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이 이야기부터 들려주는 것이 좋겠소. 내가 당신을 만나 연애를 시작한 것은 서른넷이었고, 우리가 결혼한 건 서른여섯이었지.
그런데 나는 원래 서른에 결혼하는 게 목표였다오. 해서 그즈음 아버지께 “어떤 며느리를 원하시냐”고 여쭈었소. 아버지는 기다렸다는 듯이 “그래도, 선생이 안 낫나”라고 하셨소.
당시 내가 재직하던 신문사에는 시민기자가 있었소. 주로 아주머니들이었는데, 그 아주머니들이 나를 아끼고 좋아했다오. 그 분들 중 두 분이 번갈아가며 초등학교 선생을 소개해 주셨소. 10명 정도 만났지.
아버지께 어느 날 전화를 드렸소. “아버지, 선생은 어려울 것 같아요.” 이번에도 아버지는 기다렸다는 듯이 “그래, 알아서 해”라고 하셨소. 그때 내가 아버지께 “어렵다”고 한 까닭은 ‘대화가 안 된다’는 것이었소.
한마디로 내가 만난 초등 선생들은 전부 외곬이었고, 직업 정신이라고는 도무지 읽어 낼 수 없었소. 영혼이 없다고 느낀 거라오.
아버지와 통화하고 며칠 안 돼 지하철을 타고 취재가던 중에 지하철 풍경이 유달리 크게 다가왔더랬소. 지하철 안 젊은 남성과 여성들의 눈동자는 하나같이 흐리멍텅(덩)했소.
나는 눈빛이 초롱초롱하고 당찬 이성을 만나기를 바랐다오. 생기가 넘치면서도 자기 일에 대한 자부심이 있는 사람이어야 좋다고 본 거요.
나는 지하철 안 풍경을 보고 생각했지. 어쩌면 내 합리화였는지도 모르겠소.
‘아, 이건 특정 직업의 문제가 아니라 이 시대 젊은이들의 정신머리의 문제겠구나. (매우 성급한 결론이긴 하지만) 하긴 초등 선생이라는 자들의 정신머리가 그 모양이니.’
그러고 나니, 등골이 서늘해져 왔소. 왜였겠소?
이 생각을 뒤집으면 ‘어쩌면 나는 마땅한 여자를 찾지 못해 영영 혼자 살 수도 있겠구나’가 되기 때문이었소.
그건 그 당시 우리 형제들의 상황을 감안할 때, 아버지 어머니로선 받아들이기 괴로운 현실이 하나 더 보태지는 거였다오.
1년 정도가 흘렀을 거요. 나는 더는 소개팅이나 맞선 같은 만남을 갖지 않았소.
그런 내게 의외의 곳, 대학원에 당신이 혜성처럼 나타난 거요.
당신의 첫인상은 강렬했었소. 자신감이 흘러넘쳐 일면 당돌하기까지 했소. 큰 두 눈에선 곧장 광선이 나올 것 같았지.
‘어라, 저 처자 재미있네. 그래, 젊은 처자가 저 정도 패기는 있어야지.’
나는 그 길로 당신을 내 반려자로 낙점한 거요.
사설이 길었소만, 결국 우리의 삶이란 건 한줄로 요약하면 ‘건강한 정신에, 건강한 육체’가 아니겠나 싶소.
엊그젯밤 잠자리에서 당신은 이렇게 말하였지.
“초등학교만 가도 애들 학원비가 1명당 100만원이 든대요.”
그 전날 당신은 이제 일곱 살 되는 라온이에게 수학을 가르쳐야겠다고 했었소. 그리고 곧장 책을 주문했지.
그런데 한글을 가르칠 때도, 수학을 가르쳐야겠다고 할 때도 당신의 시작점은 직장 동료나 맘카페 정보였소. 학원비 100만원 기원도 두 곳에 두고 있지.
아이들을 위한 당신의 애정과 열정을 탓할 순 없소. 엄마라면 그 정도는 기본이라고 생각하오.
하나, 하나 말이오. 이제 겨우 일곱 살인 아이가 한글을 떼고, 수학을 배우는 것이 다 무슨 소용인가 하는, 소수일지라도 저 반대쪽 생각도 더듬어 보아야 하는 게 아닌가 싶소.
이 일은 ‘일곱 살 라온이가 지금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를 부모의 가슴과 머리로 더듬어 보는 것이겠지.
그렇게 볼 때, 적어도 아빠인 내 머리와 가슴은 이런 답이 나오더이다.
‘지금은 신나게 뛰어놀 때 아닌가. 저 좋아하는 태권도 정도가 맞지 않는가. 한글, 사칙연산은 때가 되면 누구나 떼는 거 아닌가. 그게 뭐 그리 대단한 일이고, 급한 일이라고 공부씩이나 하는 건가.’
라온이가 당신과 함께 수학을 시작한 이튿날 새벽, 나는 서재에서 ‘세계 부자들의 성공 스토리를 통해 배우는 부자 비결’이라고 적힌 ‘富者數學’을 빼내 들춰 봤다오. 아무래도 1명당 학원비 100만원이 걸렸기도 했고, 수학과 부자수학의 라임도 좋았고 해서.
몇 페이지 읽다가 이내 이런 생각이 들었소.
‘돈으로 키울 것 같으면 누가 못해.’
그리고 책을 덮었소.
대신 ‘행복한 나라 덴마크의 교사들은 어떻게 가르치는가’라는 부제가 달린 <삶을 위한 수업, 마르쿠스 베른센, 2021>을 펼쳤소. <다음호에 계속>
/심보통 2023.1.11.
국민 행복 지수 ‘노상’ 1위를 자랑하는 덴마크의 교육방식에 대한 글인데, 직장생활과 육아에 바쁘고 지친 당신이 읽어볼 확률은 희박하니, 간추려 핵심만 짚어주겠소.
뭐, 이것이 절대 옳거나, 크게 옳다는 건 아니오. 다만 우리가 부모로서 아이들 교육에 대한 기준점(철학)을 가질 필요가 있다는 차원에서 참고하자는 것이오.
-한국의 ‘유치원’은 덴마크와 달리 ‘학교’ 같다. 덴마크 유치원생들은 밖에 나가 뛰어놀기 바쁜데, 한국의 유치원생들은 주로 교실에서 여러 과목을 공부하며 시간을 보냈다.
-한국의 교육은 공부를 잘하는 학생만을 위해 존재하는 것처럼 보인다.
-공부를 잘하는 소수의 학생들만 좋은 교육을 받고 원하는 직장을 얻을 수 있는 기회를 가지며 나머지 다수는 뒤처진다.
-결과적으로 보면, 이 뒤처진 다수는 인생의 젊은 시절 대부분을 실현 불가능한 기대를 달성하기 위해 노력하는 셈이다.
-무언가를 달성하려고 하지만 그것은 언제나 그들의 능력 밖에 있다. 결국 지쳐 절망하거나 불행하다고 느끼고 있다.
-부모라면 아이들이 ‘자기 스스로’의 속도로 자랄 수 있도록 도와야 하는 것 아닌가.
어제 대구에서 만난 두 선배님은 모두 교사 아내를 둔 분이었소. 서울에서 온 김경은 선배님의 아내는 중등교사고, 우리들 주례를 맡은 양보석 선생님의 사모는 당신도 알다시피 초등교사로 퇴직하신 분이오.
김경은 선배님은 내게 이런 조언을 해주셨소.
“좋아하는 운동이나 하나 시켜. 육체가 건강한 아이는 스스로 뭐든 하게 되어 있어. 아이들은 스스로 크는 거야. 입을 대면 안돼. 내가 그렇게 해서 실패한 경우잖아.”
“선배님은 입을 댈 것 같지 않은데요.”
“아니, 내가 아니라 우리 마누라가.”
“유튜브는 어째요?”
“실컷 보여줘. 보여줘도 돼. 유튜브로 배우는 게 얼마나 많은데. 다만 규칙을 알려주면 돼. 그리고 유심히 관찰해. 애가 뭐를 좋아하는지 보고, 그걸 잘 살려줘.”
양보석 선생님 사모는 이런 조언을 해주셨소.
“아이가 꼭 하겠다면 몰라도, 지금부터 공부시킬 필요는 없어요. 초등학교 들어가서 선생님 말씀 잘 듣고 수업만 잘 들어도 충분해요. 세태가 그래서 학원을 안 다닐 수는 없겠지만, 운동 포함해 1~2개 정도가 적당하지 않을까 해요.”
‘교육모드’에 돌입한 당신을 보면서 요 며칠 내게 아삼아삼하게 들어온 단어는 이런 것들이오.
운동, 놀이, 유튜브.
그리고 ‘아이 스스로의 속도.’
당신 속도가, 이 시대 대한민국 엄마들의 속도가 너무 빠른 거 아닌가. 아이들이 엄마들 속도에 속절없이 휩쓸려가는 건 아닌가.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부모로서 분명한 교육관을 세우는 게 아닌가 싶소. 재화는 한정되어 있고, 아이의 속도는 저마다 다르다오.
우리만의 환경을 감안한 우리 아이의 속도를 갖는 게, 옳은 일이고 뒷날을 보아 현명할 것 같소.
늘 고생은 당신이 하오. 여느 때보다 생기발랄한 당신 처녀적 모습이 떠오르는 날이오. 생기 넘치는 여자, 나는 그것으로 당신 전부를 선택한 남자라오.
그렇게 만나, 그렇게 사는 우리가 지금 부족한 게 무엇인가.
우리 라온이, 바론이도 그렇게 키워주오. 생기(生氣)는 건강(健康)한 건강이라오.
*사모님께서 당신한테 안부 전해 달라 하셨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