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기에 출신 영국 역사가 뷰리는 “역사는 잃어버린 조각이 많은 거대한 조각그림을 맞추는 장난”이라고 했다. 역사를 완벽하게 기술하기 어렵다는 얘기다. 아닌 게 아니라 새마을운동발상지 신도마을 이야기를 쓸 적에는 40년(2012년 기준)이란 시차 극복이 관건이었다. 그 시간은 그야말로 공백(空白)이었다. 이 ‘공백’을 나는 내 석사학위 논문 <새마을운동발상지에 관한 두 개의 기억>에서 이렇게 써놓았다. “새천년 들어 새마을운동에 관한 시대적 요구와 함께 새마을운동발상지에 대한 관심도 증대되었다. …… 새마을운동이 전 세계 저개발국들의 농촌 개발 모델로 각광받고 있다면, 새마을운동 전수자들은 어디를 찾아가야 할까. 새마을운동의 최초 지점(장소)을 찾아가 그 방법을 배워야하지 않을까. 또 새마을운동을 추억하는 사람들은 어디를 찾아야 할까.  세상이 변한만큼 역시 새마을운동의 최초 지점, 즉 새마을운동발상지를 찾아야 하지 않을까. 이때 새마을운동발상지라 함은 ‘새마을운동을 있게 한 최초의 장소’가 될 것이다.”(위 논문, p4) 사실 새마을운동발상지로서 신도마을은 ‘골든타임’을 어처구니없이 잃어버렸다.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되면서다. 그 뒤로 새마을운동발상지는 물론이거니와 새마을운동에 대한 관심도 숙져버렸다. 그럼에도 분명한 사실 둘은 ‘대한민국은 새마을운동으로 단숨에 개벽한 나라’이고, ‘대한민국 새마을운동은 전 세계 저개발국가의 농촌 개발 모델’이라는 점이다. 그런 점에서 새마을운동의 최초 지점, 새마을운동발상지 ‘청도의 꿈’은 유효하다 할 것이다.  옛말에 “사람이 구리로 거울을 만들면 의관을 단정히 할 수 있고, 옛일을 거울삼으면 흥망성쇠를 알 수 있으며, 다른 사람을 거울삼으면 자신의 잘못을 알 수 있다”고 했다. ∎∎∎∎ 곽대훈 새마을운동중앙회장은 며칠 전 신도마을을 방문, 이전 회장들은 거들떠보지도 않았던 ‘오리지널 새마을운동발상지’를 찾았다고 한다. 신도마을은 신기마을과 도곡마을이 합쳐진 것인데, 철로변 마을이 신기리였고, 안쪽 골짝마을이 도곡리였다. 신도마을 개발사는 도곡리에서부터 시작됐다는 점을 곽대훈 회장은 간파하고 있었다. 이 사실은 안내를 맡은 해설사도 잘 모르고 있었다고 한다. 곽대훈 회장은 신도마을 내 새마을운동발상지기념관은 성남 새마을운동중앙회 것과 별반 다를 바가 없다는 점을 지적하고, ‘오리지널리티’를 어떻게 살릴지 강구하라고 조언했다고 한다. 나는 곽대훈 회장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청도의 꿈’이 이제야 영글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세계적 명소를 보유하고도 지난 10년 헛발질만 해온 청도군도 이제는 정신을 좀 차려야 한다. ∎∎∎∎∎ <세상을 바꾼 43일>의 엔딩은 도곡마을 이야기가 장식했다.  옛 도곡마을로 가는 길은 화악산의 젖줄인 도곡천을 거슬러 오르는 길과 같습니다. 실 달린 풍선 모양인 이 길의 총길이는 5㎞정도로, 산책 삼으면 1시간이면 넉넉히 돌아볼 수 있습니다. 신도마을 새마을운동발상지기념관 광장주차장 왼쪽으로 난 널찍한 마을길이 시작 지점입니다. 이 길은 도곡천을 복개한 것으로, 사연을 알지 못하는 사람이 보면 그저 시멘트로 반듯하게 포장해 만든 길로만 여길 확률이 높습니다. 하지만 이곳이 바로 비만 왔다하면 신기주민들이 물난리로 몸살을 앓던 곳이고, 1969년 8월 4일 ‘운명적인 그날’ 주민들이 열심히 삽질하던 현장입니다. 이 길을 뚜벅뚜벅 걷다 보면 새마을운동발상지기념관에서 본 사진이 오버랩됩니다. 곧 도곡천의 속살이 훤히 드러납니다.   도곡천을 따라 난 외길은 10분가량 이어집니다. 그동안 감의 고장답게 탐스럽게 익은 감 구경을 신나게 할 수 있습니다. 심한 산비탈에 심어진 수십 그루 감나무를 보노라면 오늘의 신도마을 사정을 가늠해 볼 수 있습니다. 후각이 예민한 사람이라면 그 와중에 저 멀리서 날려 오는 향긋한 사과향을 맡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본격적인 비탈이 시작되는 지점에서 길이 갈립니다. 왼쪽 길로 가면 천지가 사과밭이고, 오른쪽 길로 가면 옛 도곡마을로 가는 길입니다.  화악산은 주로 사과농사를 지어 ‘사과천지’인지라 사과 익는 계절에는 왼쪽으로 도는 것이 일단 좋습니다. 큰 사과나무에 사과가 많이 열리는 것은 당연하다손 쳐도, 자그마한 사과나무에 얼마나 많은 사과가 열리는지 직접 보고 나면 감탄사가 절로 나올 겁니다. 사과 구경이 식상해질 즈음에는 기가 막힌 ‘밤나무터널’이 펼쳐집니다. 밤나무가 우거진 이 길 위로 붉고 노란 나뭇잎이 내려앉아 영화 속 한 장면을 연상케 합니다. 밤나무밭에는 널찍한 바위와 그늘이 있어 쉼터로도 그만입니다.  밤나무터널을 지나면 오른쪽으로 돌게 돼 있습니다. 조금 걷다 보면 산 아래쪽으로 시야가 뻥 뚫려 화악산 골짜기의 사정을 위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멀리서 감나무를 보면 나뭇가지에 꼭 주황색 전구를 꽂아 놓은 것 같고, 사과나무에 역광을 비추기 위해 바닥에 깔아놓은 은빛비닐은 사과나무를 비닐하우스 안에 재배하는 것 같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킵니다. 굽이진 길을 걸어가면 시야를 가리는 건 다름 아닌 대나무밭입니다. 보통 20m까지 자라는 왕대가 질서와 범위를 갖추고 있어 도곡마을이 지척이지 않을까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왕대밭을 휘돌면 이제 내리막길입니다.  오른편에는 크고 실한 사과나무가 또 한 번 반기고, 왼편에는 사과밭 사이사이 돌담이 옛 도곡마을의 흔적으로 남아있습니다. 돌담을 보노라면 천수답을 개간하던 옛 도곡주민들 모습이 쉬이 그려집니다. 돌밭을 경작해 그곳에서 나온 돌이 저렇게 집의 담이 되었을 테니까요. 또 돌담과 돌담 사이의 꼬불꼬불한 마을길은 잡초로 뒤덮였어도 길목 어귀에 방치된 우물을 보고 있자니 그 옛날 양동이를 지고, 이고 드나드는 주민들의 모습도 선연해집니다. 그러고 보면 옛 도곡마을에 대한 기억을 더듬으러 오가는 길은 ‘기적의 길’을 오가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싶습니다. 혹은 도곡주민들의 자립 정신과 새마을운동 정신에 걸맞게 이 길을 ‘캔 두 로드(Can Do Road)’라고 부르는 것은 어떨까요? 기적의 길을 밟고 내려가는 길에선 샛노랗게 익은 모과밭이 눈을 즐겁게 하고, 모과향이 발걸음을 가볍게 만듭니다. 다시 외길로 접어들 즈음 청도의 명물 복숭아가 내년 봄을 기약하고 있습니다. /(<세상을 바꾼 43일> pp125~128. 심지훈, 청도군) /심보통 2022.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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