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남창의지 해제(解題) ⑥2) 일본그렇게 나라는 영원히 내 나라려니 하며 권력다툼에만 눈 먼 시절에 일본은 세계열강이 되려는 용트림을 하고 있었다. 소위 메이지 유신이 그것이다. 메이지 유신의 과정을 우리가 일일이 알 필요는 없다 하더라도 타산지석의 입장에서라도 네이버 지식백과[네이버 지식백과] 제국주의와 식민지 전쟁 - 산업혁명 이후 식민지 쟁탈전(1871년 ~ 1914년) (세계전쟁사 다이제스트 100, 2010. 7. 16. 정토웅)의 자료를 통해 대강의 흐름을 살펴본다. 9세기 중반에 접어들어 일본의 개국이 현실적인 문제로 부각되면서 미국은 동인도 함대의 매튜 페리 제독을 일본에 보내 개국을 요구했다. 1854년 3월 31일 일본의 막부 전권대신 하야시 후쿠사이와 미 해군의 매튜 C. 페리 사이에 일본이 서양세력과 맺은 최초의 근대적 조약인 미일화친조약(米日和親条約:가나가와 조약)이 체결되었다. 조약은 몇몇 구역 개항을 포함하였는데 미국 선박 안전을 보장하라는 페리 함대에 굴복한 일본이 맺은 조약이었으므로불평등 조약일 수밖에 없었지만, 일본이 200년간 유지했던 쇄국의 문을 열게 된 계기가 되었다.   페리의 내항으로 구체화된 자본주의 열강에 의한 외압은 정통적·비정치적인 덴노를 정치화시켰으며, 우여곡절 끝에 집권한 신정부의 지도자들은 내정문제와 서구 열강의 침략 위협에 자극을 받아 ‘부국강병’(富國强兵)이라는 표어 아래 서구 열강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민족국가를 만들고자 했다. 이들의 제1의 목표는 구 봉건체제를 해체하는 것이었다. 이 목표는 1871년 폐번치현(廢藩置縣 : 종래의 번[藩]을 폐지하고 중앙정부가 관료를 파견해 통치하는 현을 설치한 것)에 의해 대부분 달성되었으며 아울러 봉건계급의 특권들도 철폐되었다. 같은 해 정부군이 구성되었고 1873년에는 징병제도를 실시했다.   또한 통일적인 조세·화폐 정책을 실시했으며 1873년 지조개정(地租改正)으로 주요수입원을 확보했다. 그리고 여러 가지 혁명적 조치들에 대한 반발로 반란전쟁이 일어나고 농업정책에 불만을 품었던 농민들의 반란도 있었으며, 동시에 서구 자유주의 사조의 도입으로 고양된 자유민권운동은 점차 헌정(憲政)의 창출과 민선의회를 통한 폭넓은 정치참여를 요구했다. 1885년 내각제도를 창설했으며 1886년부터 헌법제정작업을 시작했다. 결국 1889년 덴노가 국민에게 하사하는 형식으로 헌법이 공포되었고 제한선거에 의해 양원제 의회가 설립되었으며, 1890년 첫 의회가 소집되었다. 메이지 시대에는 정치적 변혁과 더불어 경제적·사회적 변화도 이루어졌다. 아직 일본 경제는 농업 의존적이었지만 정부는 ‘산업화’라는 목표 아래 전략산업과 교통·통신 산업 등을 발전시켰다.   1872년 최초로 철도가 개설된 이래 1890년까지 2,250㎞의 철도가 부설되었으며 전국 주요도시에 전신선이 가설되었다. 정부의 재정지원과 1882년 도입된 유럽식 은행제도에 힘입어 사기업(私企業)의 활동도 활발하게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한편 이러한 근대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서구의 과학기술이 필요했는데, 이에 따라 ‘문명개화’의 기치 아래 사상에서 복식·건축에 이르기까지 서구 문화가 널리 장려되었다. 그러나 1880년대에는 일본의 전통적 가치가 재평가되면서 대대적인 서구화정책은 다소 주춤해졌다. 이러한 양상은 근대적 교육제도의 발전에서 엿볼 수 있으며 서구의 이론과 양식에 영향을 받기는 했지만 무사들의 충성심과 사회적 조화라는 전통적 가치도 중요시되었다. 이와 같은 경향은 예술과 문학에서도 두드러져 초기에는 서구 양식들이 모방되었지만 점차 서구 양식과 일본적 취향을조화롭게 융합해 나가기 시작했다. 메이지 유신의 목표는 20세기 초가 되면서 대부분 달성되어 일본은 근대 산업국가로 가는 길을 순조롭게 걸어 나갈 수 있었다.   서구 열강에 치외 법권을 인정했던 종래의 불평등조약들은 1894년에 개정되었다. 영·일동맹(1902) 및 청일전쟁(1894~95)과 러일전쟁(1904~05)을 통해 주요열강으로 세계무대에 등장했다. 이러한 변혁의 시대는 1912년 메이지 덴노의 죽음으로 일단락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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