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孝) 윤태영(尹泰永) 호군 순대의 손자. 아버지의 병에 손가락 두 개를 잘라 그것으로 피를 드리움을 사람들은 많이들 어려운 일이라 여겨 예조에 문서로 알렸다. 박치각(朴致恪) 청재 심문의 뒤. 진사 효근의 현손. 나이 겨우10여세에 증조부의 초상을 당하여 거상(居喪)이 마치 성인과도 같았다. 집안이 또한 가난하였지만 초상의 예를 다 갖추었으며 새벽과 저녁의 배묘(拜墓)에 언제나 한 마리의 범이 따라다녔기에 이웃 사람들은 효감(孝感)의 소치라 칭찬했다. 호는 남강 박인휴(朴寅休) 밀양인. 통정대부 사제의 아들. 천성으로 효성이 지극하여 어버이 모심에 정성을 다 하였다.  어버이의 죽음에 묘소에 여막을 지었다. 꿩이 여막 안으로 들어오기도 하고 범이 항상 호위하여 고을과 도(道)의 사림들은 그것을 효감(孝感)이라 여겨 여러번 관영(官營)에 글을 올려 급복(給復)되었다. (이 사실은) 삼강록에 실려 있다 이재영(李載英) 진사 혐(?)의 뒤. 호는 눌재. 어버이의 병이 여러달 되도록 의약(醫藥)이 무효라. 갑자기 산 꿩(生雉)이 날아들어 와 (어버이에게 음식을 만들어)드렸더니 병이 나았다. 초상에 이르러 애훼(哀毁)함이 절도를 넘었다 정대걸(丁大杰) 관찰공 몽길의 뒤. 호는 경와. 정성과 효심이 따를 자가 없었다. 어머니의 병에 얼음에서 고기를 잡고 겨울에 참외를 얻어(드림으로써 병이)나았고, 또한 어머니의 병이 오래되었는데 마침 아이가 죽었다. (대걸은) 어머니가 이로써 근심이 더할까 걱정되어 에둘러서 위로하여 말하기를 ‘아이가 살아났습니다’(고 하니)어머니가 (아이가 살아 난 것을)보고 싶어 하시자 곧 아이를 껴안고 우는데 아이가 또한 과연 살아났고 어머니 병은 나았다. 이 사실이 알려져 정려(旌閭)가 명되고 동몽교관으로 추증되었다 이인수(李仁秀) 진사 혐의 뒤. 호는 침산. 천성으로 효우(孝友)하여 아버지의 초상에 아우인 백수와 같이 여묘를 살았다 윤정식(尹政植) 호군 순대의 증손. 어머니가 등에 부스럼이 나서 일곱달 동안 백약이 무효라. (정식은)부스럼을 빨아내어 치료하고 3년이 지나 죽었다. 임종에 이르러 손가락을 찧어 피를 드리워 9일을 연명하였다 이종하(李鍾河) 경주인. 천성으로 효성이 지극하여 어버이 모심에 친히 어버이의 뜻을 봉양함에 힘썼다. 어버이의 병에 똥의 맛을 보았고, 초상에 묘소에다 여막을 짓고 낮에는 밭 갈고 나무하며 밤에는 반드시 여막에 거처하였다. 복의 기간이 끝난 뒤 매일 새벽이면 가서 성묘를 하여 이웃들이 감탄하지 않음이 없었다 이형록(李亨祿) 이록(利祿) 소감 백고의 뒤. 천성으로 효우(孝友)하여 어버이 모심에 아침저녁으로 보살피는 예를 폐하지 않았다. 매일 시장에서 신선하고 맛있는 음식을 구함에 다른 사람으로 대신하지 않고 반드시 친히 행하여 그것으로 (부모를)받들었다. 거상(居喪)에 애훼(哀毁)가 예법을 넘었고, 시묘살이 3년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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