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호에 이어)
“이것을 갖다드리거라. 그러면 어머니 병이 나을 것이다.”
아들은 어머니의 병이 낫는다는 말씀에 너무 좋아서 부적을 받아들고 산을 뛰어 내려왔습니다. 그런데 막 뛰어내려오다가 비탈길에 넘어져 데굴데굴 굴렀습니다. 그 순간 나무로 만든 부적은 부서져 버렸고, 바로 그 시간에 어머니는 아들을 기다리다 숨을 거두고 말았습니다. 집으로 돌아가 어머니의 장례식을 올린 아들은 다시 아버지를 찾아가 울면서 말했습니다.
“아버님, 저에게라도 말씀해 주십시오. 왜 어머니를 버리고 집을 떠나셨나요?”
아버지는 비로소 아들에게 출가할 당시의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참으로 사람의 마음을 알 수 없더구 나. 너의 어머니가 겉으로 보기엔 그렇게 다정한 사람이었지만, 잠을 자는 동안 무의식중에 가슴에 맺힌 것이 사나운 뱀으로 나타나더구나. 아들아, 바로 그것이 우리 인간의 마음이라는 것이다. 어찌 너의 엄마만 그러하겠느냐? 모두 인간의 마음이 이와 같단다. 나는 그와 같은 인간의 마음이 두려웠고, 그 마음을 벗어나려고 중이 된 것이다.”
아들은 아버지의 말을 듣고 깊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크게 느낀 바가 있는 아들은 그 자리에서 출가하였고, 아버지와 아들은 함께 수도하여 모두 도를 이루었다고 합니다.
이 일은 일본 히에잔에서 실제로 있었던 일이라고 합니다.
두 여인은 정녕코 진실한 마음으로 정을 나누지 않았습니다. 서로가 착한 여인이라는 것을 뽐내기 위해 정을 나누고 다정한 척 했던 것이지요.
어찌보면 다정한 척 하는 것도 어려운 일이 아니겠는가 할 수 있습니다. 물론 다정한 척 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닙니다. 그러나 서로가 경쟁하고 시기하는 마음으로 다정한 척하는 그 자체가 이미 참된 복을 얻을 수 없는 업이 되는 것이지요. 겉으로 다정한 척 하는 사람은 처음에는 몰라도 나중에 다 들통이 납니다. 진정으로 ‘나’를 비우지 않았기에 언젠가는 그 본심이 드러나게 되어 있습니다.
내 마음도 진실하게 가꿔가고 남의 마음도 바르게 이해할 수 있는 안목이 생기려면 어떤 수행이 필요하겠습니까?
기도를 많이 하고 참선을 많이 한 사람은 타인의 마음을 잘 읽을 줄 알게 됩니다. 그리고 어떤 사람이 진실한 사람인지, 아닌지를 알게 되고 어떤 사람이 거짓을 대하더라도 잘 선도할 줄을 알게 됩니다.
누구나 타인을 바라보는 능력을 갖고 있지요. 단지 모두가 자신의 욕심에 가려 자신의 예지 능력을 발휘하지 못할 뿐입니다.
기도나 참선도 수행하는 마음으로 하는 사람과 자신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 하는 사람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내가 무엇을 얼만큼 기도하면서 살고 있는가 돌이켜 보십시오. 그리고 타인을 위한 기도와 진실한 마음을 얼만큼 베풀면서 살아왔는가를 생각해 보십시오.
남에게 베푸는 것을 자랑스런 마음으로 한다면 그것은 진정한 마음이 아닙니다. 정말로 미련없이 자랑하는 마음없이 ‘버리는 보시’를 할 줄 알아야 합니다.
불경에 있는 이야기를 해 드리겠습니다.
철저한 고행을 통해 아라한의 도를 얻은 사리불 존자가 대승보살의 마음을 일으켰습니다. 이를 안 제석천왕은 하늘에서 내려와 대승불교의 첫번째 덕목인 보시로써 사리불 존자의 대승심(大乘心)을 시험하고자 했습니다.
“거룩하신 사리불 존자시여. 존자께서 대승심을 발하셨다니 저에게 가진 것을 보시하심이 어떻겠습니까?”
사리불 존자는 매우 흐뭇한 어조로 물었습니다. “무엇이든지 드리겠습니다. 무엇을 드릴까요?”
“눈을 하나 주십시오.”
사리불 존자는 잠깐 동안 고민했습니다. 한쪽 눈이 없으면 매우 생활에 불편할 것임을 알았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사리불은 부처님께서 ‘버리는 것’을 가르치기 위해 보시행을 실천하도록 했던 뜻을 분명히 알고 있으므로 아픔이나 아깝다는 생각을 버리고 한 쪽 눈을 뽑아 주었습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