데, 말을 하기 전에 생각해 볼 것이 있다. 바로 ‘상대방이 이 말을 이해할 수 있을까’다. 이것이 ‘배려’다. 상대방을 배려해 사용하는 준말은 그 경쾌한 매력으로 대화에 재치와 재미를 더 해줄 것이다.
그럼에도 지나친 줄임말로 서로간의 소통에 방해가 되고 불편을 초래한다면 삼가야 하겠다. 세상사 뿌린 대로 거둔다는데 줄임말이 아닌 온전한 언어로도 독자들을 비롯한 만나는 사람들과의 소통이 미흡한 이 사람은 ‘이생망’(이번 생에는 망했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