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허면 우리나라에 고위공직자 검증시스템이 도입된 것은 언제일까. 2003년 2월 노무현 정부가 출범한 직후였다. 고위공직자 후보자에 대한 언론 검증은 언제 시작됐을까. YS 때 처음 시작됐다.그러니까 “노태우 정권까지는 국회의 인사청문회는 물론이고, 언론 검증도 없던 시대였다.” 그전까지 대통령 인사는 주먹구구 식 인사였다.이른바 대통령 본인이, ‘비선 실세’가 떡 주무르듯 주무른 ‘코드인사’가 보편적이었다.‘코드인사’가 어떨 때는 ‘소신인사’가 되기도 하고 ‘밀실인사’가 되기도 하고 ‘정실인사’가 되기도 하고 ‘동창회 인사’가 되기도 했다. 이는 2003년 이후 지금까지도 바뀌지 않는 나쁜 관행이다.노태우 정부의 ‘월계수’ YS 때 ‘민주산악회’ DJ 때 ‘연청’ 노무현 때 ‘노사모’ MB 때 ‘선진국민연대’는 정권창출의 공신그룹으로 그 멤버들이 대거 요직에 등용됐다. 모두 사조직이었다.그런가 하면 노태우 땐 경북고, YS 땐 경남고, DJ 땐 목포상고, MB 땐 동지상고가 두각을 나타내면서 ‘동창회 정권’이란 말이 생겨났다.하나회를 척결해 한때 국민 지지율 90%까지 넘었던 YS. 그때는 PK, 경남고 동문 군(軍) 출신이 몰락한 하나회 멤버의 자리를 메웠는데, 사조직 ‘민주산악회’와 함께 야당으로 오랜 세월 동고동락했던 상도동계가 임기 5년 내내 전성기를 누렸다.군(軍)과 관련해서는 기자 특유의 감칠맛 나는 일화를 전한다.“군화는 등산화에 밀려나고, 등산화는 운동화에 밀려났다.”군화는 말 그대로 군사정부를, 등산화는 등산광이었던 YS의 문민정부를, 운동화는 DJ와 노무현 때 대거 진출한 학생운동권 출신을 각각 대변한다.‘기자’ 송국건의 펜끝은 군(軍) 뒤를 겨눈다. “하지만 하나회를 비운 자리를 김현철이 비집고 들어가 군의 주요 인사에 개입한 사실이 드러났다.”1)YS의 치적을 이야기할 때 늘 ‘하나회 척결’을 입에 올리는데, ‘대통령의 사람 쓰기’ 관점에서 여러 사례를 놓고 보면 이것이 과연 치적인가 싶은 생각도 든다. “YS는 ‘밀실 인사’의 고수”였다고 송국건은 평가했다.2)4.이쯤 되면 대통령이 임명할 수 있는 사람 수가 궁금해진다. 대통령은 과연 몇 명을 자기 사람으로 채울 수 있을까.직간접으로 채울 수 있는 사람은 1만 8000명 이상이다.대통령이 직접 임명하는 국무총리 이하 정부 부처 장관과 차관급은 140명 이상이고, 직접 임명하는 공공기관 장·임원·감사는 200명 이상이다.장관이 임명하되 대통령 영향이 미치는 사람은 정부 부처 국·실장급 등 350명 이상이다.대통령 의중이 반영되는 고위공무원·부처 산하기관 임원 등만 1만 8000명 이상이다.대통령이 직접 임명하는 340명 이상만 노다지가 아니다. 노다지는 따로 있다.한국마사회 같은 국영기업체 회장, 부회장, 총무이사 등은 대표적인 요직이다. YS 땐 ‘등산화(민주산악회 출신)’가 모두 장악했다. 노무현 땐 ‘청맥회’ 라는 모임이 공기업 진출의 ‘파이프라인’이었다.공기업 낙하산 인사 논란은 문재인 정부도 빗겨가지 못했다. 문재인 씨가 물러나기 직전 윤석열 당선인 측과 신경전을 벌이면서까지 끝끝내 단행한 공공기관장, 그 공공기관장 공모제를 도입한 건 1999년 DJ 때였다.여기까지만 알려줬다면 밋밋했을 것이다. 송국건의 펜끝은 그 이면을 향한다.“하지만 공모제는 형식이었고, 대통령 측근을 앉히는 건 과거와 마찬가지였다. 공모제를 통해 명분을 확보하고 잇속은 잇속대로 챙긴 셈이다.”(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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