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烈) 신씨(申氏) 사인(士人) 영산 신규열(辛奎烈)의 아내. 면옥의 딸. 남편이 3년이나 오랜 학질에 걸리자 넓적다리 살을 베어 (그것으로 음식을 만들어)공진(供進)함으로써 흔쾌히 효험을 보았고, 남편이 죽은 5 일 만에 조용히 따라 죽었다 이씨(李氏) 이계문의 아내. 아버지는 오위장군 득운. 가솔들을 이끌고 여러 차례 벼슬을 따라 다니다 서울(한양)에서 끝내 객지에서 죽었다. 이씨는 이때 한 어린 소녀였지만 관(?)을 붙들고 고향으로 돌아와 장례하고 스스로 글로 집안에 알렸으며, 부도(婦道)를 집행함에 매우 신중하였다. 갑작스레 남편 상을 당하여 초종(初終)의 범절을 일일이 몸소 점검하고 곡진하게 그 시어미에게 너그럽게 마음을 가지시라 위로하였다. 성복하던 날 약을 마시고 죽었다 손씨(孫氏) 사인(士人) 김해 김현학의 아내. 시부모 모시기에 온 힘을 다해 봉양하였으며, 남편의 병에 지성으로 구완하여 치료하였다. 급기야 (남편이)죽자 이미 장례를 치루고 약을 마시고 죽었다. 이 사실이 알려져 정려됨 김씨(金氏) 사인(士人) 정치규(鄭致奎)의 아내. 나이 16세에 치규에게 시집와서 규수의 범절을 극히 갖추었다. 남편이 기이한 빌미(奇?)를 만나 점차 불가(不可)한 지경에 이르자, 김씨는 옷에서 띠를 풀지 않고 낮 밤으로 구호(救護)하였다. 급기야 초상에 이르러 그리 곡을 하거나 가슴을 치지는 않고 위로는 시부모를 위로하고 아래로는 고아(孤兒)를 기르면서, 염습의 절도를 일일이 몸소 집행하였다. 남편을 입관하던 날 저녁 잠자는 방을 깨끗이 청소하고 새자리를 정리하여 펴고 속옷과 겉옷 일습을 모두 새것으로 갈아입고 편안하게 누워 죽었다. 암행어사와 순사(巡相)이 여러번 포상하여 이름이 알려졌다. 이씨(李氏) 밀양 박달춘의 아내. 효성으로 시부모를 모셨다. 남편이 방을 만나 장차 운명하려하자 단지(斷指)하여 피를 드리웠고, 이미 죽자 위로는 시부모가 있고 (아래로) 세 아들이 모두 강보(襁褓)에 싸여 있는 관계로 구차하게 연명하면서 방아품을 팔고 베를 짠 삯으로 변변치 못한 음식을 이어면서도 자식 가르침에 법도를 따랐기에, 사림들이 여러 차례 글을 올리고 암행어사와 순상(巡相)이 모두 포양(?揚)한 글이 있다. 양씨(楊氏) 나주 임병철(林炳哲)의 아내. 어려서부터 특이한 자품이 있었다. 시집을 가서 효성으로 시부모를 봉양하였으며, 남편이 병든 지 몇 해에 백방이 무효여서 거의 고치기가 어려웠다. 누가 말하기를 사람 고기(人肉)을 먹이면 효험이 있다는 말을 듣고 날카로운 칼로 허벅지의 고기를 도려 회(膾)를 만들어 먹였더니 과연 효험을 얻어 소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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