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일에 부닥쳤을 때 상황에 따라 적절하게 잘 대처해 일처리를 깔끔하게 하는 것을 ‘임기응변’이라 말한다. 무슨 일을 하던 간에 사전에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지만 그렇지 못했을 때 쓰는 것이 임기응변인 셈이다. 세상 살아감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게 성실함이지만 때론 재치와 창의성도 매우 필요한 시대다. 같은 조건에도 상사가 시키는 일만 해 놓고 다음 지시를 기다리는 사람 말고, 주어진 일에 창의성까지 발휘하는 사람이 필요한 시대란 말이다.한 가지 예를 들면 이렇다. 아인슈타인은 상대성 이론으로 널리 알려진 과학자다. 그에게 엄청난 강연 요청으로 쉴 틈 없이 바쁘게 되자 어느 날 차를 타고 가다 조는 것이다. 그 모습을 본 운전기사가 “박사님이 너무나 바쁘셔서 피로하신 것 같은데 오늘 제가 박사님 대신강의를 하면 어떻겠습니까? 제가박사님의 상대성 이론을 서른 번쯤 들어서 거의 외우다시피합니다”라고 말했다. 운전사는 공교롭게도 아인슈타인과 너무나 닮았고, 옷을 바꿔 입은 운전사가 강연을 했고, 말, 표정 등이 진짜 아인슈타인과 비슷할 정도인 운전사의 강연은 훌륭했다. 그런데 강의가 끝날 무렵 문제가 생겼다. 한 교수가 이론에 관한질문을 했다. 단상 아래서 운전사복장을 하고 이 장면을 지켜보고 있던 아인슈타인의 가슴이 ‘쿵’ 내려앉으려는 순간, 운전사는 조금도당황하지 않고 빙그레 웃으며 “그 정도의 질문에는 제 운전사도 답할 수 있습니다”라며 “어이 여보게, 올라와서 잘 설명해 드리게나.”행동이 그렇듯 말에도 임기응변이 필요한데 그것을 우리는 ‘애드리브’라고 부른다. 애드리브(ad lib)는 ‘하고 싶은 대로’라는 의미의 라틴어에서 나온 말이다. 원래 연극이나 방송에서 출연자가 사전에 약속되지 않은 대사를 즉흥적으로 하는 것을 뜻하지만 요즈음은 대화 도중에 즉흥적으로 나온 재치 있는 말을 모두 애드리브라고 쓴다. 애드리브는 위기에서 모든 지혜를 동원해 빠른 판단으로 대처하는 임기응변과도 비슷하다. 임기응변이 가능하려면 그만한 힘과 능력을 늘 갖추고 있어야 하듯 애드리브도 그냥은 나오지 않는다. 그래서 지금은 어떤 상황에서든 말을 청산유수같이 잘하는 사람을 보고 ‘애드리브가 강하다’라고 말한다.임기응변이나 애드리브는 일단상황을 모면하려는 임시방편이나 둘러대기, 꼼수 또는 은근슬쩍 그 순간만 넘기려는 변명과는 차원이 다르다. 그런 즉흥적인 대처가 나오기까지 그 사람이 갈고 닦은 실력과 거기에 어우러진 창의성이 결국 그런 대처 상황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사람의 실력 차이란 평상시에는 숨겨져 있어 잘 볼 수가 없다. 그러나 위기에 닥치면 다르다. 마치 갑작스런 태풍이나 장마로 농작물들에 위기를 맞았을 때 농사 오래지은 농부의 실력이 드러나는 것처럼 말이다.요즘 여·야 대권주자들의 토론을 두고 ‘애드리브’가 자주 언론에 오르내리고 있다. 어떤 후보는 막힘없이 말은 잘 하는데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는다거나 어떤 후보는 평소밑천이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다며 공격을 당한다. 또 일부는 후보의 애드리브가 곧 후보의 진짜 실력이 될 수 없다는 말도 한다. 그러나 정치 지도자라면 달라진다. 한사람의 리더십에 공동체의 명운이 달렸기 때문이다. 위기대응은물론 새로운 기회를 만들어 내야하는 일이 리더의 오랜 덕목이다. 따라서 사람들은 오히려 애드리브를 들으며 거기에 실력이 담겨 있다고 믿는다. 자료보고 읽는 연설은 한참을 들어도 남는 게 없지만 애드리브는 또렷이 오래 남는다. 어쩌면 요즘처럼 모든 것이 급변하는 시대에는 애드리브가 긴 연설보다 몇 배 더 큰 힘을 발휘할 지도 모른다.결국 임기응변과 애드리브는 실력이다. 예상에 없던 질문에 맞닥뜨렸을 때 즉흥적으로 하는 애드리브에서 그 사람의 포장하지 않은 평소 내공의 깊이와 무게감이 보인다.우리가 애드리브 능력에 더 주목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