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바뀌고 네 번째 이 난을 메운다. ‘메운다’라는 표현을 쓴 것은 알을 낳는 닭이 뱃속 가득 어린 알을 가졌을 때는 매일 한 개씩 순풍순풍 낳을 수 있지만 세월이 흘러 나이가 들면 점점 횟수가 줄고 폐란이 되듯이 머릿속의 생각들을 너무 많이 빼먹어 억지춘향 격 고혈을 짜듯 글을 쓰기 때문이다.  지난해를 잘 마무리 했어야 그것들과 단절을 하고 새날 아침부터 새 마음으로 새 출발을 하겠지만 사람의 일이란게 두부 모 자르듯 끊어내기가 쉽지 않다. 지난 연말에 뜻하지 않은 일로 병원신세를 지면서 그 여파를 아직도 끊어내지 못해 달고 사는 현실이다. 해가 바뀐다고 해서 물리적으로 완전히 달라지는 것은 그다지 느낄 수가 없다.  입원생활을 하면서 간호사들끼리 주고받는 말을 부지불식간에 주워 들었다. 그들이 쓰는 말안에서 ‘케어’(care)라는 말이 자주 들렸고 귀에 거슬렸다. 왜냐하면 언젠가 신문에서 본 칼럼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애틋한 우리말 ‘보살피다’가 있는데 왜 하필 ‘케어하다’라는 말을 쓰는지, 그런 현상이 아쉽고 안타깝다는 재미 작가의 글이 떠올랐다. 케어한다, 케어하지 못해서, 케어를 위해…. 그것도 자꾸 들으니 마치 어간이 케어이고 기본형 동사인 ‘~하다’가 붙어 ‘케어하다’라는 우리말이 있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말은 그렇다. 사람이 하나의 생명체이듯 그 입에서 나오는 말에도 생태계의 원리가 작동한다는 것이 언어학자들의 주장이다. 따라서 자연 생태계가 그렇듯이 말도 경쟁에서 살아남고 비교 우위에 서려면 진화를 해야 한다. 그것을 언어의 역사성이라고 한다. 새 말은 힘을 얻고 묵은 말은 물러난다. 말에는 사회성이란 것도 있다. 말은 그 사회를 구성하는 사람들끼리의 약속인 셈이다. 구성원들이 이렇게 하자고 하면 따라야 한다. 우리 지역의 대표라고 불리는 ‘별’을 보고 ‘발’이라고 부르거나 ‘돌’이라고 부르면 혼란이 오듯 사회적 약속을 지키는 것이 사회성이다.  말은 이 역사성과 사회성에 의해 생성과 소멸을 하게돼 있다. 물론 하루 아침에 급격하게 변하는 일은 없다. 유구한 세월속에서 시나브로 변해가는 것이 우리가 쓰는 말이다. 아무리 예쁜 말이라 해도 구성원들 속에서 불려지지 않고 외면 당하면 사라지기 마련이다. 역사속 고운 우리말이 사라진 예로 ‘강’의 옛말인 ‘가람’이 있고, 어릴적 들었던 당신이란 뜻의 ‘이녁’이란 말이 있다.  우리 생활속에 외래어는 너무 많이 들어와 헤아릴 수도 없다. 일제를 거치며 일본말이 우리말로 변해 수없는 정화를 거쳐도 아직 ‘18번’이나 ‘가라오께’처럼 악착같이 남아 있는 경우도 있다. ‘접하다’는 말도 본디 우리말로는 안쓰던 말이다. 그런데 일제때 자연스레 들어와 여태 쓰인다. ‘슬픔을 접하다’라는 말은 ‘슬픔을 겪다’로, ‘어려움을 접하다’는 ‘어려움을 당하다’로,  ‘소식을 접하다’는 ‘소식을 듣다’ 등으로 쓸 수 있다. 영어도 어느새 우리들 깊숙이 들어왔다. 열쇠 대신 ‘키’를 달라거나 아내 대신 ‘와이프’는 기본이고, ‘사이즈’, ‘럭셔리’, ‘필’이 통한다, ‘쿨’하다, ‘고고씽’, ‘컨셉’, ‘아이템’, ‘센스쟁이’... 쓰면서도 참 기가 막히다.‘케어’에 밀린 보살핌이나 ‘엘보’(elbow)에 밀려나고 있는 팔꿈치 같이 언어 사대주의에서 벗어나 한글을 아낀다면 우리말을 씀으로써 우리말을 지켜주면 좋겠다. 일제때 한글말살 정책에 목숨을 걸었고, 예쁜 감성으로 수천 년간 우리말을 다듬어 온 사람들이 있다.  한글날만 한글의 우수성을 강조할게 아니라 평소에 말을 하면서 한번쯤 제대로 된 우리말을 쓰고 있는지 생각하고 말하다 보면 곱고 아름다운 우리말을 더 잘 부려 쓸 수 있을 것이다. 우리말을 분재로 키울 것이냐, 아니면 마을의 절대 수호신인 정자나무로 키울 것이냐는 우리가 어떻게 아끼고 쓰느냐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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