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호에 이어)
우리 평범한 사람들의 상식으로는 생각하기 어려운 일입니다. 죽은 후에도 장기기증만은 않겠다는 사람이 많은데 살아있는 동안에 그것도 눈을 하나 빼주었다는 것은 감히 상상하기도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사리불 존자는 육체의 허망함과 진실로 버릴 줄 아는 용기, 진실한 보살도를 이룬 존자였기에 가능했던 일입니다.
지금 우리가 바로 진실을 위해서는 모든 것을 버릴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하며, 진실하게 살아가는 것으로써 보살도를 이루고자 해야 하는 것입니다.
적은 내부에 있습니다. 즉 자신이 진실한가 아닌가 하는 점은 본인 자신이 더 잘 알고 있습니다. 진실한 척, 다정한 척 하면서 살지 말고 진정으로 진실해 지도록 합시다.
현세에 행복하려면
어떻게 살아야 행복해질 수 있을까요?
사람들은 어떻게 변하는지도 모르게 변하고 있습니다. 사람은 계절처럼 변하는 것이 아니라 세월의 변화로 그 변화를 느낄 수 있습니다. 세월이 흘러 갈수록 아름답게 변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렇지 못한 사람도 있습니다. 사람이 한평생 살아가면서 다음생을 생각하고 살기가 쉽지 않습니다.
말로는 다음생에 다시 태어나면 가난을 면하고 싶다, 명예를 얻고 싶다, 아름다운 여인으로 태어나고 싶다, 혹은 아주 멋있는 남자로 태어나고 싶다는 등등의 말을 하지만 정작 자신의 생활을 통해 추구하고 있는 것은 오늘 보다는 내일 조금 더 잘 살고 싶고 행복해지고 싶어서 노력하고 있는 것 뿐입니다.
물론 내일의 행복을 위해 오늘 부지런히 노력하는 것만큼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이러한 노력이 쌓여져야 행복해질 수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이러한 노력이 쌓여져야 행복해질 수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어떻게 노력해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깊이 생각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잡아함경’에 이런 예화가 있습니다.
부처님께서 사위성 기원정사에 계실 때였습니다.
올사가라는 바라문이 부처님께 문안드리고 여쭈었습니다.
“부처님이시여. 신도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현세에서 편안하고 행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네 가지 길이 있느니라. 첫째로 농사를 짓거나 장사를 하거나 혹은 임금을 섬기며 글씨를 쓰거나 그림을 그리는 등 갖가지 자신이 맡은 직업에 최선을 다해 스스로 생활을 이끌어야 한다.
둘째로 재산을 잘 보호해야 한다. 재산은 직업을 통해 얻은 것이요. 내가 직접 일해서 법답게 얻은 것이니. 임금이나 도적에게 빼앗기지 않아야 하고, 물에 떠내려 보내거나 불에 태우지 않는 등 갖가지 재앙으로부터 잘 지키고 보호해야 한다.
셋째로 착한 친구와 사귀어야 한다. 법도에 어긋나지 않고, 방탕하지 않으며, 허망하지 않고, 음흉하지 않은 사람과 사귀어야 걱정과 근심이 생기지 않는다.
넷째로 균형있는 생활을 꾸려나가야 한다. 재산을 관리할 때는 수입이 많고 지출을 적게 하되 저울눈이 균형을 이루도록 더하고 빼듯 해야 한다. 재물이 없는데도 마구 뿌려 쓰면 꽃은 화려하나 씨앗이 없는 것과 같고, 재물이 풍부하면서도 그것을 쓰지 않으면 굶어 죽은 개와 같다고 사람들이 말할 것이다. 이 네 가지 법을 성취하면 현세에서 편안하고 즐거우리라.”
이 말씀은 지극히 평범한 내용이지만 아주 중요한 말씀입니다. 왜냐하면 우리 생활에서 이 네가지가 늘 한결같이 이루어진다면 불국정토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첫번째의 말씀처럼 자신이 맡은 바 일에 최선을 다하는 일의 중요성은 강조하지 않더라도 잘 알고 계실 것입니다. 많은 젊은이들이 해마다 사회로 쏟아져 나오고 있습니다. 일자리는 부족한데 일꾼들은 많인 쏟아지고 있으니 자연히 취업문이 좁을 수밖에 없습니다.
대학들어가는 문보다도 취업의 문이 더 좁아 학생들이 요즘은 자신의 전공공부보다는 취직공부에 더 몰두하게 되었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