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를 다녀온 사람들은 ‘시범케이스’라는 말을 안다. 시범케이스는 군기를 잡는다는 명분으로 한놈만 불러내 속된말로 심하게 족쳐버린다. 불려나온 한놈 외의 나머지도 잘못하면 이렇게 될거니 조심하라는 경고가 담겨있다. 한번에 ‘여럿’을 잡기 위해 ‘하나’만 족치는 기술이다.
시범케이스를 내세우면 공포가 전이되며 순식간에 기강을 잡을 수 있다. 타깃이 된 사람이야 아주 죽을 맛이지만, 살아남은 자는 속으로 웃는다. 시범케이스가 무서운 것은 당하는 현실을 똑똑히 눈으로 보기 때문이다. 일제 강점기 친일 앞잡이들이 동족을 불러내 즐겨 썻다는 야만적인 린치 행위다.군대에 있을 그 기술이 군사 문화가 되어 지금도 학교와 직장, 기업, 정치판 등 곳곳에서 횡행하며 현재진행형이다. 그럴듯해 보이지만 실은 야비한 폭력에 지나지 않는다.
또한 ‘나만 아니면 된다’는 째째함이 조직에 퍼져 조직은 엉망이 된다. 군기의 유효기간도 짧다. 잠시 납작 엎드려 있으면 눌린 패딩처럼 스멀스멀 원상태로 돌아온다. 대통령실이 지난 11~16일 윤석열 대통령의 동남아 순방 기간 MBC 기자들의 전용기 탑승을 불허했다. 지난 9월 미국 순방 도중 나온 윤석열 대통령의 비속어 발언을 MBC가 가장 먼저 보도했고, 그것이 왜곡됐다고 봤다.
그렇게도 국민과의 소통을 강조하던 대통령이 결론인즉 헌법 수호를 위해 마음에 안들고 기분 나쁜 언론사의 기자는 전용기에 못태운다는 것인데 못내 속이 좁아보인다는 느낌이다.
언론 보도에 문제가 있다면, 정정 보도나 반론 게재를 청구하는 등의 제도적 절차를 밟아 해결해야 했다. 권력자를 불편하게 하는 보도를 했다고 전용기를 못 타게 하는 식의 저급한 보복에 나선 건 나쁘다. 또 있다.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인 김상훈 의원은 지난 17일 MBC 광고기업 제품 불매운동까지 거론했다. 김 의원의 말은 삼성을 비롯한 여러 기업들이 MBC에 광고를 주지 않으면 MBC의 동력이 끊긴다는 뜻인데 마찬가지다.
비록 지역의 주간지 기자에 지나지 않지만 수백번 양보해 해석하려 해도 이건 아니다. 비판을 먹고 사는 권력이 자기의 입맛에 맞지 않는 보도를 한다고 노골적으로 해당 언론사는 물론 광고주들까지 협박해 광고를 주지 말라는 위협 행위다. 그러면서 자기들은 스스로 견제받지 않는 권력을 꿈꾼다는 자기 고백을 하고 있다.
홍보성으로 입맛에 맞는 기사를 써주면 예뻐라 하고, 조금이라도 비판하면 구린 자신은 돌아보지 않은체 공사 구분없이 배제하고 탄압이나 할려는 권력은 권력이 아니라 조폭에 가깝다. 21세기 민주주의 선진국이라는 나라에서 헌법에 명시된 언론의 자유를 침해하는 옹졸하고 시대착오적 행태가 버젓이 벌어지는 현실이 언론인의 한사람으로 심히 개탄스럽다.
언론에 대한 규제는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 하더라도 해당 기자의 자기검열에서 부터 취재와 보도를 위축시키는 부분이 있다. 그것은 곧바로 시민들의 알권리와 언론의 자유룰 침해하는 결과를 낳는다. 따라서 규제에는 신중하고도 조심스런 접근이 요구된다.
국민 세금으로 운용되는 전용기 탑승을 법적 근거없이 자의적으로 허용치 않는 행태는 비판받아 마땅하다. 대통령은 공인 중의 공인이다. 대통령이 움직이는 모든 시,공간과 행동은 공적 영역이고 공적 행위이기 때문에 당연히 국민에게 알려야 할 취재영역이다. 그리고 광고주가 광고를 주고 안 주고는 기업 경영의 자유에 해당하는 부분인데 정치권이 감놔라 대추놔라, 굴러간다 주워놔라 할 사안이 아니다.
특정 언론만 콕 집어 전용기 탑승을 불허하고 광고를 하지 말라는 것은 ‘비판하면 죽는다’는 보복성 언론탄압의 시범케이스라 해도 지나치지 않다. 가까이 출입처 문에 붙은 신문 구독 거부와 취재 불응 메시지를 대하는 것도 거북하기 짝이 없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이런 언론통제는 건강한 언론환경 조성과 유지, 발전을 위해서 있어서는 안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