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조정은 회사의 경영자만 하는 게 아니다. 각자의 삶 경영자 개인도 하는 것이다.
궁고(窮考)하면 회사 구조조정보다 삶 구조조정이 훨씬 중차대한 문제라는 걸알 수 있다. 개인의 삶이 주변인들로 인해 시원찮아지면 조직의 일상에도 깊은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돈, 술, 사람(남자에겐 여자, 여자에겐 남자), 보증 문제로 삶이 송두리째 흔들린 뒤에야 뼈저리게 후회하는 건 ‘아, 그치와 일찌감치 관계를 청산할 걸’하는 주변인 문제다.
확대경처럼 너무나도 선명하게 훅 다가온다. 내 취재경험에 의하면, 남자는 대개 50초중반이 되면 두 부류로 갈린다.
양육에, 사회생활에 바빠서 못 챙기고 못 만났던 초중고대학 친구와 어울리기 시작하는 부류가 있고, 반대로 은퇴 이후를 생각하며 주변인 다이어트에 돌입하는 부류가 있다.
남자(가장)는 대개 아이들이 초등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 친구와 주변인과의 만남에 소극적이게 되고, 아이가 대학에 들어가고 자신의 퇴직이 5년 안쪽으로 다가오면 변변찮은 지갑도더 걸어 잠그게 된다.
이때가 되면 “남자가 여자보다 더 쩨쩨하다”는 소리도 곧잘 듣게 된다. 이른바 부부간 부의 역전(reversal of wealth)이 시작되는 것이다.
이 역전은 벌어다 준 돈으로, 보태준 돈으로 가계를 꾸리는 아내와 평생을 현금지급기(ATM) 노릇이나 하며 자신의 양발구멍보다 돈구멍 날까 노심초사하는 남편 간 ‘씀씀이 초격차’가 벌어지면서 발생하는 현상이다.
하나 지혜로운 50대는 위 두 길을 지양한다. 제3의 길을 지향한다. 40~50대 충만했던 에너지를 밖으로 그만 뿜고 그 에너지를 자기 내면으로 끌어 모으는데 집중한다. 노년을 온전히 자기만을 위한 시간으로 채우는 준비를 하는 것 이다.
어차피 사람은 혼자 나서 혼자 간다. 100세 시대 운운하지만 한세대를 뜻하는 30년, 서른살에만 도달해도 이때부터는 먼저 난 자나 뒤에 난 자나 누가 먼저 하직할지 모르는 게 인간사다.
이 이치를 가슴으로 절절하게 알게 되는 나이가 50대다. 하물며 ‘귀가 순해져 웬만한 이야기는 수긍이 된다’는 예순에 이르면 먹고 산다고 생고생한 놀랍고도 대견한 자신의육신과 정신을 잘 돌봐야 한다는 쪽에 천착하는 건 자연의 순리에 가깝게 된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우리나라는 노년이 될수록 순 먹고놀자 판이다. 마을회관 가서 놀고, 등산가서 놀고, 여행가서 또 놀뿐이다. 술과 화투가 빠지는 때가 거의 없다.
유종지미를 해야 할 시기에 끝까지 몸과 정신을 갉아먹는데 허송세월이다. 이 지점이 지혜로운 노인과 평범한 노인을 가르는 결정적 차이다.
어제 나는 [글밥]손님 중 한 명을 영구퇴출 시켰다. 내 휴대전화에서도 영원히 지워버렸다. 사전경고를 했음에도 도를 넘었기 때문이다. 쓰리아웃에 걸렸다. 딱 두 번까지만 봐 줬다.
대구 바닥에서 방귀 좀 뀐 인생을 살아온 이치는 한마디로 무식하다. 할 말과 하지 말아야 할 말의 분별력이 제로에 가깝다.
자기 입으로 뱉은 말이 무슨 뜻인지 가리지도 못한다. 내일모레 예순인 여자가 시집을 못가 그런가 철딱서니가 없어도 이렇게 나 없을 수가 없다.
해불양수(海不讓水) 자세로 저 끄트머리에라도 놔둘까 싶었는데 이쯤 되면 내 인생에 걸림돌일 것 같아 내쳐버렸다.
내 상황과 반대 경우가 펫북에서 펼쳐졌다. 식당에 가면 식탁매트로‘밥상머리뉴스’라는 페이퍼가 깔린 것을 본 적 있을 것이다.
그 밥상머리뉴스 발행인 김병조(푸드 저널리스트) 씨가 남대문시장을 찾아 상인대표들과 꼬리곰탕을 먹은 윤석열 당선인 사진과 함께 란 짤막한 글을 올렸다가 펫북 소총수들의 무차별공격을 받았다.
급기야 이 장면이 조선일보 등 다수 언론의 먹잇감에 오르기도 했다. 뉴스가 된 것이다. 그가 쓴 를 보자.“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어제 남대문시장에 가서 시장 상인대표들과 꼬리곰탕을 먹었다. 잘못했다. 생각이 짧았다. 지금 자영업자들 중에 꼬리곰탕 먹을 수 있는 사람 있을까?순댓국도 먹기 힘들다. 꼬리곰탕을 먹으며 순댓국도 먹기 힘든 자영업자를 걱정한다? 눈물젖은 빵을 먹어보지 않은 사람은 배고픈 사람의 설움을 모른다. 윤석열의 한계다.”
‘지금 자영업자들 중에 꼬리곰탕 먹을 수있는 사람 있을까?’ ‘순댓국도 먹기 힘든 자영업자’란 표현이 상식의 일탈이요, 이성의 마비요, 감성의 오버라 걸리긴 하지만 개인의 의견이니 뭐라 하겠나싶다.
펫북 소총수들은 달랐다. 벌떼처럼 달려들었다. 꿀벌이 바지런히 화분을 물어 나르듯 펫북 소총수들은 열심히를 물어 날랐다. 범인에 가까운 김병조 씨 담벼락엔 순식간에 500개에 가까운 댓글이 달렸다.
내가 강제 퇴출시킨 철딱서니 그치가 생각났다. 나도 내 생각한 바를 썼고, 그치도 그 생각한 바를 드러내 보인 것은 맞을 것이다.
김병조 씨도 그의 생각한 바를 썼고, 펫북 소총수들도 각자의 생각한 바를 썼을 것이다. 헌데 이‘생각’이란 것의 질과 결은 전혀 다른 차원의문제다.
글의 맥락을 제대로 이해하지도 못한 채 제 성질대로 언어폭력을 가하면서도 ‘뭐가문제냐’고 핏대를 세우는 건 적반하장 격이다. 미쳐도 이렇게 미칠 순 없다.
단단히 미쳤다.
김병조 씨의 경우 ‘한번맞기 시작하면 피할 길 없다’는 여론 뭇 매수에 걸렸다. 피하려할수록 더 아플 뿐이다. 시간만이 답이다. 나의 경우 구조조정이 답이다. 해불양수도 좋지만 내 정신건강이 더 중요하다.
낮은 지력 갖고 뚫린 입으로 나불대면 안 된다. 세상엔 수(나이)를 능가한 고수가 쌔고 쌨다. 그전에 인간다운 인간미(人間美)를 먼저 염두에 두는게 기본이다. 그리고 경청해야 한다.
경청은 세상살이 첫 번째 덕목이다. 경청이 모자라 면제 못난 꼬라지(성질)만 만천하에 드러낸다. 그러면 결국 퇴출된다. /심보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