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孝) 정동빈(鄭東彬) 노모를 봉양함에 정성과 효도를 극진히 다하였다. 어머니가 설사와 이질로 바야흐로 살아있는 물고기를 구하는데 마침 한 겨울인데 가물치가 저절로 맑은 물도랑에서 나왔고, 또 수리부엉이가 살아 있는 꿩을 떨어뜨린 적이 있어 이를 삶아 드렸더니 효험이 있었다. 초상을 당하여 여묘살이 3년을 함 장원호(蔣元琥) 사인 시술의 아들. 일찍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 모심에 효도가 극진했다. 어머니가 붕어고기를 먹고 싶어 하는데 물은 바야흐로 얼어붙었다. 원호가 얼음을 뚫고 낚싯대를 드리우자 물고기가 홀연히 낚시 바늘을 물고 올라오기에 (고기를 가지고)집으로 돌아와 어머니에게 드렸더니 어머니의 병이 이로 인해 나았다. 어머니가 죽음에 이르러 애훼(哀毁)함이 예법을 넘었으며 종신토록 여묘살이를 하며 새벽과 저녁이면 배묘(拜墓_하면서 무릎을 꿇은 자리엔 땅이 파여 구덩이가 생겼다. 순조조 정축년 도신(道臣)이 장계(狀啓)로 알려 급복(給復)이 되었다. 이상효(李尙孝) 첨추로 추증된 예남의 뒤. 9세에 아버지의 상을 당하여 애훼(哀毁)함이 예법을 넘음이 마치 성인과도 같았다. 성장해서 어머니가 묵은 병이 도지자 하늘에다 자신으로 대신해 달라 기원하였고, 병이 더해지나 손가락을 찧어 피를 드리워 몇일을 연명하였다. 초상에 이르러 주야로 호곡(號哭)하여 물과 간장을 입에 넣지 않아 기절(氣絶)했다 다시 살아났다. 초상 치르고 장례하는 사이에 많은 이상한 조짐이 있어 향리(鄕里)에서는 효감(孝感)의 소치로 여겼다. 암행어사가 포창한 글이 있다 김석규(金錫圭) 김해인. 절효공 극일의 뒤. 지극한 효성이 있었다. 어버이 봉양에 어버이의 뜻 받듦을 일로 삼았다. 어머니의 병에 단지(斷指)하고 어버이 죽음에 마을 뒤에다 장례하고 아침저녁으로 성묘하면서 절하고 곡을 하여 묘지의 풀들이 말라 죽었다. 이 사실은 윤강록에 실려 있다. 오종건(吳宗建) 해주인. 현감 갑룡의 뒤. 천성으로 효성이 지극하여 어머니가 열병에 걸려 꿩고기 구운 것을 생각하니 산에 올라가 울부짖는데 매가 꿩을 낚아 채 (종건의)앞에 떨어뜨리기에 (꿩을) 취하여 돌아와 구워 드렸더니 어머니의 병이 나았다. 아버지의 병에 단지(斷指)하여 피를 드리워 소생하였고, 또한 방술(方術)을 적은 글에 쥐의 피를 사용하면(아버지의 병이 낫는다는데) 마침 개가 쥐를 쫓아오기에 그 피를 사용하여 완전히 소생하여 끝내 천명(天年)을 얻었으므로 향리에서는 효감(孝感)이라 일컬었다 김봉채(金鳳采) 명산 응생의 뒤. 어려서 재예(才藝)가 있었다. 어버이 모심에 효성이 지극하였고 아버지의 병 일 곱 달 동안 똥 맛을 보며 하늘에다 기도하였다. 아버지가 물고기를 먹고 싶어하자 얼음 위에서 울고 있으니 메기가 뛰어 나오기에 가지고 집으로 돌아와 드렸더니 효험이 있었다. 이 사실은 문헌록에 실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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