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69년 8월 4일, 대통령 박정희는 대통령전용열차를 타고 부산 수해현장을 찾아가다 말끔히 단장된 신도마을을 목도한다.
박정희는 비서실장 이후락에게 열차를 세울 것을 지시하고, 그렇게 열차는 신거역에 잠시 멈추어 선다.
이내 박정희 눈앞에 30여 가구 남짓 되는 아담한 신기마을이 한 폭의 풍경화처럼 펼쳐졌다. 박정희의 눈에 비친 신기마을은 별천지였다.
좁장하지만 깨끗한 골목길과 시원한 농로는 살림솜씨 야무진 여인네의 부엌마냥 깔끔했다. 그 흔하디흔한 잡초 한 포기 보이지 않았다.
약속이나 한 듯 골목 쪽 담장아래 심어진 감나무는 더없이 훌륭한 가로수였다. 수령이 오래된 감나무 아래에는 좋은 그늘자리가 만들어졌다.
붉고 푸른 기와로 뒤덮인 지붕은 절로 탄성이 나왔다. 어쩐 일인지 이 동네 초가지붕은 융단 폭격을 맞은 듯 흉물스러웠던 여느 동네와 달리 정갈했다.
저 멀리 오른편에선 주민들이 도랑 아래서 보수공사에 여념이 없었다. 그 모습은 생경했지만 흐뭇하기만 했다.
뒷짐을 진 박정희는 어느새 입가에 웃음을 머금고 옆에 있던 농림부 장관에게 말했다.
“조 장관, 나는 이 나라 국토에 이런 그림을 그리고 싶어요. 멋지지 않소.”
조시형 장관은 대통령의 의중을 알겠다는 듯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네. 각하. 잘 알겠습니다.”
“각하, 곧 열차가 들어올 시간입니다. 이동하시지요.” 이후락이 귀띔했다.
“그러지.”
/(<세상을 바꾼 43일-새마을운동발상지 신도마을 이야기> pp86~87. 심지훈, 청도군)
이 시절 대한민국 사정은 이랬다.
∎∎∎
1969년의 봄은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같았다. 가뭄은 내리 3년째 찾아들었다. 봄볕에 붉게 그을린 농민들 얼굴은 절로 죽상이 됐다. 뚫린 입에선 깊은 한숨이 절로 새어나왔다.
검붉은 사내들은 나무그늘에 앉아 소주를 축내며 신세 한탄과 하늘 원망하는 일로 오후나절을 보냈다.
아낙네들은 당장 내일 땟거리 걱정에 발만 동동 굴렀다. 좀 날쌘 아낙네들은 바느질 같은 소일거리를 찾아 다리품을 열심히 팔았다.
이제나저제나 하늘 구멍이 뚫리지 않을까 소망하는 마음은 불쑥이 찾아들 뿐이었다.
봄가뭄 3년이 농촌 사람들에게 알려준 것은 무심한 하늘에 대고 치성(致誠)으로 일관한다고 끼니를 해결할 수는 없다는 거였다. 이 해 봄은 그렇게 힘겹고도 지겹게 흘러가고 있었다.
전국 농촌 상황을 보고받은 박정희는 논밭의 엉그름이 또렷하게 떠올랐고, 그것들이 한 데 엉켜 오장육부를 쩍쩍 갈라놓는 것만 같아 마음이 애달팠다.
청와대 1층 대통령 집무실엔 뽀얀 담배연기로 자욱했다. 농촌 문제는 그야말로 안갯속이었다. 지독한 봄가뭄은 기어이 혹독한 여름장마로 이어졌다. 여름장마는 정말이지 잔인할 정도로 대단했다. 얼마나 퍼부었던지 홍수 소식은 전 국토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날아들었다.
겨우 터전 잡고 살아가는 도시나 농촌 서민들 삶에 또 한 차례 재난을 끼얹었다.
도회지에선 식수마저 끊겨 물장수가 대목을 맞았다는 소문이 거센 홍수만큼이나 빠르게 화악산까지 흘러들었다. 전국을 휩쓸고 간 장마는 경남북도에 집중 피해를 안기고 물러갔다.
/(<세상을 바꾼 43일>, pp78~79)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