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예산군 대흥면에 가면 대구서씨 시조 서한(徐)의 묘가 있다. 대구서씨는 서진(徐晉)을 시조로 하는 달성서씨와 뿌리가 같지만 분파된 시기에 대해서는 정확한 기록이 없다.  후에 서울에 올라와 벼슬을 한 서한의 후손들과 고향에 남아 세거한 서진의 후손들이 경파(京派)와 향파(鄕派)로 갈라져 분파 하였다고도 한다.  근원이 같고 달성이 대구의 옛 지명이기도 하여 혼동되기도 하지만 엄연히 본관이 다르고 대동보도 따로 만들어져 있다.  이 묘는 실묘(失墓) 되었다가 조선 초에 들어와 후손 서거정이 찾았으나 또 다시 실묘된 후 숙종 때 다시 찾았다. 시조 묘를 찾아낸 재미있는 일화가 전해져 내려온다.  서거정은 어느 날 그의 매형을 찾아가 실묘된 선대 묘소를 찾아봐 달라고 부탁을 했다. 매형은 항상 그 말을 염두에 두고 생활하다가 어떤 동네를 지나가는데 한 아낙이 아들과 나눈 대화를 듣게 된다.  “얘야 소를 어디에다 매어 두었느냐” 하니 “저 산 넘어 서거정 산소에다 매어 두었습니다”고 한다. 그 말을 듣고 깜짝 놀라 아이를 앞세워 그곳으로 가보니 소가 매어져 있는 곳엔 오래된 무덤이 있었다.  다음날 하인들을 데리고 산소에 가서 주변을 파보니 오래된 대구서씨 시조묘를 알리는 비석이 묻혀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또한 문중의 시조묘엔 대부분 얽힌 얘기가 많지만 이곳 서한의 묘소에도 재미있는 일화가 있다.  서한이 죽고 장삿날 상여가 장지로 떠날 때 한 노승이 나타나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면서 이 어른이 묻힐 곳은 따로 있으니 나를 따라오시오 하였다고 한다.  그리고는 마을을 지나 산 중턱에 도착한 스님이 말하기를, “여기는 천하 대길지 해복(蟹伏)혈로 이곳에 장사지내면 자손이 크게 번창하고 부귀영화를 누릴 것이다. 그러나 큰 부는 기대 하지 마시오”하고는 떠났다고 한다. 실제 이곳은 해복혈로 이름난 곳이라 풍수인이라면 누구나 한번쯤은 다녀왔을 법한 곳이지만 사람마다 형국을 달리 보는 경우가 있어 풍수적 견해가 분분한 곳이기도 하다.  전형적인 해복혈은 뒤의 산이 게의 등처럼 펑퍼짐해야 하고 안산은 물고기나 게의 거품을 상징하는 산형이 되거나 앞쪽에 게가 생활할 수 있는 연못이나 하천이 있어야 짝이 되어 형국이 이루어진다.  이 묘소는 산의 중상부에 위치하기 때문에 밑에서 보아 좌측편에 100여개가 넘는 돌계단을 밟고 올라가야 묘소에 도달할 수가 있다.  현장에 올라보면 뒤쪽은 실제 게의 등처럼 둥그스름한 금형산이고 앞쪽에는 게들이 헤엄칠 수 있는 인공연못을 조성해 놓았다.  풍수에서는 게는 새끼를 많이 치기 때문에 이런 곳에 묘를 쓰면 후손이 번성하고 골고루 복을 받으며 대학자나 벼슬아치들이 많이 나는 것으로 해석한다. 그리고 물을 곧 재물로 보기 때문에 묘의 위치가 높은 곳이라 물이 귀하여 큰 부(富)를 기대하기는 어렵다고도 해석한다.  반면 이러한 곳은 귀(貴)의 발복이 크기 때문에 조선조에서 6조판서와 대제학을 지낸 서거정과 그의 종 현손인 서성, 그리고 그의 네 아들을 중심으로 한 3정승과 대제학, 판서 등 수많은 인제들이 배출된 명문가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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