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섯 살 난 우리 라온이는 요즘 아 파트 놀이터에서 쇠로 된 손잡이를 두 손으로 부여잡고 이쪽에서 저쪽까 지 2m남짓한 거리를 발로 퉁겨 몸을 옮기는 놀이에 온 정성을 쏟고 있다.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이쪽에서 저 쪽으로, 저쪽에서 이쪽으로 무사히 도착하면 성취감에 손바닥 아픈 것 도, 더운 것도 잊어버리는 것 같다. 한 2주 전까지는 한쪽 수평이 약간 낮은 곳에서 시도할 때는 더러 실패 도 했는데, 다일간(?)의 연마 끝에 양 쪽 옮기기 모두 너끈해졌다.라온이는 ‘도르래로 몸 옮기기’에 성공할 때마다 아빠와 하이파이브를 한다. 그럼 아빠는 맞장구를 쳐준다. “오~ 성공! 라온이 최고~! 우리 라온이 정말 대단하다!” 나는 라온이를 지켜보면서 ‘독서 근육’과 ‘쓰 기 근육’을 생각한다. [글밥] 짓기를 잠시 멈추 고 독서에 매달린 지 두 달째. 자기계발서 류는 반나절이면 읽어내지만, 같은 상고 사 책은 10일 걸려 읽어내도 이해가 난망해 읽 지 않은 것과 같은 상태다. 설기 때문이다. 을 번역해 유명세를 떨친 서울대 최재 천 교수는 “전문가가 되는 방법은 쉽다”고 했다. 비결은 “그 분야 책을 5권만 읽으면 된다”고 했 다. 물론 전제가 있다. 그냥 읽으면 안 되고 “죽 자사자(열과 성을 다해) 읽어야” 한다. 거의 매일 [글밥]을 지은 지난 3년 동안 [손 님]들께 가장 많이 들은 이야기는 “어떻게 매일 그렇게 글을 쓸 수 있느냐”는 감탄조의 말이었 다. 비결은 ‘쓰기 근육’에 있다. 많은 분들이 느끼 기에 2019년의 [글밥]과 2020년의 [글밥]은 격 (格)이 현격하게 달라졌다고 한다. 운동에 매달리면 운동한 만큼 근육이 생기듯, 쓰 기에 매달리면 쓰기에 매달리는 만큼 근육이 늘어 난다. 하루아침에 배부를 일은 만사 없는 것이다. 힘이 들고, 성가시고, 이런저런 핑계로 쓰지 않 으면 글 근육은 금세 빠진다. 운동도 20년간 꾸 준히 했어도 멈춰버리는 순간 일주일 만에 체력 이 뚝 떨어진다고 하지 않는가. ‘골골 100년이요, 건강 자랑하다 한방에 훅 간다’는 말의 함의는 이런 것이겠다. 독서도 근육이 붙어야 신명이 인다. 신명이 일 면 신나게 읽을 수 있다. 신나게 읽으면 머리가 명쾌해지고 마음도 넉넉해진다. 명문(明文)을 만 나면 시시때때로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앉아 있 는 그 자리가 지상낙원임을 알아차리게 된다. 글을 쓰기 시작하고 쓰기 근육이 붙으면 작심 (作心)이 밥 먹듯이 샘솟듯이, 글을 읽기 시작하 고 읽기 근육이 붙으면 독심(讀心)이 일기 시작한 다. 그러면 1평짜리 방안에 앉았어도 온 우주를 차지하고 앉은 양 세상 부러울 것이 없게 된다. 운동도 본질은 이와 마찬가지 일 것이다. 헌데 ‘골골 100년이요, 건강 자랑하다 한방에 훅 간다’ 는 말의 함의는 또 있다. ‘골골 100년을 살 것이 냐’ ‘근육을 갖고 살다 힘에 부쳐 그만하다 죽을 것이냐’의 문제가 놓여 있는 것이다. 옛 선인들의 장생법에는 세 가지가 있었다. 첫 째가 안빈낙도요, 둘째가 소식이요, 셋째가 놀지 도 않고 무리하게 일하지도 않는 것이다. 장수비 결의 첫째, 둘째는 직관적인데 반해 셋째가 아리 송하다. 정신 끈을 너무 조이지도 말고 풀어놓지 도 말고 꾸준히 뭘 하라는 뜻이겠다. 맞다. ‘똑똑해서 잘 하는 놈은 저 좋 아하는 놈한테 못 이기고, 저 좋아하 는 놈은 묵묵히 꾸준히 하는 놈한테 는 못 이긴다’는 말은 이런 데서 싹튼 것이겠다. 어려서 나는 “공부도 다 때가 있다” 는 말을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수 차 들어왔다. 어려서는 어른들 하시는 그 말씀을 잘 알아듣지 못했다. 해서 공부를 안 했고 그 결과 공부를 잘 하 지 못했다. 공부를 못하면 “밥 빌어먹 기도 어렵다”는 말도 누차 들었지만, 요행히 밥값은 내내 하고 살았다. 인생이 재미있는 것은 고속도로 타는 것과 같 기 때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고속도로에서 실 수로 인터체인지를 지나치면 얼마 안 돼 또 한 번 빠져나갈 길을 만나게 된다. 대전에서 김천을 가다 추풍령IC를 지나치면 김천IC가 지척인 것 이다. 이처럼 인생에도 한 번의 실수나 실패 뒤 에 만회할 기회가 반드시 찾아오기 마련이다. 해서 항상심(恒常心)을 갖고 꾸준히 하는 게 삶의 핵심이라 능히 할 만하다. 나로서는 무척 다행인 것이 독서와 글쓰기는 10~30대 하는 것으로는 태부족하다는 것이다. 현대인이 처한 환경을 감안하면 독서와 글쓰기 는 40대부터 본격화해 숨이 다하는 그날까지 하 는 게 적절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마흔줄은 돼야 세상을 좀 안다고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문(文)의 끝은 문자(텍스트) 읽기와 쓰기에 있 지 않다. 콘텍스트(맥락) 읽기가 돼야 한다. 맥락 읽기는 좁게는 텍스트의 전후좌우를 읽는 것이 고, 넓게는 세상 판을 읽어내는 것이다. 그래야 진정 읽을 수 있고, 웅숭깊은 글을 쓸 수가 있다. 그런 이를 일러 문인(文人)이라는 거요, 요즘말 로는 지성인(知性人)이라는 거다. 지성인의 말과 일반인의 말에는 기실 엄청난 차이가 있다. 그걸 모르고 뚫린 입이라고 떠드는 게 태반의 일반인 이다. 말이라고 다 같은 말일 수 없다. 어른이 된 우리들은 실제 얼마나 무감각하게 무기력하게 하루하루를 영위해 가는가. 우리는 우리 라온이 때 이미 세상 이치를 공히 끌어안는 다. 그런데도 그걸 활용하는 법을 모른다. 엉뚱 한데 정신이 팔려서다. 흑이 백을 가린 격이다. 불교에는 교법과 선법이 있다. 교법은 경(經) 읽기를 치중하고 중시한다. 이런 이를 경사(經 師)라 한다. 부처님이 무슨 말씀을 하셨는지 그 뜻을 궁고한다. 하나 빼어난 경사들도 만년에는 선법에 공을 들인다. 모두 들어앉아 좌선을 하는 것이다. 선사(禪師)가 되는 것이다. 누구는 경사를 무시하고 선사가 될 수 있느냐 고 할지 모른다. 그렇지 않다. 경은 유한하지만 선은 무한하다. 이는 무엇을 꾸준히 할 것인가 하는 문제와 부닥친다. 시속대로 물질만 쫓는 것 은 유한하지만, 정신을 쫓는 것은 무한하다. 무 엇을 연마해 스스로 풍요로워질 것인가. 인간은 결국 백만장자라도 도로 라온이 때 품 었던 근기(根氣) 하나에 의지하다 죽을 수밖에 없다. 근기의 요체는 유한한 데 매달리는 게 아 니라 무한한 데 매달리는 것이다. 독서 근육을 키운 자는 어떤 지위 직종을 막론 하고 말년이 풍요롭게 돼 있다. 물질의 블랙홀에 서 빠져나올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은 독서이기 때 문이다. /심보통 2022.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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