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참사로 온 나라가 비탄에 잠겼다. 그러나 드러나는 정부의 상황 대처를 보면 가슴을 치고 또 치게 만든다. 맨처음 정부가 국민에게 보여준 모습은 고구마를 물없이 열 개쯤 먹은듯 답답했다.
158명의 시퍼런 목숨이 나라의 부재 속에 스러졌는데도, ‘내 책임’을 언급한 사람이 한명도 없다가 비난 여론이 비등하자 ‘무한책임’을 꺼냈다. 특히 주무 장관은 책임과 의무를 다하지 못해 놓고서 불가항력의 천재지변 탓처럼 말하기도 했다. 이후에도 숱한 책임 회피성 발언 논란을 빚으며 정쟁만 촉발한다. 158명의 꽃같은 젊은 목숨을 잃는 참사가 발생하기 3시간40여분 전부터 시민들은 애타게 국가를 찾고 있었다. 상황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신속하게 대처했다면, 이번 사고는 안생겼을지도 모른다.
2014년 봄, 304명의 꽃같은 목숨이 희생된 세월호 사태가 터졌을때도 우리 사회는 다시는 이런 일이 없어야 한다고 온 나라가 성찰했지만 8년만에 또 참극을 마주했다. ‘만약에’라는 말이 무슨 소용이겠는가마는 핼러윈을 앞두고 10만명이 모일 거라고 지자체와 경찰이 예측을 하고 그에 걸맞은 대비를 했다면 이런 끔찍한 참사는 안생겼다. 사고 직후 짧은 시간안에 구조대가 출동했다면 골든타임도 놓치지 않았을 것이다. 10만명의 운집이 예상되는 행사에 왜 통제 인력을 미리 배치하지 않았는지, 통제 지원 요청은 왜 묵살됐는지, 보고 체계는 왜 붕괴됐는지 등은 한번쯤 뒤돌아 곱씹어 봐야할테다.
또 있다. 어느 일선 경찰관의 말처럼 ‘그저 위만 바라보다가 사고가 터진 것’이다. 대통령이 선포한 ‘마약과의 전쟁’, 그리고 광화문 시위대들이 용산 대통령실로 몰려 올까봐 보호하는데 경찰의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그날 이태원거리의 핼러윈 대응은 국민 생명과 안전 문제인데도 우선순위가 못 되는 분위기였다는 것이다.
정부가 애도를 강권하지 않아도 국민들은 이태원 참사에 몸서리치며 아파했다. ‘누구라도 있을 수 있던 그날 그곳에 내가 없었던 것일 뿐’이라며 미안해 했다. 그날의 국가의 역할이 하나씩 밝혀지면서 국민들 사이에는 조금씩 슬픔이 분노로 바뀌었다. 정부·여당이 자초한 일이라는 소리가 터져 나온다. 악몽 같은 참사를 다시는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더는 분노를 삼키지 말고, 원인을 따지고 책임을 계속 물어야 한다.
바둑용어에는 ‘복기’라는 말이 있고 개인을 향해서는 하루 세 번 반성하라는 뜻의 ‘일일삼성’이라는 말이 있다. 복기라는 말은 바둑 기사들이 대국을 끝낸 직후, 전체 대국 내용을 순서대로 되짚어 보는 것을 일컫는다. 이긴 사람은 모르겠지만 진 사람은 자신이 둔 악수를 되짚으며 실수와 오판의 순간들을 마주하게 된다. 패배 뒤의 복기는 가슴 아프고 고통스럽다. 하지만 복기를 회피하면 실력을 키울 수 없고, 패착을 반복해 결국에는 실패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한다. 따라서 지금 우리 사회가 꼭 해야할 일이 이번 참사에 대한 복기를 해보는 일이다.
왜 이런 참담한 일이 발생했는지 심각하고 꼼꼼하게 되짚고, 시스템 속에 허점이 뭔지를 찾아야 한다. 아울러 치밀한 복기 뒤에는 구멍을 어떻게 메울지, 반드시 대책도 마련해야 한다.
그래야만 또다른 참사를 막을 수 있다. 이번 사건을 복기하며 그 안에서 안전관리의 묘수를 찾지 못한다면 우리는 또다른 비극을 맞을 수밖에 없는 지경이 될 것이다. 비록 부끄럽고 가슴 아플테지만 지난 이태원 참사 속에 숨어있는 우리 사회의 부실과 치부를 제대로 헤집어야 한다정부와 지자체가 기강이 해이해지고 할 일을 하지 않으면 어떤 일이 생기는지 똑똑히 봤으니 우리도 타산지석으로 여겨야 한다. 다시 이런 참사가 생기지 않으려면 국가도, 단체도, 개인도 철저히 반성하고 재발 방지를 위해 노력하는 것만이 살아남은 사람들의 도리고 의무다. 또 그것이 진정한 애도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