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밥]의 장르를 ‘살이집’이라 새롭게 규정해 두었지만, 세속 잣대로는 에세이다.
에세이는 원래 ‘에세(essais)’였고, 창조자는 프랑스 철학자 미셸 에켐 드 몽테뉴였다.
‘에세’라는 말은 내가 [글밥]을 ‘살이집’이라고 못박았듯, 몽테뉴가 자신의 글 성격을 스스로 규정한 데서 탄생했다.
프랑스어로 ‘에세예(essayer)’는 ‘시도하다’는 뜻. 어떤 것을 ‘에세이한다’는 말은 어떤 것을 시험하거나 맛본다는 뜻, 또는 어떤 것을 휘저어본다는 뜻이다.
17세기의 어느 몽테뉴주의자는 ‘에세이’를 일러 “총알이 똑바로 나아가는지 확인하기 위해서 권총을 쏘아보는 것, 또는 말이 말을 잘 듣는지 타보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한국의 에세이는 몽테뉴가 지향하는 것과 달리 ‘저차원’인 경우가 적지 않다. 한국에서 ‘에세이’라는 말이 주는 뉘앙스에는 ‘다른 작가들의 명문이나 주장들을 짜깁기해 넣은 글’이란 표절 의혹을 대개가 풍기고 있다.
이 점 [글밥]에서도 언제고 지적한 적 있다.
“전통적으로 문인의 글은 편지글과는 그 양식도, 문체도 확연히 달랐다. 운문의 경우엔 은유와 은폐 기술이 흔했어도, 산문의 경우엔 온전히 자기 생각을 쏟아내는데 주력했다. 그건 오로지 적극적인 사적 자기표현으로써 글쓰기였다. 그 많던 사적 자기 과시 글들은 대체 어디로 갔을까. 몽골의 침략으로, 결정적으로 임진왜란으로 거개가 소실됐다.”/<보통 글밥2>, ‘한국인의 글쓰기’ 중
몽테뉴가 낳은 ‘에세’는 차원이 달랐다. 근원적으로 남의 생각과 주장을 차단했다.
몽테뉴는 자기 자신의 생활에서 얻은 풍부한 소재를 이용한 최초의 작가였다. 그는 작가 중에서 가장 인간적인 작가였다.
몽테뉴는 총알이 사방으로 날아가고 말이 통제할 수 없이 전속력으로 질주한다는 것을 알았지만, 그런 것을 전혀 개의치 않았다. 그는 그저 자신의 작품이 그렇게 예측 불가능한 상태로 세상에 나온 것을 보고 즐거워했다.
몽테뉴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소재를 모두 쏟아붓고, 이 페이지에서 이런 말을 하고 그다음 페이지에서, 심지어 그다음 문장에서 정반대의 말을 해놓았는지 어쨌는지 신경을 쓰지도 않았다.
몇 구절을 써 내려가다가 사물을 바라보는 길이 새로 열리면, 그는 그쪽으로 방향을 바꾼다. 생각이 아주 비논리적이고 몽환적이면, 글이 그 생각을 따라간다.
그는 “나는 이야기의 주제를 고정할 수 없다. 주제는 본래부터 술에 취한 듯 정신없이 비틀거린다”고 했다.
독자는 그저 마음 내키는 대로 읽어 내려가기만 하면 됐다.
에세이 107편이 담긴 고전 <에세>는 인간이자 작가로서의 몽테뉴에 관한 것이다. 여러 사람과 나눈 대화다. 독자 개개인이 몽테뉴와 나눈 대화가 담겨 있다.
그렇게 몽테뉴의 <에세>는 많은 이들의 ‘인생의 동반자’ ‘최상의 친구’ ‘평생 읽을 만한 책’이 됐다.
그가 좋아했던 격언 중 하나는 “우리는 각자의 시각에서 벗어날 길은 없다. 우리는 각자 자기 다리로 걷고 자신의 엉덩이로 앉는다”였다.
어제 오후 본 몽테뉴에 관한 글 <어떻게 살 것인가> 서문을 추린 것이다. 이를 [글밥]의 ‘기원’으로 삼아도 좋겠다 싶었다. <에세> 대신 <글밥>을, 몽테뉴 대신 심보통을 넣으면 싱크로율 100%다.
[글밥2]는 일전에 약속한 대로 손님들과 1권씩 나눔으로써 그 기쁨을 만끽하고자 한다.
[글밥2]는 내 글력(문장력)의 원천인 내 아버지 ‘소설가 황계 심형준 선생 타계 10년 기념판’이란 의미도 담았다. 많은 이들에게 [글밥]이 ‘인생의 동반자’ ‘최상의 친구’ ‘평생 읽을 만한 책’이 되면 좋겠다. [글밥]은 나의 이야기 아닌 바로 우리들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