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소리를 들으며 글을 쓴다. 최근에 양봉을 시작한 친구로부터 들은 이야긴데 비가 내릴 조짐이 보이면 벌같은 곤충들과 동물들은 사람들 같이 과학적인 일기예보가 없어도 미리 알고 움직인단다. 사람도 나이가 드신 노인들은 간혹 기상청보다 정확하게 ‘통증 일기예보’를 내놓는다. 관절염과 같은 만성질환으로 고생하시는 분들이 기상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할 때가 종종 있는데 물론 다 맞는 것은 아니지만, 흐린 날 혹은 비 오는 날 그분들의 몸은 더 큰 통증이 느껴지나 보다. 나이가 들면 몸이 감옥이 된다. 늙어 몸이 아파지기 시작하면, 내가 가만히 있어도 사물은 점점 멀어진다. 길가다 아무데나 철퍽 주저앉아 쉬는 노인들을 보면 왜 저럴까 싶지만 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르는 사실이 있다. 시내 병원 한번 가려면 버스 타러 저 큰길까지 걸어나가야 하는데 세 번 네 번을 쉬었다 가야 한다던 우리 어머니도 그런 축에 속한다. 내게 300미터 정도밖에 안 돼 보이는 저 길이 우리 어머니께는 몇 미터로 보일까. 얼마나 멀까. 오늘 10분이면 걸어갔던 곳을 한 달 후에는 갈 수나 있을지도 장담할 수 없다. 나도 언젠가 어머니 나이가 되면 한없이 멀게 느껴지는 이 길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지난달 초부터 시작해 이달까지 운영된 75세 이상 어르신들의 코로나19 백신 예방접종센터 광경을 보면서 이 코로나가 우리 어르신들을 제일 힘들게 하는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오랜만의 바깥 나들이라 마스크 속 미소 띤 모습을 눈으로 보이는 어르신도 가끔 있었지만 노구를 이끌고 계단을 오르는 모습이 왜 그렇게도 안쓰러워 보였을까. 시골마을에 가보면 경로당이라는 경로당은 모조리 문을 닫아 딱히 어디 갈 데도 없는 어르신들은 이웃끼리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보곤 한다. 우리 어머니와 같은 시골 어르신들을 뵐 때마다 생각하는 것이 있다. 왜 어르신들은 저리 힘든 몸을 하고 버스를 갈아타며 병원을 찾아가야 하는가. 면 소재지에 달랑 하나 있는 보건지소는 너무 멀고 가까이에 보건진료소 하나 없다. 그러니 힘들어도 영천시내로 나간다. 노인들이 사는 마을로 한 달에 한번이라도 정기적으로 의사가 찾아가는 ‘이동진료소’를 연다면 어떨까. 처방된 약을 조제해다 주는 마을 활동가의 도움이 있다면 어르신들의 고행길이 그만큼 줄어드는 것은 당연하다. 마을 이동진료소를 추진해주는 앞선 시장님 한 사람만 있으면 대한민국 1호 마을 이동진료소가 시작될 수 있다. 공공의료를 확대하고 강화해야 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시골 노인들에게 왜, 어떤 의료서비스가 필요한지 당사자들은 모른다. 거기가 의료사각지대인지도 모른다. 행정이 와서 접촉을 해야 필요한 의료의 수요를 찾아내는데 만남의 기회조차 잘 일어나지 않는다. 그들은 이 사회의 철저한 소외계층이다. 노인이고 촌에다 가난하고 여성이고 1인가구인 사람들, 게다가 차도 없고 몸이 불편해서 이동조차 어려운 사람들이다. 그들에게 우리 사회는 선거 때 빼고는 결코 관심을 보여준 적이 없다. 허리가 기역자로 꼬부라져도 병원 찾아가는 법을 모르는 이분들을 위한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고 지금처럼 코로나19 같은 위기 상황이 되면 공공의료의 필요성은 더욱 뚜렷해진다. 모두가 아는 사실이지만 의료는 산업인 동시에 복지의 영역이다. 시내의 젊은이 보다 시골 어르신들이 더 많은 복지를 필요로 한다. 그런데도 그들의 목소리는 너무 작고 낮게 들리고 있다. 행정은 이렇게 낮게 들리는 이들의 목소리도 적극적으로 찾아 나서야 한다. 그것이 행정이 또는 공공의료가 있어야 할 자리다. 영천시내 완산동 공설시장 근처. 약국과 병원이 죄다 모여 있는 이 거리를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뒤뚱거리며 4차선 도로를 바쁘게 건너가는 노인들. 왜 저럴까 싶게 때로는 위태로운 무단횡단을 하는 모습도 보인다. 그런데 실은 그것이 그들의 ‘목소리’다. 우리가 듣지 못했지만 굽어 살펴야할 시골 어르신들이 공공의료를 요구하는 절규다. 병원중심이 아닌 만성질환을 앓는 의료 사각지대 환자 중심의 의료시스템으로 바꿀 때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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