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서천군 한산면 지현리에 있는 한산이씨 시조 이윤경의 묘 자리에는 원래 지방관아가 있었던 자리였다. 병자년에 관아건물의 안채가 무너졌을 때 이곳에서 시조의 석곽을 발견하고 관아건물을 좌측(현재 한산면사무소)으로 옮기고 그곳에 묘역을 조성했다고 비문에 설명이 되어있다. 묘비 앞에는 고려호장 이공지묘(高麗戶長 李公之墓)라고 새겨져 있으며 이 묘지의 조성과 관련하여 재미있는 설화가 두 가지 전해져 오고 있어 소개하고자 한다. 첫째 일제 강점기에 무라야마 지준이 지은 『조선의 풍수』에 나오는 내용을 보면 이곳은 원래 동헌(東軒:지방관아)자리로 현감이 정사를 보던 곳이었는데 동헌마루 가운데 한 평 정도의 널 판지가 자주 썩어 여러 차례 보수를 했다. 이를 이상하게 여긴 한 관리가 하루는 동네노인과 유식한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그 이유를 물어본 결과, 그 땅은 왕성한 지기(地氣)가 흐르는 곳으로 명당대지이기 때문이란 것이었다.  그는 그 땅에다 조상의 뼈를 묻으면 가문이 번창할 것이라 생각하고 아무도 몰래 조상의 뼈를 관아건물 마루 밑에다 평장으로 암장을 했는데 그 후로 가문이 번창하여 높은 벼슬이 줄줄이 나왔다고 전한다. 후에 한산 이씨의 후손 중 한사람이 그 고을의 고위 관리가 되어 부임하였고 곧 관아의 대청마루 밑을 파보니 전해오는 말 그대로 유골이 발견되었다. 이를 기뻐한 그 후손은 사비를 들여 관아를 바로 옆으로 이전하고 그 곳에 봉분을 새로 만들어 시조 묘를 조성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 다음 또 하나의 설이 전해져 내려오고 있는데 한산이씨 본관 유래에 나타난 내용에 의하면 고려 때 이곳은 절터였는데 풍수지리에 밝은 고을의 수령이 부임해와 근무하면서 살펴보니 이 절의 법당 마루 밑이 금계포란형(金鷄抱卵形: 금닭이 알을 품고 있는 형국)의 명당으로 보였다. 그는 실험을 해보기 위해 호장에게 그곳에다 달걀을 묻어두고 15일후에 파내어오도록 지시하였으나 그 의도를 눈치 챈 호장이 곪은 달걀을 묻고선 15일 후 파내어 수령에게 보였다. 그것을 본 고을의 수령은 의아해 하면서도 자신의 판단이 잘못되었는가 생각하고 실망했다는 것이다. 얼마 후 그 현감은 강화군수로 전임해가고 이 절에서는 떠돌이 중이 살해되는 등 괴 사건이 일어났으며 중들은 모두 자취를 감추어 절은 황폐해졌다.  그 후 이 자리에는 이호장이 묻히게 되었으며 이곳이 절터였음을 뒷받침하듯 묘 앞 오른쪽엔 고려시대에 조성된 아담한 탑이 서 있다. 이 묘를 쓴지 얼마 되지 않아 경학(經學)의 대가인 가정 이곡(稼亭 李穀)과 성리학의 대가이며 고려 말의 명신인 목은 이색(牧隱 李穡)부자가 태어나 두 사람 모두 원(元)나라 대과에 급제하는 기적을 낳았다. 이 밖에도 조선조의 기재(奇才)로 역학에 정통했던 예언가 토정 이지함(土亭 李之函)과 명재상 이산해(李山海), 근세의 사회운동가로서 국권회복에 헌신한 월남 이상재(月南 李商在)등도 후예들이니 이같이 한산 이씨들이 성운을 누리고 많은 인재가 배출된 것은 오로지 이 묘의 음덕이라고 믿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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