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오랜만에 온종일 글을 썼다. 온종일 쓴다는 것은 그닥 좋은 신호는 아니다. 마감시간 에 쫓긴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본의 아니게 추석 전에 밟게 된 ‘코로나 과정’이 크게 한몫했 다.아내-나-누나-어머니 순으 로 한바탕 휩쓸고 갔다. 아내는 반 죽다가 살아났고, 누나 역시 심한 통증으로 힘들어했다.어 머니와 나는 다행히 가볍게 치 렀다. 코로나는 24시간씩 14일간을 잡아먹었다. 속도전이 불가피하 게 됐다.그렇게 어제는 오후 3시쯤 1시간 눈 을 붙인 것, 아내와 아이들이 직장에서 어린 이집에서 돌아왔을 때 잠시 나와 본 것 빼고 는 아침부터 늦은 밤까지 저녁도 거른 채 혼 (魂)을 불살랐다.<산남의진뎐> 1장 ‘첫 번째 그림: 몰락하는 왕조’를 그렇게 매조졌다. 아침에 일어나니 어깨와 손목이 묵직했다. 쉼(,)이 필요하다 싶 었다.올해 집필은 <산남의진뎐>과 함께 <아빠가 아이에게 들려주고 싶은 경북의 이야기 : 정 신편>를 동시에 진행한다. <산남의진뎐>은 10월말, <아빠가…>는 12 월말 탈고를 목표로 하고 있다. 그 와중에 <보통 글밥2>와 <히데타다와 신 문왕 이야기> 교정을 보고 있다.모두 4권의 책을 함께 주무르고 있는 것이다. 직장도 관뒀겠다, 이제 믿는 것이라고는 오 로지 나 자신뿐이다. 책쓰기로 끝장을 볼 작 정이라면, 죽을 동 살 동 읽고 보고 찍고 느끼 고 모으고 쓸 수밖에 없는 것이리라.글에 취해 얼얼한 중에 라온이가 감동바구 니를 한아름 이고 왔다. 추석 전에 엄마와 함 께 아파트 태권도장에 가서 견학을 한 뒤 등 록하고선 처음 다녀왔다. 아파트 현관을 들어 서는데 오른손에 노란도복이 들려있었다.“아빠, 이것 봐라~!” “우와, 태권도복이네. 우리 라온이 이제 태 권소년이 된 거야?” “응. 이거 한번 입어 볼까?” “그래. 입어 보자.” 노란색 태권도복을 입은 라온이 모습은 참 으로 멋있었다. 흰색 띠를 두르니 제법 사내 티가 났다.순간 뭉클함이 가슴 저 밑에서 용 오름처럼 훅 솟구쳤다. 그 마음은 아내도 같 아 보였다. “우와! 라온아, 너 정말 멋지다!” “아빠가 먼저 해봐. 따라 해 볼게.” 엄마는 라온이에게 아빠가 태권도를 배웠 으니 아빠한테 가르쳐달라고 하자고 했다.그 렇게 찌르기, 발차기를 하며 놀았다. 뭘 아는 지 모르는지 바론이도 형을 따라 흉내를 냈 다. 엄마는 연신 사진을 찍었다.라온이 앞에서 하는 발차기는 발차기가 아 니었다. 발차기가 되지 않았다.가만 생각하니, 스물일곱에 기자가 되어 면수습식 하던 날, 소싯적에 운동 좀 했다는 장용 택 사회부장(現 영남일보 논설 위원)이 발차기를 한번 해보라 고 해서 술김에 식당 앞에서 회 축(뒤돌려차기)을 선보인 게 내 마지막 발차기였다. 17년 전의 일이었다.라온이 태권도복 입은 모습을 보자, 내 아버지 어머니도 이런 마음이었을까 궁금해졌다. 옛일 들이 잠시 떠올랐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아버지 따 라 형이 다닐 태권도장에 놀러갔다가 그 결 에 태권소년이 됐다. 그렇게 태권도를 10년 했다.그 덕에 누구한테 맞고 다니지는 않았다. 초등 6학년 땐 김천시 대표로 소년체전도 나 가봤다. 군에 가서는 행정병임에도 대대본부 태권도 교관(*)도 해봤다. 초등학교에서 중학교 진학할 때는 당시 김 경하 경북도태권도협회장이 우리집으로 찾아 와 아버지께 대구 중학교로 태권도 유학을 권 하기도 했다.김 회장은 나를 태권도 영재로 보았지만 아버지는 나를 그렇게 보지 않았다. 나는 아버지 눈이 정확했다고 생각한다. 태권도 영재는 클래스가 다르다는 걸 13살 포항 대회 때 절감했다.1회전에서 상주 대표 를 가볍게 꺾고 2회전에 진출, 태권도 전문 초등 출신의 포항 대표와 붙은 나는 단 1대도 가격하지 못했다. 반면 그는 나를 거의 가지고 놀다시피했다. 어린 마음이었지만 충격이 컸다.나는 그길로 아버지 손에 이끌려 학교로 돌아가야만했다. 나는 군 입대 전까지 방학 때마다 도장에 나가 수련을 했으니, 태권도를 꽤 오래한 편 이다.한 5년 다니니까 더이상 다니기 싫어 요리조리 꾀도 많이 내보았지만, 어쨌든 10 년 연마한 태권도로 여러 재미를 보았다.이따금 나는 대학 4년을 비롯해 첫 직장 5 년 2개월, 두 번째 직장 7년 모두 태권도의 무도정신(武道精神)으로 버틴 것이라고 생각 한다.육체적 정신적 일탈의 유혹에 빠지지 않고 정상 범위 안에서 내 조대로 내 길을 가꾸며 살아온 것은 모두 태권도의 무도정신이지 않 을까 싶은 것이다.특히 대단한 근기(根氣)가 필요한 글쓰기 는 본질적으로 엄청난 정신노동이 수반된다. 한꺼번에 책 4권을 핸들링하는, 핸들링할 줄 아는 40대 작가는 아마 없을 것이다.라온이도 태권인으로 건강한 신체와 산뜻 한 정신을 갖게 되기를 기대한다. 라온이는 어젯밤 태권도복 입고 벗기를 세 번이나 했 다.천진난만한 그 미소, 그 찌르기, 그 발차 기 평생 못 잊을 것 같다. 어제는 아비로서, 같은 사내로서 너무너무 황홀한 밤이었다. /심보통 2022.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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