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호에 이어) 불교에서는 친구를 도반이라고 하던데 무슨 뜻입니까? 불교에서 도의 길을 함께하는 이를 도반이라고 합니다. 부처님의 말씀을 가슴에 새기고 살아가는데 있어서 함께 그 길을 갈 수 있는 친구가 있다는 것은 매우 귀한 인연이 아닐 수 없습니다. 사회생활도 그렇고, 인생도 그렇고, 도의 길도 그렇고 좋은 친구가 있다는 것은 큰 재산이 아닐 수 없습니다. 신라시대에 노힐부득과 달달박박이라는 아주 우정이 깊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이 두 사람은 지금의 창원지방에 있는 백월산 아래 자리한 마을에서 함께 자란 친구사이이자 청년 선비였습니다. 풍채가 좋고 골격이 범상치 않은 두 청년은 결혼을 해서 처자를 둔 처지였지만 속세를 초월한 높은 이상을 지닌 좋은 친구였습니다. 이들이 20세가 되는 어느 가을날, 두 사람은 백월산에 올라가 사색에 잠겼습니다. 이때 부득이 먼저 말을 꺼냈습니다. “여보게, 우리가 이렇게 평범한 생활을 만족하며 평생을 지낼 수는 없지 않은가.” “자네도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군. 나도 동감일세.” 그런 후 두 청년은 그날 함께 출가할결심을 하였고 곧 마을 밖 절에 들어가서 머리를 깎고 스님이 되었습니다. 그후 부득과 박박은 각각 다른 사찰에 터를 잡은 뒤 처자를 데리고 와서 밭을 일구며 정신수양을 했습니다. 양쪽 집이 서로 왕래하며 오손도손 재미있게 지냈으나 두 사람은 속세를 아예 떠나고 싶은 마음을 잠시도 버리지 않았습니다. “아내와 자식들과 함께 지내며 의식이 풍족하니 좋기는 하지만, 연화장(蓮花藏) 세계에서 여러 부처가 즐기는 것만 못하네. 더구나 불도를 닦아 참된 것을 얻기 위해 머리를 깎았으니 마땅히 몸에 얽매인 것을 벗어버리고 무상(無上)의 도를 이루어야 할 것일세.” 추수를 끝낸 어느날 밤, 두 사람은 장치 깊은 산골짜기에 숨어 공부할 것을 다짐했습니다. 그날밤 두 사람은 상서로운 꿈을 꾸었습니다. 다음날 함께 꿈 이야기를 나누더니 그 꿈이 필히 도를 이루어야 한다는 꿈임을 믿고 두 사람은 깊은 산으로 들어가 각자 방을 마련해 박박은 ‘미타불’을 염송하고 부득은 ‘미륵불’을 염송하며 기도에 임했습니다. 그렇게 3년이 지난 경덕왕 8년, 4월 8일이었습니다. 해가 뉘엿뉘엿 서산에 걸릴 무렵이었는데 20세 안팎의 아름다운 한 낭자가 난초향기를 풍기면서 달달박박이 살고 있는 방으로 찾아들었습니다. 그녀는 말없이 박박에게 절을 올린 후 하룻밤만 묵어가게 해 달라는 내용의 글을 올렸습니다. “절은 깨끗해야 하므로 그대가 머물 곳이 아니오. 지체하지 마시고 다른 곳으로 가보시오.” 낭자는 할 수 없이 다시 노힐부득이 살고 있는 방으로 갔습니다. 거기서도 낭자는 박박에게 한 것처럼 절을 한 후 하룻밤 묵어가게 해달라는 내용의 글을 올렸습니다. 부득은 글을 본 후, “이곳은 여자와 함께 있을 곳은 아니나, 이 깊은 산골짜기에서 날이 어두웠으니 어찌 모른척 할 수 있겠습니까? 어서 안으로 들어오시지요.”하며 낭자를 안으로 들어오게 했습니다. 밤이 깊어지자 부득은 자세를 바르게 하고 희미한 등불이 비치는 벽을 마주한 채 조용히 염불삼매에 들었습니다. 새벽녘이 되자 낭자는 부득을 불렀습니다. “스님, 제가 산고(産苦)가 있으니 스님께서 짚자리를 준비해 주십시오.” 부득이 불쌍히 여겨 자리를 마련해 준 뒤 등불을 비추니 낭자는 이미 해산을 끝내고 다시 목욕하기를 청했습니다. 부득은 부끄러움과 두려움이 있었으나 어쩔 수 없이 물을 덥히고 낭자를 통안에 앉혀 목욕을 시켰습니다. 그때였습니다. 통 속에서 향기가 풍기기 시작하더니 목욕물은 점점 금물로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아니, 이럴수가!” 부득이 놀라 크게 소리치니 낭자가 조용히 미소를 지으며 말했습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