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孝) 손두남(孫斗南) 통정대부 덕호의 뒤. 3세에 아버지 돌아가시어 어려서부터 어머니 모심에 효성이 지극하였다. 7세에 외삼촌인 서봉래에게서 배웠는데 봉래가 외출하여 일찍이 소매 속에다 대추를 넣고 돌아와 (두남에게)주었다.  그 뒤 한 달 여가 지나 갑자기 (두남의)가슴속에서 대추가 떨어지기에 그 사유를 물었더니 지난날 외삼촌이 주신 (대추)인데 집에 돌아가면 어머니를 드리려고 먹지 않고 갈무리해 둔 것입니다(라고 대답했다. 그리하여)봉래가 기이하여 (두남을 밖에)나가게 하고 (대추를)헤아려보니 (자기가 준 것에)한개도 모자라지 않았다.  봉래 말하기를 ‘예전에 (부모님을 드리려)귤을 품었다는 말을 들었는데, 이제 (어머니를 드리려고)대추를 품었음을 보았으니 참으로 효성스런 아이로다’(라 하였다)  박사순(朴士恂) 참봉 려의 아들.  부모의 초상에 여묘살이를 6년이나 하여 효(孝)로 통정대부에 추증됨 박수항(朴守恒) 학정 성세의 손자. 호는 백원재. 천성으로 효성이 지극하여 어버이 병에 단지(斷指)로 피를 드리워 소생시켜 사림들이 감영(營門)과 어사(繡衣)에게 글을 올렸다  박경립(朴敬立) 노계 인로의 아들.  효행이 있어 초상에 여묘살이를 하는데 효성스런 짐승(孝獸)이 와서 호위하였다. 인조가 돌아가시자 방상(方喪)95)3년을 한 사실이 알려져 창릉참봉으로 제수되고 여문(閭門)에 정려(旌閭)하여 효제동이라 불렀다 안여재(安汝載) 광주인. 판결사 명한의 증손. 아버지의 병에 단지(斷指)하여 10년의 수명을 늘렸으며, 또한 붓글씨를 잘 쓴다는 명성(筆名)이 있었다 손명세(孫命世) 윤암 우남의 현손. 진사시에 합격. 천성으로 효성이 지극하여 어머니 상에 아우인 명철 명길과 같이 여묘살이를 함에 애훼(哀毁)를 스스로 다 하였다. 하인인 일산 행산 감산 또한 주인을 모시고 (시묘를)살았다. 후에 사람들은 그 땅을 일컬어 감동 행동이라 하였다  이매(李梅) 대사헌 승수의 뒤. 모는 창계. 집안은 가난해도 배우기를 좋아하고 어버이 모심에 효성이 지극했다. 초상을 만나 여묘3년을 하였으니 (이 사실은)윤강록에 실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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