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호에 이어)
진실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어떻게 구분하게 되는 것입니까?
사람이 살아간다는 것은 정지된 상태의 막연한 흐름이 아닙니다. 오로지 흐르는 상태입니다. 하지만 유한한 존재이지요. 흐르는 존재가 유한한 생명력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그래서 삶이 가치가 있는 것이요 그 가치있는 삶을 위해 사람들이 노력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진실하게 살아야 하는 것은 바로 가치있는 삶을 향한 기본적인 태도인 것입니다.
사람을 보는 눈은 자신의 마음가짐에 달려 있습니다. 자신이 모든 것을 그릇되게 보고 부정적으로 생각하면 올바로 진실하게 살아가는 사람도 보이지 않게 됩니다. 그러나 진실하게 살아가는 사람은 살면서 다른 사람에게 진실을 일깨워 줄 수도 있으며, 진실한 사람을 보는 안목도 커지게 됩니다.
약 4백년 전, 일본에서 있었던 일이라고 합니다. 관직에서 일하며 결혼을 해서 가정을 두었던 어떤 남자가 어느 날 한 여인을 집으로 데리고 와서 작은 댁으로 삼았습니다.
흔히 본부인과 작은댁이 한 집에서 친하게 지내기가 쉽지 않지요. 그런데 묘하게도 본부인과 작은댁이 친자매처럼 정답게 지냈다고 합니다. 그들이 이처럼 정답게 지낼 수 있었던 것은 바로 본부인의 너그러운 마음과 작은 댁의 온순함때문이었습니다. 본부인은 가진 것 중에서 가장 좋은 것은 항상 작은댁을 주고 맛있는 것도 작은댁을 먼저 주었고, 작은댁은 ‘형님, 형님’하면서 본부인에게 언제나 순종하였고, 좋은 물건이 있으면 형님에게 챙겨드리곤 했다고 합니다. 이렇게 서로가 서로를 위해주면서 사이좋게 지내자 남편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늘 흐뭇한 마음으로 두 여인과 살았던 것이지요.
‘정말 나는 복도 많은 놈이지. 두 여자가 저토록 자매처럼 사이좋게 지내면서 내게 정성을 다하니…’
그러던 어느 추운 겨울 날, 관리가 퇴근을 하여 집으로 돌아와 보니 두 부인은 다다미방 중앙에 놓인 화로 옆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관리의 눈에 참으로 묘한 모습이 보였습니다. 잠든 두 여인의 머리카락이 뱀으로 변하여 서로 싸우고 있는 모습이 꿈을 꾸고 있는 듯이 보인 것입니다. 그제서야 관리는 느낀 바가 있었습니다.
‘아! 여자의 세계는 저런 것인가? 남이 볼 때는 둘 사이가 그렇게 다정하고 서로가 정답게 위해주며 양보하는 척하더니. 마음 깊은 곳에는 저토록 무서운 독기가 서려 있었구나.’
크게 충격을 받은 관리를 세상살이에 모든 정이 떨어져 곧 온다간다는 말도 안하고 집을 나가 출가하였습니다.
그뒤 홀홀단신인 작은댁은 어디론지 떠나버렸고, 뱃속에 아기가 있었던 본부인은 남편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며 집을 지켰습니다. 얼마 후 아기는 태어났지만 남편이 돌아오지 않자 본부인은 홀로 아들을 키우며 살고 싶지 않은 삶을 이어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언제나 남편이 떠난 이유가 무엇인지 왜 말없이 떠나 소식이 없는지에 대한 의문이 머리 속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왜 남편은 우리를 버리고, 집안도 명예도 모두 버리고 떠난 것일까?’
이것 때문에 고민하다가 본부인은 결국 깊은 병이 들고 말았습니다.
아들이 열여섯살이 되었을 때 병으로 죽게 된 어머니는 아들에게 마지막 소원을 말했습니다.
“아들아, 죽기전에 꼭 네 아버지를 만나고 싶다. 미련이 남아 아버지를 붙들기에 위해서가 아니다. 도대체 왜 아버지가 자식과 가정을 버리고 갔는지 그 이유를 듣고 싶어서란다.”
이러한 간곡한 어머니의 소원을 들은 아들은 그길로 바로 아버지를 찾아 일본 전국의 사찰을 찾아다녔습니다. 그리고 갖은 고생을 하며 1년 여를 찾아다녔는데 마침내 히에전이라는 곳에서 스님이 된 아버지를 만났습니다. 그 아들로서는 태어나 처음으로 만난 아버지였던 것이죠.
아들은 아버지를 만난 기쁨은 뒤로 하고 다급하게 부탁을 했습니다. “어머니는 지금 죽어가고 있습니다. 어머니의 마지막 소원은 아버지를 만나시는 것입니다. 아버지께서 출가하신 이유를 듣고 싶어하십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아들과 함께 동행을 하지 않고 나무토막에 부적을 새겨 아들을 주었습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