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7)삭도로 밀었던 적문의 머리는 어느새 자라 거뭇거뭇 머리털을 형성하기 시작했다. 속세를 떠나왔던 몸과 마음을 다시 의탁하여 세속의 사람들과 어우렁더우렁 섞여 자신을 지켜내고 싶었다. 이제 그들 속에서 살아가는 어쩌면 툭 불거져 나온 파계승일 뿐이었다. 그런 손가락질은 주눅 들게 했지만 이곳에서 조차 내쳐친다면 결코 갈 곳 없는 떠돌이 신세가 되는 것은 분명했다. 떠돈 수도승 시절이 행복했는지 묻지 않을 수 없었다. 불과 얼마 되지 않았지만 아득하고 먹먹하여 기억의 고리를 연결시키진 못했다. 그만큼 두려웠고 그 기억에 들어서는 조차 정말 싫었다. 어차피 돌아가지 않을 한 시절로 남겨둔 채 밀봉하고 싶었다. 분명 어느 때는 밀봉한 마개를 열어볼 것이다. 깨달음을 구하는 진리의 길에 들어선 구도자의 확신으로 재촉했던 세월아. 이제 낙엽 속에 묻혀 표표한 걸음도 접고 쥐죽은 듯 살아가는 것이 조금은 뉘우침의 자세가 될지 적문도 모호해졌다. 그럴수록 옥주의 몸을 끊임없이 탐색하여 도끼자루 썩는지 알 수 없는 세월을 무심하게 넘기고 있었다. “낭군님, 마을에 남사당패가 들어와서 분위기를 띄운다고 하니 한번 다녀오세요.”“내가 마을사람들 속에 섞일 수 있는 자격이 가당치나 할까요.”“제가 동행하면 쉽게 알아보니 혼자 다녀오시면 돼요. 이제 스님의 빡빡머리가 아닌, 밤송이머리나 떠꺼머리총각 행세를 하며 마실 나온 것처럼 구경꺼리로 소일하다가 하루해를 넘기세요. 농악이나 대접 돌리기나 땅재주보다 줄타기는 꼭 보세요. 우리네 인생이 스며든 신명가락이 녹아들어 애간장이 타는 재미가 있어요.”등 떠미는 옥주의 성화에 못 이겨 대문 밖으로 나왔다. 담벼락을 타고 소담스럽게 나있는 길가에 파꽃이 그냥 솟구쳐 올라와있었다. 우직스럽게 피어있는 파꽃에서 세월의 흐름을 막아설 수 없는 삼라만상의 이치가 얹혀 있었다. 저리도록 쪼그리고 앉아 파꽃을 손그물에 담았다. 그 향기는 매콤하고 아렸다. 대궁이 바람에 출렁거렸다. 작거나 크거나 파꽃은 하찮지 않게 서로의 어깨를 맞대고 하늘을 상대하고 있었다. 적문의 눈에 감히 그렇게 보였다. 단번에 파꽃은 적문의 마음을 훔쳐갔다. 마을은 남사당패 농악이 사람들을 불러 모으고 있었다. 옹기종기 모여 앉은 사람들을 비집고 들어가 엉덩이를 내려놓았다. 아무도 적문을 의외로 보지 않았다. 그에 용기를 얻어 말을 걸었다. “줄타기 순서는 지나가지 않았나요?” “지금하고 있는 땅재주가 끝나면 시작할 것 같네요. 아, 저기 어릿광대도 보이고 줄광대도 몸을 풀고 있네요. 어디에서 왔습니까?”“인근 마을에서 남사당패가 왔다 길래 한걸음에 달려왔지 뭡니까.” 제법 세속에서 이골이 난 어투로 말을 받아치는 변화에 스스로 놀란 표정을 지었다. 이리저리 구르던 땅재주 꾼이 들어가자 장구, 피리, 해금으로 흥을 돋우는 육잡이들이 등장했다. 줄타기는 익살로 시작했다. 타락한 양반을 꼬집어며 웃음보따리를 풀어놓았다. 바보짓이나 꼽추짓으로 더욱 휘몰아치더니 줄광대가 줄 위에서 재주를 부렸다. 줄 위에 걸터앉아 좌중을 둘러보고 있을 때 어릿광대의 재담은 신명을 더하고 있었다. 이번에는 줄광대가 줄 위에 드러누웠다. 곳곳에서 탄성이 쏟아졌다. 한편으로 늘어선 육잡이들의 악기가 최대한 기세등등하게 좌중을 휘어잡고 있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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