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글, 잘 쓴 글은 매혹적이어서 상대에게 카타르시스를 안긴다. 무언가 본다는 것, 맛본다는 것, 읽는다는 것의 공통점은 자극이고, 자극은 우리 몸의 호르몬 분비를 촉진시킨다. 예컨대 감각적으로 뛰어난 글을 보면 세로토닌이 활성화되고, 성인물 같은 지나치게 자극적인 걸 보면 아드레날린이 활성화되는 것이다. 다른 생각, 다른 관점에다 악마적 디테일을 글에 담았다면, 이것으로도 수작(秀作)이라 할 만하다. 하나 수작이 고전으로 남으려면 하나가 더 필요하다. 바로 정신(精神)이다. 이 정신은 근본적으로 인류 보편성에 기반하는 것이 좋다. 그리고 정신은 작가가 사유해 체화해 풀어내야 옳다. 그래야만 고품격 글이 나온다. 사실 모든 글엔 작자의 정신이 투영된다. 언어는 곧 그이의 정신 반영이다. 그러나 정신에는 품격(品格)이란 게 있다. 품격은 등급을 수반한다. 고매한 정신은 그냥 나오는 게 아니다.  민족성에 대한, 역사에 대한, 일상에 대한 깊은 사유를 바탕으로 배태되는 것이다.  (작자가 아닌) 작가는 누구라도 때가 되면 ‘우리 정신’에 천착하게 되어 있다. 그게 없으면 자신의 글에 한계를 느껴 더는 글을 생산하지 못한다. 글도 재화처럼 한계효용이라는 게 발생한다. 더 나아가지 못한다면 재미와 보람과 신명이 없어 매가리(맥)가 없어지게 된다. 맥이 빠지면 정신이 사라지는 거다. 정신이 사라지면 그 글은 죽은 글이 된다. 작가는 노회해질수록 ‘근원’을 향해 치닫게 된다. 그 근원은 신(神)이 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어령 김지하가 그랬고, 김형석 정진석 선생이 그러고 있다. 누구나 보는 것보다 아무나 볼 수 없지만 분명 존재하는 현실계에 올인하게 되는 것이다. 기업인으로는 특이하게 삼성창업주 이병철 씨가 말년에 그런 삶에 올인하다 생을 마감했다. 다른 생각·다른 관점, 악마적 디테일, 고매한 정신 이 3박자를 고루 살려 쓰는 일은 대개의 작가에게도 요원한 일이다. 특히 정신은 정신없는 현대사회에서, 자본 일방주의 사회에서 바로잡기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정리하면, 다른 생각·다른 관점, 악마적 디테일, 고매한 정신 담기는 고수의 글쓰기다.  다른 생각·다른 관점, 악마적 디테일 담기는 중수의 글쓰기다. 비슷한 생각·비슷한 관점 담기는 하수의 글쓰기다. 그런데 고수의 글쓰기를 단번에 뛰어넘는 보편적 글쓰기가 있다. 바로 사랑하는 아버지 어머니나 할아버지 할머니 사연을 차분하게 풀어내는 것이다. 사랑의 필법은 고수, 중수, 하수 차원을 뛰어넘는 글쓰기다. 하수에서 중수로, 중수에서 고수로 단계를 높이는 글쓰기를 마치면, 결국 쓸 것이라고는 아버지, 어머니 이야기밖에 없다. 내 이야기와 사랑하는 사람 이야기밖에 쓸 것이 없는 것이다. 서예의 생-숙-생(生-熟-生) 이론은 글쓰기 이론에 접목해도 꼭 들어맞는다. 노회하기에 단순해지는 것,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가. 인향만리(人鄕萬里)의 참뜻 아니겠나. 나는 새벽에 일어나, 찻물을 올리고, 샤워를 하고, 차를 마시며, 책을 보고 글을 쓴다. 내 하루 일과는 소박하고 단순하다.  이런 ‘심플 라이프’는 2014년부터였으니 내년이면 꼭 10년이다. 단순한 일과 중에 낙숫물이 차돌을 깨듯 꾸준함과 치열함을 유지하려 했다. 항상심(恒常心)을 지키려 했다. 뒷날 나는 내가 뭐가 될지 모르겠다. 하지만 뭐가 되도 될 것이란 확신, 내 일로 일가를 이룰 것이란 믿음이 있다. 이룬다면 그건 대작가(大作家)일 것이다. 내가 가는 길에 [글밥] 손님들은 큰 힘이다. /심보통 2023.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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