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광역시 진구 양정동에 가면 조선 8대 명당으로 알려진 동래정씨 시조 정문도의 묘가 있다. 조선의 8대 명당이란 풍수가들마다의 순위가 다르다보니 꼭 8대 순번 안에 든다기 보다는 우리나라에서 그만큼 풍수적 길지 중 1곳이라고 보면 된다.
옛날부터 동래정씨는 명당에 묘를 잘 쓰기로 유명한 집안으로 시조 정문도 묘 이외에도 경북 예천에 있는 그들의 13세손인 정사의 묘 역시 조선 8대 명당으로 꼽고 있다. 이 묘소는 도심 속에 위치하고 있어 각종 개발권 속에 여러 번 포함되었으나 후손들은 묘역이 있는 선산을 도시공원으로 조성해 개발을 피해왔다.
일반적으로 도시화가 이루어지면 보상금의 유혹 때문에라도 문중선산을 파는 경우가 허다하지만 그들은 시조 묘를 지키는 것이 우선이라 모든 것을 다 거절했다고 한다. 시조 묘에는 대부분 전설을 하나씩 보유하듯이 이곳에도 재미있는 설화가 전해지고 있어 소개하고자 한다.
정문도는 고려시대 동래읍의 아전으로 그 당시 경상도 안찰사로 있던 고익공이 금정산 자락인 화지산을 답사하여 명당을 잡았다는 소식을 접하게 된다. 얼마 후 고익공은 개경으로 영전하여 떠나게 되고 그 사이 정문도는 세상을 떠나게 된다. 아들 정목은 그 명당 터를 찾기 위해 화지산에 올랐으나 정확한 지점을 찾지 못하고 고익공이 늘 쉬어가던 자리에 아버지를 묻기로 마음먹었다.
그런데 장삿날 상여가 화지산 자락에 이르자 눈 녹은 자리가 마치 호랑이가 걸터 앉은 모양과 같이 신기하기에 그곳에다 장사를 지냈다고 한다. 그런데 어느 날 묘역에 가니 누군가 묘소를 파헤쳐 목관이 드러나 있었다. 다시 묻고 감시를 하는데 밤중에 도깨비가 나타나 “여기가 어딘데 감히 이따위 목관을 묻느냐 하면서 또 파헤치고 사라졌다” 아들 정목은 근심을 하던 중 어느 날 꿈속에 한 백발노인이 나타나 도깨비 눈에는 보릿짚이 금빛으로 보이니 보릿짚으로 목관을 싸서 묻으면 그런 일이 없을 것이다 하고는 사라졌다.
다음날 바로 시행하니 도깨비들이 이번에는 금관이로군. 하면서 사라지고 그 후로 다시는 괜찮았다는 야사가 전해지고 있다.
이곳은 낙동정맥의 금정산(399m)에서 뻗어 내린 한쪽 지맥이 화지산(142m)을 일으키고 본용맥은 황령산(427m)을 거쳐 부산 수영만까지 내려간다.
본 혈장은 화지산 봉우리에서 남쪽으로 지현굴곡을 하며 내려온 용맥의 끝자락에 묘소가 있다.
좌청룡은 황령산으로 가는 주능선자락이고 우백호는 두 세 겹으로 겹겹이 감싸고 있어 완전한 장풍국(藏風局)을 이룬다. 혈장 앞의 안산은 외백호자락이 혈장을 완전히 감싸면서 묘소 앞까지 뻗어 나온 산이고 용호가 관쇄를 해주니 혈장에 많은 생기를 응축시켜 준다. 안산 넘어 멀리 보이는 조산은 영도의 봉래산으로 우뚝 솟아오른 귀인봉이 하나같이 수려하고 아름답다.
혈 아래에는 저수지가 있어 양쪽 계곡에서 흘러나온 물들이 모이는데 풍수고전『地理五訣』에서는 혈 아래에 못이 있어 물이 고이면 이를 선저수(渚水)라 하고 열 개의 무덤 중에 아홉 개는 부귀하다고 하였다.
동래정씨들은 이 묘소가 문중의 번성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굳게 믿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