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동부신문이 지난달 창간 18돌과 지령 700호를 잇달아 맞았다. 전에는 ‘강산도 10년이면 변한다’ 했지만 지금은 강산도 언론 환경도 눈뜨면 바뀌는 세상이다. 그것도 열악한 환경으로 변한다.
그동안 언론의 영향력이 많이 약화됐다. 디지털 환경에서 정보 생산과 유통은 언론이 갖고 있던 독점권조차 약해지고, 신뢰까지 하락하는 것이 세계가 함께 겪는 구조 변동이다. 매체도 다양화 하면서 시장점유는 축소되고, 이는 당연히 수익성 악화로 이어지며 경영의 어려움까지 초래한다.
옛말에 ‘의식이 족해야 예절을 안다’는 말과 ‘배부르고 나서야 윤리도 있다’는 말처럼 세상 아무리 가치있는 일도 인간 생존의 기본욕구가 충족되지 않는다면 존재 가치가 없다는 의미다. 언론 또한 마찬가지다.
게다가 독자들의 수준과 기대는 한없이 높아지고 그런 기대와 요구에 부응하려면 기본적인 비용의 소모는 당연한 것이다. 하지만 축소된 시장 점유율로 생산성을 올리기는 어렵고 기본적으로 들어가는 비용은 존재하기 마련이다.
그런 중에도 경상경비는 점점 늘어나니 자꾸만 좁아지는 시장의 현실 앞에 언론이 제 기능을 충실히 수행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짐작이 될 것이다. 연쇄적으로 언론인의 취재역량마저 약화시켜 스트레스를 느끼고, 치열함이 사라질 정도로 내몰리고 있는 게 솔직한 현실의 고백이다.
현장의 취재원들도 언론에 대해 불신감을 포함, 비협조적인 태도가 확연히 느껴진다. 어떤 문제나 정책에 대한 질문을 던지면 반감부터 보이며 ‘내가 왜 그 문제에 대답해야 하나’라는 식으로 기자를 백안시 하고 각을 세우려 한다.
협조적이거나 홍보성 기사는 몰라도 비판 언론에 대해서는 아예 치열하게 맞대거리 하고 그것으로 어떤 인정을 받으려는 태도를 보이니 이런 풍토에서 언론 취재가 쉬울 수 있나.
모든 사람이 다 언제나 선일 수 없듯 모든 기사가 100% 정확하고 완벽한 것도 아닐진데 취재기자도 주의는 기울이지만 시시때때로 오보에 노출돼 있는 게 사실이다.
사명이라는 말, 즉 맡겨진 임무라는 뜻의 이 말이 그저 수행한다는 뜻이 아니라 목숨걸고 임해야 하는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각오가 돼버렸다.
수없이 강조하는 말이지만 언론의 본질은 ‘견제와 비판’이다. 권력의 남용부터 횡포, 야만적 독선과 맞서 싸우는 것이 언론의 참 기능임을 익히 알고 새기며 일터로 나가고 있다. 언론다우려면 항상 권력과 긴장관계를 유지하고 비판기능을 잃지 않는 것이 당연하다.
이제 우리는 보다 많은 정보를 얻기 위해 언론사간 취재경쟁은 물론이고 뉴미디어 매체와 차별성을 만들고 취재원의 비협조도 극복하여 답을 찾고 독자를 우리 편으로 만들 숙제도 함께 안고 있다. 무한경쟁이다. 그런 것을 통해 한 단계 성숙하라니 자괴감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렇지만 내부의 잘못된 관행과 스스로 권력이 된, 뿌리 깊은 행태를 찾아내 반성하여 비판을 받고 독자가 드는 회초리라면 피할 생각도 없다. 생존을 위협하는 위기 앞에 기자의 삶을 담보하는 게 무엇인가, 언론인의 책무가 무언지 분명히 알고 그것에 충실히 역할을 다 하는 것만이 우리의 미래를 새롭게 하는 길이라 확신한다.
지금 언론사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유료화 또는 디지털 후원제를 시작하고 있다. 그것 또한 쉬운 일이 아닐테지만 호의적이지 않은 환경에서 스스로 부과한 책무라면 책무고, 이 바닥에서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이라 평가한다. 힘을 보태 달라는 호소인 동시에 부족했으니 더욱 분발하겠다는 약속일 수도 있다.
언론인이 목에 힘주던 시대는 다 옛 이야기고, 이제부터는 낮은 자세로 겸손하게 독자들에게 다가가는 것, 잘못했을 때 주저하지 않고 잔머리 굴리지 않으며 바로 사과와 인정하는 것, 복잡한 문제가 생길 때는 저널리즘의 본질이 무언지 기본부터 생각하는 것, 더디 가도 정확히 보도하는 것만이 신뢰를 얻는 지름길이라는 것만 떠올리면 된다.
그렇다고 당장에 무슨 큰 변화를 기대하기 어렵지만 꾸준히 시나브로 노력할 것이니 관심을 가지고 지켜봐 주시길 당부 드린다. 착한 콘텐츠가 착한 사람들을 불러 모으고, 다시 그 독자들이 착한 기운을 보내 더 착한 콘텐츠를 생산하도록 북돋우고 힘 주는 착한 구조야말로 우리가 꿈꾸는 좋은 언론의 미래다.
예나 지금이나 바른 언론이 살아 있는 사회가 건강한 사회를 만든다. 열악한 환경을 묵묵히 견디고 가다보면 어느 순간 착한 많은 영천사람들이 우리에게 손 내밀 거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