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호에 이어)
마치 어머니가 자식을 생각하는 마음과도 같은 것이지요. 어머니는 잠깐 동안이라도 자식을 버리지 않습니다. 어떠한 어려움이 있더라도 자식을 지켜내려고 하는 마음이 어머니이며, 어머니는 자식의 괴로움도 본인의 괴로움으로 생각하고 자식의 기쁨을 본인의 기쁨 이상으로 여깁니다. 그러한 어머니의 마음 그대로가 바로 대자비요, 불심인 것입니다.
따라서 절에 얼만큼 다니는가로 불심을 따질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자주 절에 오지 않더라도 도를 닦고 생활속에서 실천해 나가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사람들이 절에 다니는 횟수로 붙심을 재고자 하는 것은 그 사람이 늘 수행하는 생활을 하고 있는가를 풀 수 있는 기존이 절에 다니는 모습에서 찾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불심이 깊은 사람이 절에 자주 오고 기도도 잘 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절에 열심히 다닌다고 해서 모두 다 불심이 깊은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가정에서 부처님의 집에 의지하여 항상 훌륭한 아내, 어진 엄마의 역할을 충실히 하는 사람이 더 불심이 깊을 수도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의 평가에 흔들리지 말로 스스로 얼만큼 중심으로 생활하고 있는가를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어떻게 살아야 생활 속에서도 불심을 닦아갈 수 있습니까?
늘 어머니의 마음으로 살아가십시오. 자식에게만이 아니라 이웃이나 친지들에게도 어머니가 마음을 쓰듯 쓰십시오. 어머니의 자비한 마음이 자식에게 닿아 자식이 정서적으로 안정을 얻고 편안함을 느끼듯이 자비심은 불안하고 어리석은 사람들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 줍니다.
부처님의 수행의 근본은 바로 자비심에 있었습니다. 부처님은 어리석은 사람들을 구하는 대자비를 수행의 근본으로 삼고 계셨다는 것입니다.
부처님은 싯다르타 태자에서 수행자의 길을 걸으실때 부처가 되기 위해 상생의 죄에서 떠날 것을 닦으셔서 그 공덕으로 사람들이 장수하기를 원하셨습니다.
또한 부처님께서는 도적질의 죄를 떠날 것을 닦으셔서 그 공덕에 의하여 사람들이 구하고자 하는 것을 얻을 수 있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리고 부처님은 문란한 행동을 떠날 것을 닦으셔서 그 공덕으로 사람들의 마음에 해치는 마음을 없애고, 또 배고픔과 목마름이 없애도록 원하였습니다.
부처님은 부처님이 되기 위하여 거짓말을 떠나는 행을 닦으셨습니다. 그리하여 그 공덕으로 사람들이 진실을 말할 수 있는 마음의 고요를 알게 하도록 원하였습니다. 또한 입으로 두 말하는 것을 떠나는 행을 닦아 사람들이 항상 화합하여 서로 도(道)를 말하도록 원하셨습니다.
또 부처님은 부처님이 되기 위하여 탐내는 마음을 떠나는 행을 닦아 그 공덕에 의하여 사람들의 마음에 탐심이 없도록 원하셨습니다. 그리고 증오하는 마음을 떠나는 행을 닦아서, 사람들의 마음에 자비로운 생각이 넘치도록 원하셨으며, 어리석음을 떠나는 행을 닦고, 사람들의 마음에 인과(因果)의 도리를 무시하는 그릇된 생각이 없도록 원하셨습니다.
즉 부처님은 모든 사람을 행복하게 하기 위해 자비행을 닦으셨고, 오로지 그 마음으로 수행을 하셔서 결국 부처님이 되셨으며, 다른 사람들도 미혹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을 제시하셨습니다.
마찬가지로 자비한 마음으로 자식을 대하고 남을 대하는 부모는 그 공덕으로 자식이 잘되고, 자식이 좋은 친구를 사귈 수 있습니다. 자비함으로 허튼 소리 안하고 욕심을 내지 않는다면 다른 사람들과 화합하는 가족, 남에게 존경받는 가족을 이룰 수 있습니다. 바로 기도발원은 이렇게 올리는 것이며, 성취할 수 있는 길인 것입니다.
스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이제는 더욱 어머니같은 생활을 하도록 노력하며 불심을 닦는 수행을 하겠습니다. 그런데 요즘 자꾸 몸이 아픕니다. 몸이 아프니까 사람들에게 친절하고 다정하게 대하고 싶어도 자꾸 짜증이 납니다. 마음으로는 잘하고 싶은데 잘 되지 않는군요. 어떻게 몸을 다스려 나가면 좋을까요?
몸은 불심을 담고 있는 그릇입니다. 그릇이 깨져 있으면 음식을 담을 수 없고 금이 가기만 하더라도 물이 새듯이 몸의 건강이 깨지면 마음도 편안치않게 됩니다. 아픈 몸을 낫게 하려면 우선은 병원에서 원인을 찾아서 치료를 해야 하겠지요. 그리고 마음으로도 스스로 치료를 해 나가야 합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