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孝)
이동룡(李東龍) 쌍계 영근의 뒤. 호는 송재. 평소 문행(文行)이 있다. 어버이 모심에 효성이 지극하여 초상을 만나 여묘살이를 하였으며 애훼(哀毁)가 예법을 넘었다
박이검(朴爾儉) 밀양인. 정립의 현손. 어버이 모심에 효성이 지극하고 어버이의 뜻과 몸을 아우르는 봉양을 최선을 다하지 않음이 없었다. 거상(居喪)에 애훼(哀毁)함이 법제를 넘었고 여묘에 호랑이가 내침(來侵)하였지만 두려워하지 않았다
박종인(朴鍾仁) 간송 수생의 현손. 어머니의 병에 단지(斷指)하고 피를 드리워 소생하였고, 죽음에 여묘살이 3년을 하여 향리가 정장(呈狀)으로 (조정에)알려 사헌부 장령으로 추증되고 호는 연호다
김두횡(金斗鐄) 분성인. 진사 승남의 뒤. 천성으로 효성이 두터워 아버지의 병에 단지(斷指)하고 피를 드리워 수명을 석달이나 늘렸다. 고을과 도의 선비들이 정장(呈狀)으로 알려 급복(給復)되고 (이 사실은)삼강록에 실려 있다.
정치규(鄭致奎) 효자 수강의 뒤. 어려서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 모심에 그 정성을 극진히 하였다. 나이 14세에 어머니가 급한 병에 걸리자 온 집안이 놀라서 몸 둘 바를 알지 못했다.
치규는 남 몰래 괴일 깎는 칼을 들고 왼손가락을 베어 그 피로 (어머니의)입에 드리우니 거의 숨이 끊겼다가 다시 살아났다. 이에 집안사람들에게 경계하여 어머니가 (자신의 손가락 벤 사실을)알지 못하게 하고 상처를 감추고 아픔을 참으며 곁에 모시기를 평소와 같이 하였다. 불행히 일찍 죽었는데 어사와 순산(巡相)이 여러차례 포상과 표창을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