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날을 기억하며  - 학생부 운문 우수상 (경산 문명고 이주헌) 바람 한 줌에도 흔들리던 위태로운 국가의 운명에 새로이 희망의 기둥을 세워주신 산남의진 의병들이시어 영혼마저 불사르시며 지켜내어 주신 이 강산엔 이제 당신들의 후손들이 주인 되어 살고 있습니다. 당신들의 고귀한 희생 덕분에 그 날의 굳건한 결의 덕분에 우리가 살아있음을 우리가 자유로움을 단 한 순간도 잊은 적이 없습니다. 이제 드높은 하늘 위 가장 빛나는 별이 되어 편히 잠드소서 깨 달 음 - 학생부 산문 우수상 (경산 문명고 김태경) 어릴 적부터 역사에 관심이 많았던 나는 이런저런 유적지를 다니곤 했다. 그중에서 유적지와 관련된 인물들의 이름이 비석에 새겨진 곳이 많았는데, 그러한 비석들을 볼 때마다 들었던 생각이 있다. 그렇게 치열한 삶을 살았음에도 남는 건 비석에 새겨진 이름 석 자 뿐인데, 고작 이름 석 자를 위해 자신의 목숨까지 내걸 필요가 있을까? 막상 기록되어도 사람들에게는 제대로 기억조차 되지 않을 것이 분명한데, 꼭 그렇게 힘든 삶을 선택해야 했을까? 라는 생각을 하곤 했다.  그러나 이러한 내 생각은 애국의 고장 영천에서 개최된 산남의진 추모식에 참가하며 바뀌었다. 이곳에서 나는 산남의진에 대해 자세히 알게 되었다. 산남의진이란 문경새재 이남의 의병 진영을 뜻하는데, 정용기를 중심으로 많은 지사들이 모여 영천을 중심으로 경북 각지에서 항일 투쟁을 했다고 한다.   1905년 을사늑약 체결 이후 고종이 정환직에게 밀지를 내리고, 이는 산남의진을 일으키는 계기가 되었다. 그들은 1906년부터 3년 반 동안 항일 투쟁을 전개하며 국권 수호를 위해 노력하였다. 그들은 의병장이 체포되거나 전사해도 새로운 의병장을 추대하며 네 차례나 재기하였지만 한일합방을 막을 순 없었고, 오백여 명의 전사자를 남기고 투쟁은 종료되었다. 언뜻 들으면 여느 항일의병과 다를 게 없는, 오백여 명의 이름만 비석에 남은 의병운동인 것 같지만, 산남의진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면 그런 생각은 바뀔 것이다. 산남의진은 단순 의병운동이 아니라 국가에 대한 충성심과 일제에 대항하여 나라와 왕을 지키겠다는 효심으로 모여 나라사랑이 무엇인지 확실히 보여준 예시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비석에 이름을 남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라와 왕에게 충성하고 효를 다하기 위해 목숨까지 바쳐가며 투쟁한 것이다. 나는 더이상 그들이 남긴 이름이 무의미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비석에 새겨진 이름 석 자는 기억되지 못할 역사 유적이 아니라, 자신의 신념과 의지를 지키기 위해 모든 것을 내걸었던 사람들의 마지막 흔적인 것이다. 그 흔적이 남겨지기까지 그들은 셀 수 없을 만큼 많이 갈등하고, 좌절하고, 고통받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들은 흔들리지 않고 꿋꿋이 충성심과 효심을 지켜냈고, 그걸 증명하는 것이 비석에 새겨진 이름인 것이다. 기억되지 않는다고 해서 의미없는 것이 아니다.   지금 당장은 기억에서 잊혀질지 몰라도, 그들의 충성심과 애국심은 우리가 흔들릴 때 언제나 우리 곁에서 힘이 되어줄 것이다. 비석에 새겨진 이름을 볼 때마다 부질없다는 생각이 아닌, 그들의 삶을 떠올리며 그들이 지키고자 했던 것에 대해 생각할 것이다. 문득 내가 죽은 뒤 사람들이 묘비에 새겨진 이름을 보았을 때, 그들은 무슨 생각을 할지 궁금해진다. 나로서는 알 방법이 없지만, 사람들이 내 묘비를 보고 교훈을 얻었으면 좋겠다. 다른 사람에게 교훈을 주는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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